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책임감
아버지에 대해 쓴다는 것은 참 복잡한 일이다.
어머니에 대해 쓸 때는 사랑이 먼저 떠올랐다. 따뜻함이 먼저 생각났다. 하지만 아버지에 대해 쓰려고 하니 먼저 떠오르는 것은 무게다. 책임이다. 침묵이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 분이셨다. 사랑한다는 말도, 미안하다는 말도, 고맙다는 말도 잘 하지 않으셨다. 그저 묵묵히 일하셨다. 가족을 위해. 우리를 위해.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이십오 년이 넘었다. 사십 대 후반이라는 젊은 나이에 갑작스럽게 떠나셨다. 준비할 시간도 없이. 마지막 인사도 없이.
그때는 몰랐다.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는지. 얼마나 외로우셨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포기하셨는지.
이제 나도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나이가 되었다. 아니, 이미 넘었다. 오십이 넘었다. 그제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버지의 인생이. 아버지의 선택이. 아버지의 침묵이.
이 글은 아버지에 대한 기록이다. 늦었지만, 이제라도 아버지를 이해하고 싶어서. 아버지께 하지 못한 말들을 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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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전라도 영광의 부호 집안에서 태어나셨다.
팔남매의 장남. 큰고모 다음이었지만, 사실상 장남이었다. 그 시절 장남이라는 것은 특권이자 굴레였다.
할아버지는 땅이 많으셨다. 전라도를 지나려면 할아버지 땅을 밟지 않고는 못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장된 표현이겠지만, 그만큼 땅이 많았다는 뜻이었다.
아버지는 그 집안의 장남으로 자랐다. 귀하게 자랐다고 한다.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먹고, 좋은 교육을 받았다. 대학도 갔다. 그 시절 대학을 간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가 대학 이학년 때, 할아버지가 쓰러지셨다. 중풍이었다.
그때부터 모든 것이 변했다.
할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하셨다. 당시 중풍 치료는 오랜 시간과 많은 돈이 필요했다. 할아버지는 최고의 치료를 받으셨다. 서울의 큰 병원까지 가셨다.
그 비용을 대기 위해 땅을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금씩. 하지만 병원비는 끝이 없었다. 점점 더 많은 땅을 팔아야 했다.
아버지는 대학을 그만뒀다. 장남으로서 집안을 돌봐야 했다. 공부할 시간이 없었다. 집안의 재산을 관리하고, 동생들을 챙기고, 병원에 계신 할아버지를 돌봐야 했다.
몇 년이 흘렀다. 할아버지는 조금씩 회복하셨지만 완전히 낫지는 않으셨다. 그리고 그사이 땅은 거의 다 팔렸다. 부호 집안은 이제 평범한 집안이 되었다. 아니, 평범한 것도 아니었다. 빚까지 생겼다.
스물다섯 살, 아버지는 결혼을 하셨다. 중매였다. 어머니와. 그리고 결혼과 함께 서울로 오셨다. 무일푼으로.
고향을 떠나며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대학도 못 마치고, 재산도 다 잃고, 고향도 떠나야 하는 스물다섯 살 청년의 마음은 어땠을까.
아버지는 말씀하지 않으셨다. 한 번도. 그 시절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셨다. 가끔 어머니에게서 듣는 이야기가 전부였다.
“네 아버지는 원래 부잣집 아들이었어. 공부도 잘하고, 똑똑하고. 근데 집안이 망하는 바람에…”
어머니는 말끝을 흐리셨다. 그리고 덧붙이셨다.
“그래도 네 아버지는 강한 사람이야. 좌절하지 않았어. 서울 와서 맨손으로 시작했어. 대단한 사람이지.”
어머니의 목소리에는 존경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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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낯설었을 것이다.
아버지는 전라도 시골에서 자랐다. 서울의 복잡함, 사람들의 차가움, 모든 것이 낯설었을 것이다.
게다가 경력이 없었다. 대학을 중퇴했고, 특별한 기술도 없었다. 그 시절 그런 사람이 취직하기는 하늘의 별 따기였다.
아버지는 몸뚱이 하나만 믿고 일을 찾으셨다. 그리고 찾은 것이 해외 파견 일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당시 중동은 오일 붐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갔다. 돈을 벌기 위해. 힘들지만 돈은 많이 주는 곳.
