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라는 이름의 회고 - 3장 : 어머니

어머니라는 존재

by Fixframe

어머니에 대해 쓴다는 것은 참 어렵다.


어떻게 한 사람의 인생을, 그 사람의 희생을, 그 사람의 사랑을 글로 담을 수 있을까. 어머니는 단순히 나를 낳아준 사람이 아니다. 나를 키워준 사람이 아니다. 나를 지켜준 사람이 아니다. 어머니는 그 모든 것이고, 그 이상이다.


어머니는 내 인생의 시작이었고, 지금도 내 인생의 중심이며, 아마도 내 인생의 끝까지 함께할 유일한 사람일 것이다.


형도 떠났고, 아버지도 떠났고, 할머니도 떠났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여기 계신다. 팔십 평생을 사시며 허리가 굽고,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이 깊어지셨지만, 여전히 여기 계신다.


그리고 나는 안다. 언젠가 어머니도 떠나실 것이라는 것을. 그날이 오면 나는 정말로 혼자가 될 것이라는 것을.


그래서 이 글을 쓴다. 어머니가 계실 때, 어머니에 대한 기억을 남기고 싶어서. 어머니가 떠나시기 전에, 어머니께 하지 못한 말들을 하고 싶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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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손


어머니의 손을 처음 기억한 것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국민학교에 들어가기 전, 다섯 살 즈음이었을 것이다. 상도동 판자촌에 살 때였다. 골목길은 비포장이었고, 여름이면 먼지가 날렸고, 겨울이면 진흙이 질척였다.


그날도 그랬다. 겨울이었다. 길이 얼어붙어 미끄러웠다. 나는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고 있었다. 어머니는 큰 보따리를 한 손에 들고, 다른 손으로 나를 잡고 계셨다.


“천천히 걸어라. 넘어진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하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신이 나서 폴짝폴짝 뛰었다. 그리고 넘어졌다. 무릎이 깨졌다. 피가 났다. 나는 울었다.


어머니는 보따리를 내려놓고 나를 안아 올리셨다. 그리고 손수건으로 내 무릎의 피를 닦아주셨다. 어머니의 손은 거칠었다. 빨래를 너무 많이 해서, 설거지를 너무 많이 해서,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손가락 마디마디에 굳은살이 박혀 있었다.


하지만 그 거친 손이 내 무릎을 닦아줄 때, 이상하게도 부드러웠다. 따뜻했다. 아프지 않았다.


“괜찮아. 금방 나아. 우리 아들 씩씩하지?”


어머니가 웃으며 말씀하셨다. 나는 울음을 그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어머니의 손. 거칠지만 부드럽고, 딱딱하지만 따뜻한 그 손.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첫 모습이다.


지금도 어머니의 손은 여전히 거칠다. 팔십 년을 일한 손. 가족을 먹여 살린 손. 자식들을 키운 손. 그 손에는 한 사람의 인생이 고스란히 새겨져 있다.


가끔 어머니 손을 잡는다. 예전처럼 어머니가 내 손을 잡는 것이 아니라, 이제는 내가 어머니 손을 잡는다. 역할이 바뀌었다. 어머니를 보호해야 하는 것은 이제 내 몫이다.


하지만 어머니 손을 잡을 때마다 느낀다. 이 손이 나를 지켜줬구나. 이 손이 나를 키웠구나. 이 손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거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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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밥상


어머니는 평생 밥을 지으셨다.


아침, 점심, 저녁. 하루 세 끼. 일 년 삼백육십오 일. 몇십 년 동안. 어머니는 쉬지 않고 밥을 지으셨다.


가난했던 시절, 어머니의 밥상은 소박했다. 쌀밥에 된장찌개, 김치, 그리고 가끔 멸치볶음이나 계란말이. 그게 전부였다. 고기는 명절에나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늘 우리를 먼저 챙기셨다. “많이 먹어라”며 밥을 퍼주시고, “더 먹어라”며 반찬을 올려주셨다. 정작 어머니는 김치 몇 조각과 된장찌개 국물로 밥을 드셨다.


