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라는 이름의 회고 - 1장 : 그리운 형에게

나의 인생을 같이한 형

by Fixframe

보고 싶은 형


반백년을 살았다. 쉰 해라는 시간이 어떻게 흘러갔는지, 돌아보면 안개처럼 흐릿한 순간들도 있고 유리처럼 선명한 기억들도 있다. 뭔가 의미 있는 말을 하고 싶었다. 오십 년을 산 사람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온 한 인간으로서, 남겨야 할 말이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자꾸만 유서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유서. 죽음 앞에서 쓰는 마지막 편지. 그것이 지금 내가 하려는 이야기에 가장 적합한 형식처럼 느껴졌다.

죽음을 생각하고서야 비로소 뒤를 돌아보게 되었다. 살아있을 때는 앞만 보고 달렸다. 내일을 걱정하고, 다음 달을 계획하고, 내년을 꿈꾸며 살았다. 그런데 죽음이라는 종착역을 의식하는 순간, 처음으로 고개를 돌려 내가 지나온 길을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가족이 보였다.

어머니가 보였다. 이제 팔십을 바라보시는, 허리가 굽은 어머니의 뒷모습이 보였다. 아내가 보였다. 이십오 년을 함께 산, 이제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의 생각을 아는 그 사람이 보였다. 큰딸이 보였다. 스물셋,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디딘 그 아이가 보였다. 아들이 보였다. 스물한 살, 군대에서 돌아와 대학에 복학한 그 녀석이 보였다. 막내딸이 보였다. 열아홉, 아직 세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는 그 아이가 보였다.

두고 떠난다는 마음이 힘들게 다가올 것이다. 그들을 남겨두고 혼자 먼저 가야 한다는 생각이 가슴을 무겁게 짓누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이런 생각도 든다. 언젠가는 두고 떠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그게 내일이든, 십 년 후든, 이십 년 후든, 결국 이별은 온다. 그렇다면 이렇게 미리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괜한 짓 아닌가 싶다.

그래서 결심했다. 고민하지 않기로. 그냥 시작하기로. 기억나는 순서대로, 생각나는 대로, 막 써 내려가기로. 정리되지 않아도 좋다. 문학적이지 않아도 좋다. 그저 내 기억 속의 사람들, 내 인생의 조각들을 있는 그대로 남기기로 했다.

형이 있었다. 지금은 이 세상에 없지만.

이 문장을 쓰는 것만으로도 가슴 한쪽이 먹먹해진다. 형. 나보다 세 살 위였던 형. 75 킬로그램의 몸무게로 180센티미터의 키를 가진, 깡마른 형. 언제나 안경을 쓰고 있었고, 웃을 때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지던 형.

1988년. 서울에서 처음 열리는 올림픽으로 전국이 떠들썩했다. 텔레비전을 켜면 온통 올림픽 이야기였고, 거리에는 호돌이 마스코트가 넘쳐났다. 그해 형은 고등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이학년이었나, 삼학년이었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형이 올림픽 행사요원으로 선발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의 그 설렘은 지금도 생생하다.

그때는 키가 큰 고등학생들을 선발해서 행사요원으로 활용했던 것 같다. 형은 키가 컸으니까 당연히 뽑혔을 것이다. 선수로 나간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 가족에게는 형이 올림픽에 참여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자랑거리였다. 어머니는 동네방네 자랑하고 다니셨고, 나는 학교에서 친구들에게 “우리 형이 올림픽 나간다”고 떠벌리고 다녔다.

올림픽이 끝나고 형이 집에 돌아왔을 때, 형의 손에는 88 올림픽 기념주화가 들려 있었다. 투명한 플라스틱 케이스에 담긴, 금빛으로 빛나는 동전. 나는 그것을 신기한 듯 들여다보았다. 형은 자랑스럽게 웃으며 “이거 나중에 엄청 비싸질 거야”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그 기념주화는 지금 어디에 있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형이 떠난 후 어머니가 어딘가에 소중히 보관하고 계실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함께한 사람이 형이다. 이 문장을 쓰고 나니 눈물이 난다. 가장 많이 함께한 사람. 아내보다도, 자식들보다도, 어머니보다도 더 오래, 더 가까이에서 함께했던 사람. 그것이 형이었다.

우리는 한 방을 썼다. 작은 방이었다. 아니, 어쩌면 그렇게 작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의 기억 속에서 모든 공간은 실제보다 크게 느껴지니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 방에 우리 둘의 이층침대가 있었고, 작은 책상 하나가 있었고, 낡은 옷장 하나가 있었다는 것이다.

형은 위층에서 잤고 나는 아래층에서 잤다. 밤이 되면 형이 위에서 뒤척이는 소리가 들렸다. 가끔 형이 잠꼬대를 했다. “안 돼… 그러면 안 돼…“라는 식의, 무슨 꿈을 꾸는지 알 수 없는 중얼거림. 나는 그런 형의 잠꼴대를 들으며 잠들곤 했다.