아버지는 어머니와 갓 결혼한 신혼이었다. 하지만 떠나셔야 했다. 돈을 벌어야 했으니까.
“금방 다녀올게. 이 년만 참아.”
아버지가 어머니께 하신 말씀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년은 삼 년이 되었고, 삼 년은 오 년이 되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일하시고, 쿠웨이트로 옮겨 또 일하시고.
그사이 형이 태어났다. 아버지는 형의 얼굴을 생후 육 개월이 되어서야 보셨다. 그리고 다시 떠나셨다.
나도 태어났다. 아버지는 내 얼굴을 생후 일 년이 되어서야 보셨다.
어머니는 혼자서 두 아이를 키우셨다. 남편도 없이. 힘드셨을 것이다. 외로우셨을 것이다. 하지만 참으셨다. 아버지가 돌아올 때까지.
중동에서 아버지가 어떻게 사셨는지는 잘 모른다. 말씀을 거의 안 하셨으니까. 하지만 힘드셨을 것이다. 사막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일하고, 좁은 숙소에서 자고, 가족 생각하며 외로워하셨을 것이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내고 아버지는 돌아오셨다. 손에 돈을 들고.
많은 돈은 아니었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큰돈이었다. 그 돈으로 아버지는 봉천동 한 켠에 집을 사셨다.
작은 집이었다. 낡았고, 좁았고, 불편했다. 하지만 우리 집이었다. 처음으로 우리만의 공간이 생긴 것이었다.
“이제 우리 집이 생겼어.”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자랑스러워하셨다. 작은 집이지만, 맨손으로 시작해서 이룬 집이니까.
나는 어렸지만 기억한다. 그날 아버지의 얼굴을. 피곤하지만 만족스러워 보이던 그 표정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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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천동 집에서 우리는 행복했다.
아버지는 일을 하셨다. 작은 회사였지만 정규직이었다. 월급은 많지 않았지만 꾸준했다. 어머니는 집에서 우리를 돌보셨다. 형과 나는 학교를 다녔다.
평범한 행복이었다. 특별할 것 없는, 하지만 소중한 일상들.
그런데 어느 날, 셋째 작은아버지가 찾아오셨다.
할아버지의 셋째 아들. 아버지보다 열 살 정도 어린 분. 사업을 한다고 했다. 잘되고 있다고 했다.
“형님, 제 보증 좀 서주십시오.”
작은아버지가 부탁하셨다.
“보증?”
“네. 사업 자금이 필요해서요. 은행에서 대출받으려는데 보증인이 필요하답니다. 형님밖에 없어요.”
아버지는 난색을 보이셨다.
“보증은… 위험해. 내가 책임져야 하는 거잖아.”
“형님, 걱정 마세요. 제가 절대 문제 안 일으킵니다. 형님한테 피해 안 갑니다. 제 사업 잘되고 있어요. 금방 갚을 수 있어요.”
작은아버지는 간곡하게 부탁하셨다.
아버지는 고민하셨다. 오래. 며칠 동안.
어머니는 반대하셨다.
“안 돼요. 보증은 절대 안 돼요. 우리 집 날아가요.”
“하지만… 내 동생인데. 어떻게 모른 척해.”
“동생이면 뭐 해요. 우리 가족이 먼저예요.”
아버지와 어머니는 싸우셨다. 크게. 나는 방에서 그 소리를 들었다. 무서웠다.
결국 아버지는 보증을 서주셨다.
“동생을 못 믿으면 누굴 믿어. 괜찮을 거야.”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일 년도 안 되어 작은아버지의 사업이 망했다. 그리고 작은아버지는 잠적하셨다. 연락도 안 되고, 찾을 수도 없었다.
빚이 아버지에게 넘어왔다. 엄청난 금액이었다. 아버지의 월급으로는 감당할 수 없는 액수였다.
결국 집을 팔아야 했다.
봉천동 집. 아버지가 중동에서 몇 년을 고생해서 마련한 집. 우리 가족의 첫 번째 집. 그 집을 남의 손에 넘겨야 했다.