“어머니는 안 먹어요?”


내가 물으면 어머니는 웃으며 대답하셨다.


“나는 배불러. 너희들 먹는 거 보면 배가 불러.”


거짓말이었다. 어머니도 배가 고프셨을 것이다. 하지만 자식들 먹이는 것이 우선이었다. 당신은 굶어도 자식들은 굶길 수 없었다.


형과 내가 자라면서 어머니의 밥상도 조금씩 나아졌다. 아버지가 벌이가 좋아지면서 고기도 가끔 올라왔고, 생선도 먹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습관은 변하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를 먼저 챙기셨고, 당신은 늘 마지막에 드셨다.


“어머니, 이거 드세요.”


내가 좋은 반찬을 어머니 앞에 놓으면 어머니는 다시 내 앞으로 밀어주셨다.


“나는 이거 안 좋아해. 네가 먹어.”


또 거짓말이었다. 어머니가 싫어하는 음식은 없었다. 그저 자식들에게 더 주고 싶으셨을 뿐이었다.


결혼하고 나서도 어머니의 밥상은 계속됐다. 명절이면 어머니 집에 가서 함께 밥을 먹었다. 어머니는 며느리와 손주들을 위해 정성껏 음식을 준비하셨다. 전을 부치고, 나물을 무치고, 고기를 삶고, 떡을 찌고.


“어머니, 이렇게 많이 하시면 어떡해요. 힘드시잖아요.”


와이프가 말하면 어머니는 웃으셨다.


“괜찮아. 손주들 먹는 거 보면 힘이 나.”


그리고 어머니는 손주들 밥그릇에 이것저것 담아주셨다. “많이 먹어라” “더 먹어라” 평생 하신 그 말씀을 손주들에게도 하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형이 떠나고, 이제 어머니 혼자 사시게 되었다. 혼자 사시면서도 어머니는 밥을 지으신다. 혼자 먹을 밥을. 하지만 어머니는 늘 많이 지으신다.


“왜 이렇게 많이 하세요? 혼자 사시는데.”


내가 물으면 어머니는 대답하신다.


“너희들 올까 봐. 네가 올 수도 있고, 손주들이 올 수도 있잖아.”


그래서 어머니의 냉장고에는 늘 반찬이 가득하다. 우리가 언제 와도 먹을 수 있게. 배고프지 않게.


어머니의 밥상. 그것은 단순히 음식이 아니었다. 사랑이었다. 희생이었다. 헌신이었다.


나는 어머니만큼 밥을 정성껏 지어본 적이 없다. 아이들에게 “많이 먹어라”고 말하면서도 정작 내 배를 먼저 채운 적이 많다. 어머니처럼 자식을 위해 굶어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그리고 감사하다. 어머니의 밥상이 있었기에 내가 자랄 수 있었다는 것을. 어머니의 희생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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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등


어머니의 등을 처음 본 것은 언제였을까.


아마도 목욕탕에서였을 것이다. 어릴 때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동네 목욕탕에 가곤 하셨다. 남탕과 여탕이 따로 있었지만, 어린아이는 엄마와 함께 여탕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부끄러웠다. 여자들이 많았고, 다들 벗고 있었고, 나는 어린아이지만 남자였으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개의치 않으셨다. 내 손을 잡고 탕으로 들어가셨다.


어머니가 내 등을 밀어주셨다. 때가 많이 나왔다. 어머니는 정성껏, 구석구석 밀어주셨다. 목, 팔, 다리, 발까지. 하나도 빠짐없이.


“이제 어머니 등 밀어줄래?”


어머니가 물으셨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어머니 등에 때밀이 수건을 문질렀다.


어머니의 등은 넓었다. 그리고 굽어 있었다. 젊은 나이였는데도 이미 허리가 조금 굽어 있었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무거운 것을 너무 많이 들어서.


그때는 몰랐다. 그 등이 얼마나 많은 것을 짊어졌는지. 가족의 생계를, 자식들의 미래를, 가난의 무게를.


