1. 갑작스럽게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넓고 깨끗한, 집주인과의 계약압박이 없는 집에 살고 싶었는데, 그게 이루어지기까진 내 계획보다 빨랐다. 1.5룸이 작다고 느낀 날로부터 2년 남짓, 전세를 알아보러 다닌 날로부터 1년 남짓 걸렸다.
수도권에, 방이 무려 세 개, 신축 아파트에 월세도 전세도 아니다. 그럼 뭐냐고? 남자친구 집이다. 허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 결말이겠다.
2. 계획은 힘이 없는 걸까?
계획하지 않은 곳에서 원하는 것이 주어지다니. 직방과 다방, 통장잔고를 한참 뒤적이며 투룸이며 전세를 고민하던 나의 오만가지 계획과 계산들은 힘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사 오고 난 뒤엔 한껏 무기력해지기도 했다. 아무리 짱구를 굴려봐라, 니가 원하는 그대로 된 적이 있었냐?
3. 내 인생은 얼떨결에 주어지는 것만이 전부인가.
노력이란 걸 제대로 해보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얼떨결에 주어지는 대로 잘 살아가는 기분이다. 얼결에 울산에 갔다가, 얼떨결에 수도권으로 돌아오고, 어영부영 이곳에서 다른 직장을 잡았다.
노력으로 얻어지지 않아서 그런지, 그냥 내 성질머리가 그런 것인지, 주어진 것들에 감사하기보다는 '고작 이거냐?' 투덜거리는 게 습관이 되었다.
4. 내게 아직 아파트는 과분한 걸까.
좁은 집에 살던 버릇 때문에, 방 두 개는 거의 쓰지도 않는다. 혼자 살기엔 역시 1.5룸이 딱인가.
딱 거실과 안방만 쓴다. 다른 방은 청소할 때나 들어가고, 책장이니 모니터암이니 여러 가지를 돈 들여 공들여 구비해 놓고는 들어가지도 않는다.
5. 이게 정말 최선이야?
예나 지금이나, 이게 정말 최선인가 고민하느라 현재를 놓치고 산다. 다만 예전과 달라진 게 있다면, 이런 내 상태를 자각하고 돌아본다는 것. 최선이 아닐지라도 조금 참아본다는 것. 인내심이란 게 조금은 생겼다.
6. 어차피 완성은 시간이 하는 것.
아무리 조급해봐야 시간이 들지 않는 일은 없으니, 묵묵하게 기다리고, 주어진 것만 해내야 한다. 비교하고, 계산하고, 불안해한다고 더 나아지지 않더라.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 게 내 인생이라면, 어디로 도망칠 생각보다는 시간이 일을 할 수 있게 기다려주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