그날 밤, 나는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아버지는 잘 우시지 않는 분이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꿋꿋하신 분이었다. 하지만 그날 밤, 아버지는 우셨다.
거실에서. 혼자. 소리 없이 우셨다.
나는 방문 틈으로 봤다. 아버지가 소파에 앉아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어깨를 떨고 계시는 것을.
가슴이 아팠다. 어렸지만 알 수 있었다. 아버지가 무너지고 계시다는 것을.
어머니가 아버지 옆에 앉으셨다.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아버지의 등을 쓰다듬어주셨다.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당신 말을 들을걸…”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다시 시작하면 돼요. 우리 함께 다시 시작해요.”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렸지만 단호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변하셨다. 더 과묵해지셨다. 더 무거워지셨다. 웃음이 사라지셨다.
그리고 더 열심히 일하셨다. 미친 듯이 일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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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을 잃고 우리는 전세로 이사했다.
상도동이었나, 노량진이었나.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어쨌든 좁고 낡은 집이었다. 판자촌 같은 곳이었다.
아버지는 회사를 그만두셨다. 월급으로는 빚을 갚을 수 없었으니까. 더 많이 벌 수 있는 일을 찾으셔야 했다.
그리고 시작하신 것이 가락동 시장 도매였다.
과일과 채소를 사서 파는 일. 새벽에 시장에 나가 물건을 받고, 소매상들에게 팔고, 밤늦게 집에 돌아오는 일.
힘든 일이었다.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아버지의 하루는 이랬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신다. 어두운 새벽, 모두가 자는 시간에 혼자 일어나신다.
세수하시고, 간단히 밥 드시고, 집을 나서신다. 새벽 네 시쯤.
가락동 시장까지 가신다. 대중교통도 없는 시간이라 걸어가시거나 택시를 타셨다. 택시비 아끼려고 대부분 걸어가셨다.
시장에 도착하면 경매가 시작된다. 좋은 물건을 싸게 사야 한다. 눈썰미가 중요하다. 경험이 중요하다.
물건을 사면 정리한다. 상자에 담고, 등급별로 나누고, 소매상들이 오기를 기다린다.
아침 여섯 시쯤부터 소매상들이 온다. 흥정이 시작된다.
“이게 얼마예요?”
“만 원입니다.”
“비싸네. 팔천 원에 주세요.”
“안 됩니다. 구천 원까지 깎아드릴게요.”
매일 반복되는 흥정. 때로는 팔리고, 때로는 안 팔린다.
오후까지 장사하신다. 점심도 제대로 못 드신다. 김밥 하나, 라면 한 그릇으로 때우신다.
저녁 여섯 시쯤 되면 정리하신다. 남은 물건을 처리하고, 돈을 계산하고, 내일을 준비하신다.
집에 돌아오시는 시간은 밤 열 시. 때로는 열한 시.
집에 오시면 녹초가 되어 계신다. 밥 드시고, 텔레비전 잠깐 보시고, 잠드신다.
그리고 다음 날 새벽 세 시에 다시 일어나신다.
주말도 없었다. 휴일도 없었다. 명절에도 시장은 열렸다. 쉬는 날은 일 년에 몇 번 없었다.
형과 나는 가끔 아버지를 따라 시장에 갔다. 방학 때. 아버지 일을 도와드리려고.
하지만 별로 도움이 되지 못했다. 어렸으니까. 무거운 상자를 들 힘도 없었고, 흥정하는 법도 몰랐다.
그래도 아버지는 좋아하셨다.
“공부만 하지 말고 세상 구경도 해야지. 돈 버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야지.”
아버지가 말씀하셨다.
시장에서 아버지는 다른 사람이었다. 집에서는 과묵하고 조용하신데, 시장에서는 목소리가 컸다. 흥정도 잘하셨고, 사람들과 농담도 하셨다.
“야, 김 사장! 오늘 물건 좋아! 가져가!”
“이 사장님! 오랜만이네! 어디 갔다 왔어!”
“최 형님! 오늘 싸게 드릴게요! 많이 가져가세요!”
활기찬 목소리. 웃는 얼굴. 집에서는 볼 수 없는 아버지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피로를, 고통을, 그때는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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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말이 없으셨다.