세월이 흘렀다. 나는 자랐고, 어머니는 늙으셨다. 어머니의 등은 점점 더 굽었다. 칠십이 되고, 팔십이 되면서 허리는 거의 직각으로 굽었다.


병원에 갔다. 의사는 말했다. 골다공증이라고. 척추가 약해졌다고. 평생 무거운 것을 너무 많이 들어서라고.


“수술을 해야 하나요?”


내가 물었다.


“나이가 너무 많으세요. 수술하기엔 위험합니다. 그냥 약 드시고, 무리하지 마시고, 조심하셔야 합니다.”


어머니는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다. 그저 고개만 끄덕이셨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나는 어머니의 등을 봤다. 굽은 등. 세월의 무게로 짓눌린 등. 가족을 위해 희생한 흔적이 고스란히 남은 등.


가슴이 아팠다. 눈물이 났다.


“어머니, 죄송해요.”


내가 말했다.


“왜 미안해? 네가 뭘 잘못했어?”


“제가 효도를 못 해서요. 어머니를 이렇게 힘들게 해서요.”


어머니는 멈춰 서서 나를 바라보셨다. 그리고 내 손을 잡으셨다.


“너 때문에 이런 거 아니야. 나는 행복했어. 너희들 키우면서. 힘들긴 했지만 행복했어. 후회 없어.”


어머니는 웃으셨다. 굽은 등으로, 주름진 얼굴로, 하지만 환하게 웃으셨다.


그날 이후 나는 다짐했다. 어머니의 등이 더 이상 굽지 않게 하겠다고. 어머니가 무거운 것을 들지 않게 하겠다고. 어머니가 편하게 사시게 하겠다고.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았다. 나도 바빴고, 내 가족도 있었고, 일도 해야 했다. 어머니를 늘 곁에 모시고 살 수는 없었다.


그래서 더 미안하다. 어머니는 평생 나를 위해 사셨는데, 나는 어머니를 위해 충분히 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등. 그것은 희생의 상징이다. 사랑의 증거다. 그리고 내 평생의 빚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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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눈물


어머니는 잘 우시지 않는 분이었다.


힘든 일이 있어도, 슬픈 일이 있어도, 아픈 일이 있어도, 어머니는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강한 분이셨다. 아니, 강해야만 했다. 가족을 위해서.


하지만 몇 번, 정말 몇 번, 어머니가 우시는 것을 봤다.


첫 번째는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였다.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는 울지 않으셨다. 문상객들을 맞고, 절을 받고, 인사를 하시면서도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다. 사람들은 신기해했다. 남편이 죽었는데 왜 울지 않을까.


하지만 나는 알았다. 어머니는 참고 계신 거라는 것을. 무너지면 안 되니까. 가족들이 의지할 곳이 없어지니까.


장례를 치르고 며칠 후, 나는 어머니 방 앞을 지나가다가 소리를 들었다. 흐느끼는 소리. 조용하지만 절절한 울음소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머니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고 계셨다. 어깨가 들썩였다. 소리를 죽이며 우셨지만 온몸이 떨리고 있었다.


“어머니…”


내가 부르자 어머니는 이불을 걷어내고 얼굴을 드러내셨다. 눈이 퉁퉁 부어 있었다. 얼마나 오래 우셨는지.


“미안하다. 네 앞에서 이러면 안 되는데.”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괜찮아요. 우셔도 돼요. 많이 우셔도 돼요.”


나는 어머니를 안았다. 어머니는 내 품에서 다시 울었다. 이번에는 소리를 죽이지 않고. 한참을 우셨다.


“네 아버지가… 미운 사람이었어. 술도 마시고, 돈도 못 벌어오고, 화도 많이 냈어. 하지만… 하지만 그래도… 내 남편이었어…”


어머니의 목소리는 떨렸다.


“같이 늙어가고 싶었어. 손주들 보면서 같이 웃고 싶었어. 그런데 왜 이렇게 빨리 가버렸어…”


어머니는 울었다. 쉰 년을 함께 산 남편을 잃은 여자의 울음이었다.