아침이 되면 형이 먼저 일어났다. 형은 나보다 세 살 위였으니까 학교도 먼저 가야 했다. 형이 세수하는 소리, 밥 먹는 소리, 현관문을 나서는 소리. 그 소리들이 나의 알람이었다. 형이 나간 후에야 나는 천천히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저녁이 되면 우리는 함께 밥을 먹었다. 어머니가 차려주신 밥상 앞에 형과 내가 마주 앉았다. 아버지는 늦게 들어오시는 날이 많았으니까, 대부분은 어머니와 형과 나, 셋이서 먹었다. 형은 밥을 빨리 먹었다. 나는 느렸다. 형이 다 먹고 일어날 때쯤 나는 겨우 반을 먹었다. “빨리 먹어, 공부해야지”라고 형이 말하면 나는 “알았어”라고 대답하면서도 여전히 느릿느릿 먹었다.

밤이 되면 우리는 함께 공부했다. 같은 방에서, 같은 책상을 나란히 놓고, 각자의 책을 펼쳤다. 형은 수학 문제를 풀었고 나는 영어 단어를 외웠다. 가끔 형이 어려운 문제를 만나면 “아, 이거 왜 안 풀려”라고 혼잣말을 했다. 나는 그런 형을 슬쩍 쳐다보며 “형도 모르는 게 있네”라고 속으로 생각했다.

주말에는 함께 놀았다. 축구를 하러 나가거나, 만화책을 보러 만화방에 가거나, 오락실에 가서 게임을 했다. 형이 돈을 냈다. 형은 용돈을 더 많이 받았으니까. 나는 형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형의 친구들도 나를 알았다. “야, 네 동생이네”라고 말하면 형은 “응, 우리 동생”이라고 대답했다. 그 말이 좋았다. 우리 동생. 나는 형의 동생이었고, 그것이 자랑스러웠다.

그렇게 우리는 함께 자랐다.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며, 같은 음식을 먹으며, 같은 시간을 보내며 자랐다. 형이 대학에 가고, 내가 대학에 가고, 그렇게 시간이 흘렀다. 대학 시절에도 우리는 가까웠다. 방학이 되면 집에 돌아왔고, 그러면 다시 그 좁은 방에서 함께 잤다. 이제는 이층침대가 아니라 바닥에 이불을 나란히 깔고 잤지만, 여전히 같은 방이었다.

하지만 결혼하고부터 달라졌다. 형이 먼저 결혼했다. 스물아홉 살에. 형수는 좋은 사람이었다. 형을 잘 챙겼고, 우리 가족을 잘 대했다. 형은 결혼하고 서울로 갔다. 직장이 서울에 있었으니까. 나는 여전히 고향에 있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멀어지기 시작했다.

일 년에 몇 번 만났다. 명절에, 어머니 생신에, 아버지 제사에. 만나면 반가웠지만 예전 같지는 않았다. 형에게는 형수가 있었고 곧 조카가 생겼다. 나도 결혼했고 아이가 생겼다. 우리는 각자의 가정을 꾸렸고, 각자의 삶을 살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가 전환점이었다. 2010년이었다. 갑작스러운 심장마비였다. 아버지는 예순다섯 살이었다. 너무 이른 나이였다. 장례를 치르는 동안 형과 나는 다시 가까워졌다. 아니, 가까워진 것이 아니라 책임을 나눴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어머니를 누가 모실 것인가. 형과 내가 번갈아 가며 모시기로 했다. 육 개월씩 돌아가며.

하지만 현실은 그렇게 녹록하지 않았다. 형은 서울에 있었고 어머니를 서울로 모시기 어려웠다. 형의 집은 좁았고, 형수는 직장을 다녔다. 결국 어머니는 대부분의 시간을 나와 함께 보냈다. 형은 돈으로 보탰다. 매달 일정 금액을 보내왔다. 그것이 형이 할 수 있는 전부였고, 나는 그것을 이해했다.

그렇게 점점 멀어졌다. 전화는 했다. 한 달에 한두 번. “어머니 어떠세요?” “괜찮으세요” “형은요?” “나도 괜찮아” 그런 짧은 대화. 더 이상 형과 나는 한 방에서 자지 않았다. 더 이상 함께 밥을 먹지 않았다. 더 이상 같은 공간에서 같은 공기를 마시지 않았다.

형이 아프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이년 전이었다. 췌장암이었다. 사기에 가까운 진단이었다. 형은 평생 담배도 피우지 않았고 술도 거의 마시지 않았다. 운동을 좋아했고 건강에 신경 썼다. 그런 형이 췌장암이라니.