집에 오시면 거의 말씀을 하지 않으셨다. 밥 드실 때도, 텔레비전 보실 때도, 그저 조용히 계셨다.
어머니가 말을 걸어도 짧게 대답하셨다.
“오늘 장사 잘됐어요?”
“그냥 그래.”
“저녁 뭐 드실래요?”
“아무거나.”
“몸은 괜찮아요? 피곤해 보여요.”
“괜찮아.”
형과 나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아버지, 오늘 학교에서 상 받았어요.”
“그래. 잘했다.”
“아버지, 이거 봐주세요. 숙제예요.”
“엄마한테 물어봐.”
“아버지, 같이 놀아요.”
“아버지 피곤해. 나중에.”
하지만 나중에는 오지 않았다. 아버지는 늘 피곤하셨으니까.
처음에는 섭섭했다. 왜 아버지는 우리에게 관심이 없을까. 왜 아버지는 우리랑 놀아주지 않을까.
친구들 아버지는 달랐다. 주말에 공원에 데려가주고, 자전거 타는 법 가르쳐주고, 함께 야구도 하고.
우리 아버지는 그런 거 안 하셨다. 주말에도 시장 가시고, 집에 오면 자고, 그게 전부였다.
한번은 아버지께 물었다.
“아버지, 왜 맨날 일만 해요? 우리랑 놀아주면 안 돼요?”
아버지는 잠시 나를 바라보시더니 대답하셨다.
“아버지가 일 안 하면 너희가 밥 못 먹어. 학교도 못 가.”
“그래도 가끔은…”
“나중에 크면 알아. 아버지가 왜 이러는지.”
그리고 더 이상 말씀하지 않으셨다.
지금은 안다. 정말로 안다.
아버지는 우리를 사랑하셨다. 깊이. 하지만 표현할 여유가 없으셨다. 너무 바빴고, 너무 피곤하고, 너무 힘드셨다.
아버지의 사랑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었다. 새벽에 일어나 시장에 가시는 것. 밤늦게까지 일하시는 것. 주말도 없이 일하시는 것. 그것이 아버지의 사랑이었다.
하지만 어린 우리는 그걸 몰랐다. 그저 아버지가 우리에게 무관심하다고만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 아버지에게. 아버지의 고생을 몰라줘서. 아버지의 사랑을 알아주지 못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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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이 흘렀다.
아버지는 쉬지 않고 일하셨다. 새벽 세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일 년 삼백육십오 일. 몇 년 동안.
그렇게 모은 돈으로, 그리고 빚을 다 갚고 남은 돈으로, 아버지는 대림동에 아파트를 분양받으셨다.
신축 아파트였다. 우리에게는 꿈같은 집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있고, 수세식 화장실이 있고, 베란다가 있는 집.
분양받고 이 년을 기다렸다. 그 이 년 동안 아버지는 더 열심히 일하셨다. 입주할 때 필요한 돈을 모으시려고.
그리고 드디어 입주하는 날이 왔다.
아버지는 그날 시장에 안 가셨다. 특별한 날이었으니까.
이사 짐을 나르고, 가구를 배치하고, 집을 정리했다. 온 가족이 함께.
저녁이 되어 모든 것이 정리되었을 때, 아버지는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우셨다.
나도 따라 나갔다.
“아버지.”
“왜?”
“좋아요. 새 집.”
“그래. 좋지.”
아버지가 웃으셨다. 오랜만에 보는 아버지의 진짜 웃음이었다.
“이제 우리 집이야. 우리가 산 집. 아무도 못 빼앗아가.”
아버지의 목소리에 감격이 담겨 있었다.
그때 아버지 나이가 쉰한 살이었다. 지금의 내 나이와 비슷하다.
스물다섯에 무일푼으로 서울에 오셔서, 이십육 년 만에 처음으로 제대로 된 집을 마련하신 것이다.
이십육 년. 얼마나 긴 시간인가. 얼마나 힘든 시간이었을까.
“아버지, 고생 많으셨어요.”
내가 말했다.
아버지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시며 대답하셨다.
“고생? 이 정도는 고생도 아니야. 너희 잘되는 거 보면 다 보상받아.”