두 번째는 형이 돌아가셨을 때였다.


자식을 먼저 보내는 것보다 큰 슬픔은 없다고 한다. 어머니는 그 슬픔을 겪으셨다.


형의 장례식장에서 어머니는 말이 없으셨다. 그저 형의 영정사진을 바라보셨다. 하루 종일, 밤새도록. 말없이 바라보셨다.


사람들이 와서 위로했다.


“힘내세요. 고인은 편히 쉬고 있을 거예요.”


“살아 있는 사람이 살아야죠.”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라고 보내주셔야죠.”


어머니는 고개만 끄덕이셨다. 대답하지 않으셨다.


장례를 치르고 형을 땅에 묻는 날, 비가 왔다. 봄비였다. 차가웠다.


무덤 앞에 서서 어머니는 처음으로 울음을 터뜨리셨다.


“엄마가 먼저 가야지… 왜 네가 먼저 가니… 왜…”


어머니는 무릎을 꿇고 땅을 치셨다. 하늘을 원망하셨다. 세상을 저주하셨다.


“내가 대신 갈게… 우리 아들 살려줘… 제발…”


어머니의 울음은 비명이었다. 절규였다. 한 어머니의 심장이 찢어지는 소리였다.


나는 어머니를 일으켜 세웠다. 형수와 함께 어머니를 부축했다. 어머니는 힘없이 쓰러지셨다.


그날 이후 어머니는 많이 늙으셨다. 머리가 하얗게 세고, 주름이 깊어지고, 기운이 없어지셨다. 밥도 잘 드시지 않으셨다.


“왜 안 먹어요?”


내가 물으면 어머니는 대답하셨다.


“입맛이 없어. 먹어도 모래를 씹는 것 같아.”


슬픔이 어머니를 삼켜버렸다. 한동안 어머니는 죽은 사람처럼 사셨다. 말도 없고, 웃음도 없고, 그저 하루하루를 견디기만 하셨다.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는 조금씩 회복하셨다. 완전히 회복하신 것은 아니었다. 형의 빈자리는 절대 채워질 수 없었으니까. 하지만 살아야 했으니까. 남은 가족들을 위해서.


세 번째는 얼마 전이었다.


나는 어머니를 모시고 병원에 갔다. 정기검진이었다. 나이가 많으시니까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아야 했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동안 어머니와 나는 병원 정원에 앉아 있었다. 봄이었다. 꽃이 피어 있었다.


“예쁘네.”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네, 예뻐요.”


“나도 저렇게 피었다가 지는구나.”


“무슨 말씀이세요.”


“아니야. 그냥 하는 소리야.”


침묵이 흘렀다. 바람이 불었다. 꽃잎이 떨어졌다.


“엄마는 말이야…”


어머니가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들한테 미안해.”


“왜요? 왜 미안하세요?”


“좋은 엄마가 못 돼서. 가난하게 살게 해서. 힘들게 해서.”


“무슨 말씀이세요. 어머니는 최고의 엄마예요.”


어머니는 고개를 저으셨다.


“아니야. 나는… 부족했어. 많이 부족했어.”


그리고 어머니는 울기 시작하셨다. 조용히, 하지만 슬프게.


“너희들에게 좋은 옷 사주지 못했어. 좋은 음식 먹이지 못했어. 좋은 학교 보내지 못했어. 엄마가 무능해서…”


“아니에요, 어머니.”


나는 어머니의 손을 잡았다.


“어머니는 최선을 다하셨어요. 우리를 위해 평생을 사셨어요. 그것만으로 충분해요. 그것만으로 최고예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 진심이에요.”


어머니는 내 손을 꽉 잡으셨다. 그리고 울었다. 한참을 울었다.


그날 어머니의 눈물을 보며 나는 깨달았다. 어머니도 사람이라는 것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두려워하고, 후회하고, 슬퍼하는 한 사람의 인간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래서 더 사랑스러웠다. 더 소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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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기도


어머니는 독실한 불교 신자였다.


절에 자주 가셨다. 새벽 예불에 참석하시고, 부처님 오신 날에는 연등을 달고, 백팔배를 하셨다.


