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카페, 커피 한 잔으로 산 공간

by 고정문

카페.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공간. 잔잔히 흘러나오는 음악, 적당한 소음.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혼자 있는 카페에서는 감성을 만끽할 수 있다.


하지만 카페가 즐겁고 좋은 공간이기 위해서는 일정한 조건들이 만족되어야만 한다. 맛있는 커피는 기본이요, 1시간을 넘게 있어도 편안한 의자와 테이블, 적당한 햇볕, 적당한 인구밀도에 적당한 소음이 완성되어야만 카페의 매력은 그 진가를 발휘한다.


사실 나는 카페를 가느니 집에 있는 걸 선호한다. 그 모든 조건들을 만족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특히나 ‘적당한 인구밀도에 적당한 소음’ 부분을 만족시키려면 ’그날의 운‘까지 좋아야 한다. 나는 그런 도박을 하느니 집에서 편하게 차를 마시기를 택한다.


최근엔 카페와 또 한걸음 멀어지는 일이 있었다. 10평 남짓의 작은 개인 카페에서 있었던 일이다. 근처에 들를 때면 종종 가던 카페였고, 고소한 크로플냄새며 친절한 사장님, 적당한 햇볕에 나른한 주말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곳이었다.

친구를 기다리며 한참 책을 읽고 있는데, 어머니뻘 되어 보이는 어른 세 분이 우르르 카페에 들어와 내 옆테이블에 앉는 것이었다. 2명이 앉기 좋은 테이블에 세 분이 옹기종기 모여 앉으니 참으로 불편해 보였으나, 좁은 카페엔 더 자리가 없던 터라, 그 공간이라도 활용해 보려는 듯하셨다.

조금 떠드는 소리가 집중을 방해하였으나, 나는 에어팟을 노이즈캔슬링으로 바꾸어 노래를 들으며, 최대한 대수롭지 않다는 듯 읽던 책을 마저 읽었다.

그런데 그 어른들의 일행들이 추가로 속속 도착했다. 네 번째 일행분은 음료를 주문하시고는 그 좁은 테이블에 끼어앉으셨다. 그분들의 테이블이 이미 벅찬 모양새가 되었다.

결국 마지막으로 도착한 다섯 번째 아주머니께서는 그 자리가 영 불편하신지, 일행의 테이블이 아닌, 나와 마주 보는 자리에 앉으시며(!!) 옆테이블과 이야기를 나누시는 것이 아닌가. 서로 불편한 상황이 아닐 수가 없었다.

음.. 그럴 수도 있지. 유난히 예민한 나는 이 상황이 불편했지만, 친구가 아직 오지 않았으니 카페를 나갈 수도 없었다. 나는 이 상황을 최대한 이해해보고자 했다.


'내가 너무 예민한 거야. 자리가 없으면 내 앞자리에 앉을 수도 있지. 난 혼자고, 저긴 5명이니까. 카페가 좁으니까.. 암암.’

최대한 이 상황을 이성적으로 이해해 보고자 노력하고 있는데, 커피를 다 드신 내 앞자리 아주머니께서 커피잔을 그대로 둔 채로 카페를 나가시는 것이 아닌가.(!!!!)

졸지에 내 테이블은 일행이 왔다가 가버린 것처럼 두 잔의 커피잔이 남았다... 오 마이갓. 순간적으로 차오르는 불쾌감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건 너무 예의 없는 거 아니야?!

나의 편안함이 깨지기 전과 후....

하지만 소심한 나는 어떻게 해야 할지 순간 고민만 했다.

'저기 떠나가는 아주머니를 불러 세워 커피잔을 치우시라고 해야 하나? 내가 그냥 치워드려야 하나? 일행분들에게 커피잔을 건네드려야 하나...???'

온갖 고민에 머리가 복잡해지면서 불쾌한 감정도 고조되었다. 그러는 동안 일행분들마저 자기들 자리만 치우고 카페를 나가셨다.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던 카페 사장님은 그들이 나가자마자 내게 달려와 대신 죄송하다고 하시며 커피잔을 치워주셨다.(사장님이 뭐가 죄송하죠 ㅠㅠ)

하지만 문득 드는 생각, ‘내가 불쾌한 이유가 뭐지?’

이 카페도 내 것이 아니고, 이 테이블도 내 것이 아닌데. 왜 나는 이 테이블을 내가 점유하고 있다고 생각할까? 왜 나는 내 공간을 침해받았다는 불쾌함을 느끼는 것일까? 커피 한잔으로 하나의 일정한 공간을 선점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합의가 된 부분일까? 그게 아니면 내가 너무 유난스러운 걸까?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갔다.

문화인류학자 에드워드홀은 사람들 간의 상호작용에는 ‘적절한 거리‘가 있다고 한다. 한 사람의 주변에 비눗방울과 같은 가상의 공간이 있고, 연령대, 사회적 상황, 친밀도, 문화적 상황 등에 따라서 그 공간의 넓이는 개인차가 있다고 한다.


아마도 예민한 나는 남들에 비해 그 '적절한 공간'이 좀 큰 것 같다. 내가 점유한 테이블을 넘어온 아주머니가 불쾌했던 것도, 그 테이블까지 나의 사적인 공간이라고 여겼기 때문이겠지.

반면에 그 아주머니의 '적절한 공간'은 나보다 좁았을 것이고...


커피 한 잔으로 마련한 소중한 내 공간에 불청객이 침범한 순간, 향기 좋은 커피도, 편안한 의자도 다 소용이 없다.


나는 역시 카페보단 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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