그리고 내 머리를 쓰다듬으셨다. 아버지가 내 머리를 쓰다듬으신 것은 그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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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림동 아파트에서 아버지는 취미를 가지셨다.
물고기를 키우기 시작하셨다.
큰 어항을 사셨다. 거실에 놓으셨다. 그리고 열대어를 샀다.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물고기들.
아버지는 퇴근하시면 어항 앞에 앉아 물고기를 보셨다. 한참 동안. 말없이.
“왜 물고기를 키우세요?”
내가 물으니 아버지가 대답하셨다.
“물고기 보면 마음이 편해져. 조용하고, 평화롭고.”
아버지에게 물고기 어항은 휴식이었던 것 같다. 복잡한 세상에서 벗어나 잠시나마 평화를 느낄 수 있는 곳.
물고기뿐만 아니라 새도 키우셨다.
베란다에 새장을 놓으시고 앵무새를 키우셨다. 파란색 앵무새였다.
아버지는 새에게 말을 가르치려고 하셨다.
“안녕. 안녕.”
매일 반복해서 가르치셨다. 하지만 새는 말을 배우지 못했다. 그저 지저귀기만 했다.
그래도 아버지는 포기하지 않으셨다. 매일 “안녕”이라고 말씀하셨다.
어느 날, 새가 죽었다.
아버지는 슬퍼하셨다. 말씀은 안 하셨지만 얼굴에 드러났다.
새를 작은 상자에 담아 아파트 뒤쪽 공터에 묻으셨다. 형과 나도 따라갔다.
“왜 새가 죽었을까요?”
내가 물으니 아버지가 대답하셨다.
“늙어서. 수명이 다해서.”
“슬퍼요?”
“그래. 슬퍼. 하지만 어쩔 수 없어. 살아있는 건 다 언젠가 죽어.”
그리고 아버지는 새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셨다.
“잘 가. 고마웠어.”
그 모습을 보며 나는 생각했다. 아버지도 외로우시구나. 말은 안 하시지만, 많이 외로우시구나.
나중에 다시 새를 사셨다. 이번에는 노란색 앵무새였다. 그 새도 말을 배우지 못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매일 말을 걸었다.
물고기와 새. 그것들이 아버지의 친구였던 것 같다. 말없는 친구. 하지만 위로가 되는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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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는 술을 드셨다.
많이. 자주.
일이 끝나고 집에 오시는 길에 술을 드시곤 하셨다. 혼자서. 포장마차나 작은 선술집에서.
집에 오시면 취해 계셨다. 비틀거리며 현관문을 여시고, 신발도 제대로 못 벗으시고, 거실 소파에 쓰러지셨다.
어머니는 화를 내셨다.
“또 술 드셨어요? 매일 술만 드시면 어떡해요!”
“시끄러워. 내가 번 돈으로 내가 마시는데 왜 간섭이야.”
“돈 문제가 아니에요. 건강 생각해요. 이러다 큰일 나요.”
“괜찮아. 나 멀쩡해.”
하지만 멀쩡하지 않았다. 얼굴은 빨갛고, 눈은 풀려 있고, 말도 어눌하셨다.
가끔은 화를 내셨다. 취하면 화가 많아지셨다.
“너희들은 몰라! 내가 얼마나 힘든지! 매일 새벽에 일어나서 밤늦게까지 일하는데!”
“아무도 몰라주잖아! 고맙다는 말도 없고!”
소리를 지르셨다. 물건을 던지시기도 했다. 어머니와 싸우시기도 했다.
형과 나는 방에 숨었다. 무서웠다. 아버지가 무서웠다.
다음 날 아침, 아버지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새벽에 일어나 시장으로 가셨다. 어젯밤 일은 기억 못 하시는 것 같았다. 아니, 기억하셔도 모른 척하시는 것 같았다.
왜 술을 그렇게 드셨을까.
지금은 안다. 아버지도 힘드셨던 거다. 버티기 힘드셨던 거다. 술이 아니면 견딜 수 없었던 거다.
새벽부터 밤까지 일하는 고된 노동. 끝없이 계속되는 빚.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무게. 쉴 수 없는 삶.
그 모든 것을 견디려면 뭔가 필요했던 거다. 술이 그것이었다.