처음에는 이해하지 못했다. 왜 그렇게 열심히 절에 다니시는지. 왜 그렇게 기도를 많이 하시는지.


“어머니, 왜 그렇게 자주 절에 가세요?”


내가 물으면 어머니는 대답하셨다.


“너희들 잘되라고.”


“기도하면 잘돼요?”


“모르지. 하지만 안 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어머니의 기도는 간절했다.


“부처님, 우리 아들들 건강하게 해주세요.”


“부처님, 우리 손주들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부처님,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게 해주세요.”


어머니는 자신을 위해서는 기도하지 않으셨다. 늘 가족을 위해서만 빌었다.


아버지가 아프셨을 때, 어머니는 매일 절에 가셨다. 새벽부터 밤까지. 백팔배를 하고, 경을 읽고, 기도하셨다.


“부처님, 제발 우리 남편 살려주세요. 제가 대신 아플게요. 제 목숨을 가져가셔도 되니까 남편만 살려주세요.”


하지만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어머니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절에 가지 않으셨다. 한동안. 부처님을 원망하셨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빌었는데 왜 들어주지 않으셨냐고.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는 다시 절에 가기 시작하셨다. 이번에는 아버지를 위해서.


“부처님, 우리 남편 극락왕생하게 해주세요. 저승에서 편히 쉬게 해주세요.”


형이 아팠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어머니는 더 열심히 기도하셨다. 백팔배가 아니라 삼천배를 하셨다. 무릎이 까지고, 이마에 피멍이 들어도 계속 절을 하셨다.


“부처님, 제발 우리 아들 살려주세요. 제가 무슨 짓이든 할게요. 제 목숨을 가져가셔도 되니까 아들만 살려주세요.”


하지만 형도 떠났다. 다시 한번 어머니의 기도는 이루어지지 않았다.


어머니는 무너지셨다. 절에도 가지 않으셨다. 기도도 하지 않으셨다.


“부처님은 없어. 있으면 왜 내 아들을 데려가. 왜 내 기도를 안 들어줘.”


어머니는 부처님을 원망하셨다.


하지만 또다시 시간이 지나고, 어머니는 다시 절로 돌아가셨다. 이번에는 형을 위해서.


“부처님, 우리 아들 극락왕생하게 해주세요. 다음 생에는 건강하게 태어나게 해주세요.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나는 어머니께 물었다.


“어머니, 기도해도 안 이루어지잖아요. 왜 계속 기도하세요?”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대답하셨다.


“기도한다고 다 이루어지는 건 아니야. 하지만 기도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견딜 수가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까. 그냥 앉아서 걱정만 하는 것보다는 기도라도 하는 게 나아.”


그제야 이해했다. 어머니의 기도는 부처님께 요구하는 것이 아니었다. 어머니 자신을 위로하는 것이었다. 무력한 자신에게 뭔가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지금도 절에 가신다. 허리가 굽어서 백팔배는 못 하시지만, 그래도 가신다. 앉아서라도 기도하신다.


“부처님, 우리 아들 건강하게 해주세요. 며느리도 건강하게 해주세요. 손주들도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


어머니의 기도는 여전히 계속된다. 가족을 위한 기도.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기도.


그것이 어머니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니까. 그리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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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치매


일 년 전부터 어머니의 기억력이 나빠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사소한 것이었다. 안경을 어디 뒀는지 기억 못 하시고, 약 드시는 것을 잊으시고, 같은 말을 반복하시고.


“나이 들면 다 그렇지.”


나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팔십이 넘으셨으니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점점 심해졌다.


어느 날 전화가 왔다. 어머니였다.


“여보세요?”


“너 누구니?”


“저예요, 어머니. 아들이요.”


“아들? 내가 아들이 있었나?”


가슴이 철렁했다.


“네, 어머니. 저 아들이에요. 기억 안 나세요?”


“아… 그래. 아들. 아들이 있었지.”


하지만 목소리에 확신이 없었다. 정말로 기억이 안 나시는 것 같았다.