병원으로 달려갔다. 서울의 큰 병원이었다. 형은 병실 침대에 누워 있었다. 이미 많이 야위어 있었다. 형을 본 순간 눈물이 났다. 형도 울었다.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서로를 바라보며 울었다.

“동생아…” 형이 말했다. “미안하다.”

“왜요, 형. 왜 미안해요.”

“어머니… 제대로 못 모셔서.”

“무슨 소리예요. 형도 충분히 했어요.”

“아니야. 네가 다 했지. 나는…”

형은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형의 손을 잡았다. 말랐다. 뼈만 남았다. 저 손으로 나를 안아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등을 토닥여주던 형이었는데.

형은 육 개월을 버텼다. 항암치료를 받았지만 소용없었다. 암은 이미 너무 많이 퍼져 있었다. 마지막 달에 형은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겨졌다. 나는 매주 서울로 갔다. 형을 만나러. 형과 이야기하러.

그때 우리는 다시 가까워졌다. 죽음 앞에서 우리는 다시 형제가 되었다. 형은 어린 시절 이야기를 했다. 88 올림픽 이야기, 이층침대 이야기, 만화방 이야기, 오락실 이야기. 나도 기억을 더듬었다. “형, 그때 형이 나한테 오락실 돈 줬잖아요.” “그래? 그랬나?” “네, 오백 원 줬어요. 그거 가지고 한 시간 동안 게임했어요.”

형이 웃었다. 고통스러워 보였지만 웃었다. “오백 원으로 한 시간이나 했어? 너 잘했네.”

“형이 준 돈이었으니까요. 아껴 써야죠.”

형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동생아, 나… 너랑 더 많이 놀아줄걸.”

“많이 놀았어요, 형. 충분히 놀았어요.”

“아니야. 부족했어. 나는… 너무 바빴어. 학교 가고, 대학 가고, 직장 다니고, 결혼하고… 그러다 보니 네가 멀어졌어.”

“아니에요, 형. 그건 당연한 거예요. 다들 그렇게 사는 거예요.”

형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나는… 너를 소홀히 했어.”

그날 밤, 나는 형의 병실에서 잤다.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누워 형의 숨소리를 들었다. 어린 시절처럼. 이층침대의 아래층에 누워 위층의 형이 뒤척이는 소리를 들었던 것처럼. 형의 숨소리는 거칠었다. 고통스러워 보였다. 나는 눈을 감았다. 눈물이 흘렀다.

형은 이주 후에 세상을 떠났다. 마지막 날, 가족들이 모두 모였다. 형수와 조카들, 어머니와 나, 나의 아내와 아이들. 형은 의식이 희미했다. 눈을 뜨지 못했다. 하지만 손은 움직였다. 나는 형의 손을 잡았다. 형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를 알아본 것 같았다.

“형, 저예요. 동생이에요.”

형의 입술이 움직였다. 소리는 나지 않았지만 입 모양으로 알 수 있었다. “미안해.”

“아니에요, 형. 미안할 거 없어요. 형은… 형은 제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었어요.”

형이 미소 지었다. 아주 희미한, 거의 보이지 않는 미소. 그리고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장례를 치렀다. 많은 사람이 왔다. 형의 친구들, 직장 동료들, 친척들. 모두들 좋은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성실했다고, 친절했다고, 책임감이 강했다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다. 형은 그런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몰랐다. 형이 얼마나 좋은 형이었는지. 어린 동생에게 얼마나 다정했는지. 오락실 돈을 주고, 만화책을 같이 보고, 밤늦게까지 같은 방에서 공부하던 그 사람이 얼마나 따뜻했는지.

형이 떠난 후, 나는 자주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그 좁은 방, 그 이층침대, 그 작은 책상. 형과 내가 함께했던 모든 순간들. 그것들이 이제는 더 이상 돌아갈 수 없는 과거가 되었다는 것이, 형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이, 때때로 믿기지 않는다.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이 함께한 사람. 그것이 형이었다. 그리고 이제 형은 없다.

하지만 형의 기억은 남아 있다. 88 올림픽 기념주화, 이층침대, 오락실, 만화방, 그 모든 것들. 그리고 무엇보다, 형이 내게 보여준 사랑이 남아 있다. 형제간의 사랑, 가족의 사랑.

나도 언젠가는 형처럼 떠날 것이다. 내 아이들을 두고, 내 아내를 두고, 어머니를 두고. 그때 나는 무슨 말을 남길 것인가. 무엇을 유산으로 남길 것인가.

형이 내게 남긴 것처럼, 나도 사랑을 남기고 싶다. 기억을 남기고 싶다. 함께한 순간들을 남기고 싶다.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유서처럼. 하지만 슬픔의 기록이 아니라 사랑의 기록으로. 형과 내가 함께했던 시간들, 그 소중했던 순간들의 기록으로.

형, 보고 싶어요. 오늘도, 내일도, 앞으로도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