술을 마시고, 취하고, 잠시나마 잊는 것. 그것이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유일한 휴식이었다.
하지만 어린 우리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저 술 먹는 아버지가 싫었고, 화내는 아버지가 무서웠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미안하다. 이해해드리지 못해서. 위로해드리지 못해서.
“아버지, 힘드시죠. 고생 많으세요.”
그 한마디만 했어도 아버지가 조금은 위로받으셨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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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9년 9월 19일 일요일.
그날 아침은 평범했다.
아버지는 새벽에 시장에 가셨다. 일요일에도 시장은 열렸으니까. 점심쯤 돌아오셨다.
밥을 드시고, 텔레비전을 보셨다. 야구 중계였던 것 같다.
나는 방에서 낮잠을 자고 있었다. 일요일 오후의 나른한 시간.
그때 어머니의 비명 소리가 들렸다.
“여보! 여보!”
나는 벌떡 일어나 거실로 뛰어나갔다.
아버지가 소파에서 쓰러져 계셨다. 눈을 감고, 움직이지 않으셨다.
“아버지! 아버지!”
내가 흔들어도 반응이 없으셨다.
어머니는 떨리는 손으로 119에 전화하셨다.
“우리 남편이 쓰러졌어요! 빨리 와주세요!”
구급차가 왔다. 구급대원들이 아버지를 들것에 옮겼다. 심폐소생술을 시작했다.
“호흡이 없습니다. 맥박도 없습니다.”
구급대원의 차가운 목소리.
병원으로 향하는 구급차 안. 나는 아버지 손을 잡았다. 차가웠다. 이미 식어가고 계셨다.
“아버지, 괜찮을 거예요. 병원 가면 괜찮아질 거예요.”
나는 계속 말했다. 아버지한테. 나 자신한테.
하지만 아버지는 구급차 안에서 숨을 거두셨다.
심장마비였다.
갑작스러웠다. 아무 예고도 없이. 준비할 시간도 없이.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하셨는데. 점심을 드셨는데. 텔레비전을 보셨는데.
그런데 이제 돌아가셨다.
쉰한 살. 너무 이른 나이였다.
병원에서 의사가 말했다.
“과로가 주된 원인입니다. 오랜 기간 무리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스트레스. 충분한 휴식을 못 취하셨고요.”
의사의 말을 듣는데 눈물이 났다.
과로. 스트레스. 휴식 부족.
그 모든 것이 우리 때문이었다. 우리를 위해 아버지가 그렇게 무리하신 거였다.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이 왔다. 시장 사람들, 친척들, 지인들.
“좋은 분이셨는데. 너무 일찍 가셨네.”
“고생만 하시다 가셨어.”
“가족들 생각하면 얼마나 아쉬우셨을까.”
사람들의 말이 귓속으로 들어왔지만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장례를 치르고 고향 영광의 선산에 모셨다.
무덤 앞에 섰다. 아버지가 그 안에 계신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아버지…”
부르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할 말이 너무 많았다. 하지만 이제 할 수 없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아버지, 고맙습니다.”
“아버지, 고생하셨습니다.”
“아버지, 미안합니다.”
그 모든 말을 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이제는 영원히 할 수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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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가 떠나시고 우리는 아버지의 물건들을 정리했다.
많지 않았다. 아버지는 소유물이 적은 분이었다.
옷 몇 벌. 대부분 낡았다. 구멍 난 것도 있었다. 그래도 버리지 못하고 계속 입으셨다.
시계 하나. 싸구려 시계. 하지만 아버지는 늘 차고 다니셨다.
지갑. 안에 돈은 얼마 없었다. 가족사진 몇 장이 들어 있었다. 우리 가족사진. 낡고 바랜 사진.
그리고 공책 하나.
아버지의 수첩이었다. 시장에서 장사하실 때 기록하시던 것.
매일의 매출, 지출, 남은 돈. 빼곡히 적혀 있었다. 아버지의 악필로.
마지막 페이지에 메모가 있었다.
“집 대출금 오백만 원 남음. 내년 삼월까지 갚기.”
“큰애 대학 등록금 이백만 원 필요.”
“둘째 고등학교 입학금 오십만 원.”