병원에 갔다. 의사는 검사를 했다. MRI를 찍고, 인지 검사를 하고, 여러 가지 테스트를 했다.


결과가 나왔다.


“초기 치매입니다.”


의사가 말했다.


“치매요?”


“네. 알츠하이머형 치매로 보입니다. 아직 초기라 진행을 늦출 수는 있습니다. 약을 드시면…”


의사의 말이 귓속으로 들어왔지만 제대로 이해되지 않았다. 치매. 어머니가 치매.


“완치는 안 되나요?”


“안타깝지만 치매는 완치가 어렵습니다. 진행을 늦추는 것이 최선입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 어머니는 말이 없으셨다. 나도 말이 없었다.


“미안하다.”


한참 후에 어머니가 말씀하셨다.


“왜요? 왜 미안하세요?”


“짐이 되서. 네 걱정거리가 되서.”


“무슨 말씀이세요. 짐이 아니에요.”


“나도…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아. 하지만 내 맘대로 안 돼. 기억이 자꾸 사라져. 무섭어.”


어머니의 목소리가 떨렸다.


“괜찮아요, 어머니. 제가 있잖아요. 제가 어머니 기억이 돼드릴게요.”


어머니는 내 손을 잡으셨다. 꽉.


그날 이후 어머니의 치매는 조금씩 진행됐다.


어떤 날은 나를 알아보셨다.


“우리 아들 왔구나.”


어떤 날은 나를 형으로 착각하셨다.


“형아, 오랜만이다. 어디 갔다 왔어?”


“어머니, 저 형 아니에요. 동생이에요.”


“아… 그래. 동생. 미안하다.”


어떤 날은 나를 아버지로 착각하셨다.


“여보, 일 끝났어요? 밥 먹어요.”


“어머니, 저 아버지 아니에요.”


“뭐라고? 당신 아니면 누구야.”


어떤 날은 나를 완전히 모르셨다.


“당신 누구세요? 우리 집에 왜 왔어요?”


“어머니, 저예요. 아들.”


“아들? 내가 아들이 있나? 거짓말하지 마세요.”


그럴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다. 어머니가 나를 모른다는 것이, 나라는 존재를 잊으신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아팠다.


하지만 더 힘든 것은 어머니 자신이었다.


가끔 정신이 또렷한 순간이 있었다. 그럴 때 어머니는 우셨다.


“내가… 내가 너를 못 알아봤지?”


“아니에요, 어머니.”


“거짓말 마. 나도 알아. 내 정신이 이상해진 거. 자꾸 기억이 사라지는 거. 무서워. 정말 무서워.”


“괜찮아요, 어머니. 제가 있잖아요.”


“언젠가는 너도 잊어버릴 거야. 네 얼굴도, 네 이름도, 우리가 함께한 모든 것도. 다 잊어버릴 거야.”


“그래도 괜찮아요. 제가 기억할게요. 어머니 대신 제가 기억할게요.”


요양원에 모셔야 한다는 얘기도 나왔다. 혼자 사시기 어려우니까. 하지만 어머니는 완강하게 거부하셨다.


“나는 내 집에서 살 거야. 여기서 죽을 거야.”


결국 요양보호사를 고용했다. 낮 동안 어머니를 돌봐드릴 분. 나는 퇴근 후에 매일 어머니 집에 들렀다.


“어머니, 저예요.”


어떤 날은 알아보시고, 어떤 날은 모르신다. 하지만 상관없다. 그저 옆에 있어드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함께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을 보고, 이야기를 나눈다. 어머니가 같은 말을 열 번 해도 열 번 다 들어드린다. 어머니가 나를 형이라고 불러도 고쳐드리지 않는다. 그게 어머니를 편하게 한다면.


의사는 말했다. 언젠가 어머니는 모든 것을 잊으실 거라고. 가족도, 당신 자신도, 모든 기억도.


그날이 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머니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어버리면 어떻게 해야 할까.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안다. 어머니가 나를 잊어도, 나는 어머니를 잊지 않을 것이다. 어머니가 나를 모르셔도, 나는 어머니를 알 것이다.