아버지는 마지막까지 우리 걱정을 하고 계셨다. 돈 걱정을. 우리 미래를 걱정을.
공책을 보는데 눈물이 났다. 주체할 수 없이 쏟아졌다.
아버지. 평생 우리를 위해 사신 아버지. 당신 자신은 뒤로하고 오직 가족만 생각하신 아버지.
아버지가 남긴 것은 돈이 아니었다. 집도 아니었다.
아버지가 남긴 것은 가르침이었다.
책임감. 가족을 위해 끝까지 책임지는 것.
근면성. 쉬지 않고 일하는 것.
인내.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것.
희생. 자신을 포기하고 가족을 위하는 것.
그것이 아버지가 평생 보여주신 것이고, 우리에게 남기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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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나도 아버지 나이가 되었다.
오십이 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나이를 넘었다.
그제야 이해한다. 아버지의 삶을. 아버지의 선택을. 아버지의 침묵을.
나도 가족이 있다. 아내와 아이들이 있다. 그들을 위해 일한다. 매일. 쉬지 않고.
때로는 피곤하다. 너무 피곤해서 아무것도 하기 싫을 때가 있다. 아이들이 놀자고 해도 “나중에”라고 말할 때가 있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아버지도 이랬겠구나. 피곤하셨겠구나. 하지만 참으셨겠구나.
나도 술을 마신다. 힘들 때. 스트레스받을 때. 한잔 하면 조금 나아진다.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아버지도 이래서 드셨겠구나. 견디려고. 버티려고.
나도 말이 없어졌다. 집에 오면 피곤해서 말하기 싫다. 그냥 조용히 있고 싶다.
그때마다 생각한다. 아버지도 그러셨겠구나. 말할 힘이 없으셨겠구나.
이제 안다. 아버지가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말로 표현하지 않으셨을 뿐, 행동으로 보여주셨다는 것을.
새벽에 일어나는 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밤늦게까지 일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주말도 없이 일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술을 마셔도 다음 날 다시 일어나는 것. 그것이 사랑이었다.
아버지는 우리를 위해 당신의 모든 것을 바치셨다. 꿈도, 건강도, 삶도.
그리고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다. 고마워하지 않았다. 이해하지 못했다.
너무 늦었다. 아버지께 감사하다고 말하기엔. 사랑한다고 말하기엔.
하지만 이제라도 말한다. 아버지가 들으실 수 없어도.
“아버지, 감사합니다. 고생하셨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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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이 편지를 쓰는 지금, 저는 오십이 넘었습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던 나이를 넘었습니다.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왜 맨날 일만 하시는지. 왜 우리와 놀아주지 않으시는지. 왜 말이 없으시는지.
투정도 부렸습니다. 섭섭해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집 아버지들은 다 아이들이랑 놀아주는데 우리 아버지만 안 그러신다고 불평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압니다. 아버지가 얼마나 힘드셨는지. 얼마나 외로우셨는지.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셨는지.
아버지는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대학도 가셨습니다. 편안한 삶을 살 수 있으셨습니다.
하지만 할아버지가 쓰러지시면서 모든 것이 변했습니다. 대학을 그만두시고, 재산을 잃으시고,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오셨습니다. 무일푼으로.
스물다섯의 젊은 나이에 모든 것을 잃고 맨손으로 시작하는 것. 그것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좌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중동으로 가서 몇 년을 일하셨습니다. 가족도 못 보시고, 외로움을 참으며.
그렇게 모은 돈으로 집을 사셨습니다. 봉천동의 작은 집. 하지만 우리의 첫 집.
그런데 셋째 작은아버지 때문에 그 집마저 잃으셨습니다. 보증을 서주셨다가. 얼마나 절망스러우셨을까요. 얼마나 자책하셨을까요.
하지만 아버지는 다시 일어나셨습니다. 가락동 시장에서 도매를 시작하셨습니다. 새벽 세 시부터 밤 열 시까지. 주말도 없이. 몇 년 동안.
그렇게 또다시 집을 마련하셨습니다. 대림동 아파트. 우리의 집.
쉰한 살에. 스물다섯에 무일푼으로 시작해서 이십육 년 만에.