그것만으로 충분하다. 어머니가 나를 낳아주셨고, 키워주셨고, 사랑해주셨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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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와의 마지막 대화


어제 어머니와 긴 대화를 나눴다.


정신이 또렷하신 날이었다. 그런 날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어서, 나는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머니, 제 얘기 좀 해주세요.”


“무슨 얘기?”


“제가 어렸을 때요. 어머니가 기억하시는 거.”


어머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말씀하셨다.


“너는… 순한 아기였어. 형은 많이 울었는데 너는 잘 울지 않았어. 밤에도 잘 잤고, 밥도 잘 먹었고.”


“그랬어요?”


“응. 형 키울 때는 힘들었는데 너는 쉬웠어. 너무 쉬워서 걱정될 정도였어. 혹시 어디 아픈 건 아닌가 싶었어.”


어머니가 웃으셨다.


“그리고 너는 착했어. 말 잘 듣고, 말썽 안 부리고. 형이 말썽 피우면 너는 옆에서 ‘형, 안 돼’라고 말리고.”


“그랬나요? 기억 안 나는데.”


“어려서 기억 못 하는 거지. 엄마는 기억해. 다 기억해.”


어머니의 목소리가 따뜻했다.


“엄마가 제일 기억에 남는 게 뭐냐면…”


어머니가 계속 말씀하셨다.


“네가 국민학교 일학년 때였나. 어버이날에 카네이션을 만들어 왔어. 빨간 종이로. 서툴게 만든 거. 그리고 편지도 썼어. 삐뚤빼뚤한 글씨로. ‘엄마 사랑해요. 엄마 최고예요’라고.”


“그랬어요?”


“응. 엄마는 그게 너무 좋았어. 그날 하루 종일 행복했어. 가난하고, 힘들고, 지쳤지만, 그 카네이션과 편지를 보면서 ‘아, 내가 잘 살고 있구나’ 생각했어.”


어머니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엄마는 너희들한테 많이 못 해줬어. 좋은 옷, 좋은 음식, 좋은 것들. 하지만 너희들은 엄마를 사랑해줬어. 그것만으로도 엄마는 충분했어.”


“저희도 어머니 사랑해요.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


“고마워. 정말 고마워.”


침묵이 흘렀다. 편안한 침묵이었다.


“엄마, 질문 하나 해도 돼요?”


“뭔데?”


“후회되는 거 있으세요? 인생에서.”


어머니는 오래 생각하셨다.


“후회… 많지. 네 아버지한테 더 잘해줄걸. 화 덜 낼걸. 형한테 병원 더 일찍 가라고 할걸. 너한테 더 많이 안아줄걸. 손주들이랑 더 많이 놀아줄걸.”


“하지만요?”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최선을 다했으니까. 그 순간순간 엄마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으니까. 후회는 있지만 원망은 없어.”


“어머니…”


“너도 그렇게 살아라. 후회 없이는 못 살아. 사람이니까. 하지만 최선을 다해라. 그러면 원망은 없을 거야.”


“네, 어머니.”


“그리고 하나 더.”


“뭐예요?”


“엄마를 너무 걱정하지 마. 엄마는 괜찮아. 오래 살았고, 행복했고, 사랑받았어. 그것만으로 충분해.”


“하지만…”


“엄마도 언젠가는 가야지. 네 아버지도 갔고, 형도 갔는데, 엄마만 여기 있을 수는 없잖아. 때가 되면 가는 거야.”


“아직은 안 돼요. 더 오래 사셔야 해요.”


“그래. 조금 더 살게. 손주들 결혼하는 거 보고 가게. 증손주 보고 가게. 욕심 좀 부려볼게.”


어머니가 웃으셨다. 나도 웃었다. 하지만 눈물이 났다.


“엄마,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우리 아들.”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 나는 울었다. 한참을 울었다. 어머니가 언젠가 떠나신다는 것이, 그날이 머지않았다는 것이, 견딜 수 없이 슬펐다.