아버지, 정말 대단하신 분이었습니다. 강한 분이었습니다. 책임감 있는 분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그것을 몰랐습니다.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아버지가 우리를 위해 얼마나 희생하시는지.
이제 저도 가장이 되어 알게 되었습니다. 가족을 책임진다는 것이 얼마나 무거운지. 매일 일어나 일하러 가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아버지는 그것을 평생 하셨습니다. 불평 없이. 쉬지 않고.
아버지, 죄송합니다.
효도를 못 해서. 이해하지 못해서. 감사하다고 말하지 못해서.
아버지가 술 드실 때 “왜 또 술이냐”고 핀잔 주었던 것. 미안합니다. 이제는 압니다. 아버지도 버티기 힘드셨다는 것을.
아버지가 피곤해서 우리랑 못 놀아주실 때 섭섭해했던 것. 미안합니다. 이제는 압니다. 아버지도 놀아주고 싶으셨다는 것을.
아버지가 말씀이 없으실 때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던 것. 미안합니다. 이제는 압니다. 아버지도 말할 힘이 없으셨다는 것을.
아버지, 감사합니다.
저를 낳아주셔서. 키워주셔서. 대학까지 보내주셔서. 집을 마련해주셔서.
무엇보다, 책임감을 가르쳐주셔서.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보여주셔서.
아버지가 평생 보여주신 그 모습을, 저도 제 아이들에게 보여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완벽하지는 못합니다. 아버지만큼 강하지도 못하고, 책임감 있지도 못합니다. 하지만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아이들에게 말해줍니다. “할아버지는 정말 대단한 분이셨어. 우리를 위해 평생을 바치셨어”라고.
아버지가 남기신 가르침을, 다음 세대에 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 보고 싶습니다.
대림동 아파트 베란다에서 담배 피우시던 모습. 어항 앞에 앉아 물고기 보시던 모습. 새벽에 일어나 시장 가시던 모습.
그 모든 순간이 그립습니다.
아버지를 만날 수 없다는 것이. 아버지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이. 아버지께 안긴 수 없다는 것이. 너무 슬픕니다.
하지만 압니다. 아버지는 편히 쉬고 계시다는 것을. 더 이상 새벽에 일어나지 않으셔도 된다는 것을. 더 이상 무거운 짐을 지지 않으셔도 된다는 것을.
그것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아버지, 사랑합니다.
말로 표현하지 못했지만, 늘 사랑했습니다. 지금도 사랑합니다. 앞으로도 영원히 사랑할 것입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제 아버지여서. 우리 가족의 아버지여서.
언젠가 저도 그곳에 가면, 아버지를 꼭 안아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말하고 싶습니다.
“아버지,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 편히 쉬세요.”
그때까지 아버지가 보여주신 삶을 기억하며 살겠습니다. 아버지처럼 책임감 있게, 아버지처럼 강하게.
안녕히 계세요, 아버지.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당신의 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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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그 단어는 무게를 의미한다.
책임, 희생, 침묵, 고독, 인내.
아버지는 화려하지 않았다. 말이 많지도 않았다. 표현도 서툴렀다.
하지만 아버지는 묵묵히 자리를 지켰다. 가족이라는 집의 기둥으로. 흔들리지 않게. 무너지지 않게.
아버지가 없었다면 우리는 없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희생이 없었다면 우리의 오늘은 없었을 것이다.
나는 아버지를 기억할 것이다.
새벽 세 시에 일어나시던 모습을.
시장에서 큰 소리로 흥정하시던 모습을.
집에 오셔서 조용히 물고기를 보시던 모습을.
술 한잔 마시고 쓰러져 주무시던 모습을.
그 모든 순간이 아버지였고, 그 모든 순간이 사랑이었다.
이제 나도 아버지다. 내 아이들의 아버지.
나는 내 아버지만큼 훌륭하지 못하다. 하지만 노력한다. 아버지처럼 되려고.
아이들을 위해 일한다. 책임진다. 때로는 힘들어도 참는다.
그것이 아버지가 가르쳐주신 것이니까. 아버지가 보여주신 것이니까.
아버지, 감사합니다.
당신의 아들로 태어나 영광이었습니다.
당신의 가르침을 받아 행복했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시간은 짧았지만, 그 기억은 영원합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아버지.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사랑합니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