하지만 동시에 감사했다. 어머니가 계셨다는 것이. 어머니의 사랑을 받았다는 것이. 어머니의 자식으로 태어났다는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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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께 드리는 편지


어머니,


이 편지를 쓰는 지금, 어머니는 옆방에서 주무시고 계십니다. 오늘은 제 집에서 주무시기로 했거든요. 어머니의 잠든 모습을 보며 이 글을 씁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나를 낳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입니다. 어머니의 희생이 없었다면, 어머니의 헌신이 없었다면, 어머니의 기도가 없었다면.


어머니는 평생 우리를 위해 사셨습니다. 당신 자신은 뒤로하고, 늘 자식들을 먼저 생각하셨습니다. 당신이 배고파도 우리를 먼저 먹이셨고, 당신이 아파도 우리를 먼저 챙기셨습니다.


어머니의 손은 거칠었지만, 그 손이 나를 쓰다듬어줄 때 세상에서 가장 부드러웠습니다. 어머니의 등은 굽었지만, 그 등이 우리 가족을 지탱했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은 슬펐지만, 그 눈물 속에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어머니, 미안합니다.


효도를 제대로 못 해서 미안합니다. 바쁘다는 핑계로, 피곤하다는 핑계로, 어머니 곁에 더 자주 가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어머니가 외로우실 때 옆에 없어서 미안합니다. 어머니가 아프실 때 손을 잡아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어머니가 슬프실 때 위로해드리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하지만 어머니, 알아주세요.


저는 어머니를 사랑합니다. 말로 자주 표현하지는 못했지만, 제 마음속 깊은 곳에서 항상 어머니를 사랑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주신 사랑을 잊지 않았습니다. 어머니가 보여주신 희생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것들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도 어머니처럼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내 아이들에게 어머니가 나에게 해주셨던 것처럼 사랑을 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비록 어머니만큼은 못하지만.


어머니, 약속합니다.


어머니가 나를 잊으셔도, 저는 어머니를 잊지 않겠습니다. 어머니가 나를 모르셔도, 저는 어머니를 알겠습니다. 어머니가 떠나셔도, 저는 어머니를 기억하겠습니다.


어머니의 손을 기억하겠습니다. 어머니의 밥상을 기억하겠습니다. 어머니의 등을 기억하겠습니다. 어머니의 눈물을 기억하겠습니다. 어머니의 기도를 기억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을 내 아이들에게 전하겠습니다. “너희 할머니는 이런 분이셨어. 너무나 훌륭한 분이셨어. 우리 가족을 위해 평생을 사신 분이셨어”라고.


어머니,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세요.


손주들 결혼하는 것도 보시고, 증손주도 보시고, 더 많은 행복한 날들을 보내세요.


하지만 언젠가 어머니가 떠나셔야 할 때가 온다면, 편히 가세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희는 괜찮습니다. 어머니가 가르쳐주신 대로, 어머니가 보여주신 대로, 잘 살아가겠습니다.


그곳에서 아버지를 만나시면 안아주세요. 형을 만나시면 많이 웃어주세요. 할머니를 만나시면 편히 쉬고 계시다고 전해주세요.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 저도 그곳에 가면, 어머니 손을 잡고 함께 걸어요. 어린 시절처럼. 어머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던 그때처럼.


어머니, 사랑합니다.


평생 동안, 그리고 영원히.


당신의 아들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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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어머니라는 이름


어머니.


그 단어 속에 모든 것이 담겨 있다.


사랑, 희생, 헌신, 인내, 용서, 기도, 눈물, 웃음, 슬픔, 기쁨.


어머니는 한 사람의 이름이 아니다. 하나의 우주다. 하나의 역사다. 하나의 삶이다.


어머니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어머니 없는 우리 가족은 존재할 수 없다. 어머니는 우리의 시작이고, 중심이고, 전부다.


언젠가 어머니는 떠나실 것이다. 그것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하지만 어머니의 사랑은 영원할 것이다. 어머니의 기억은 영원할 것이다.


나는 어머니를 기억할 것이다.


거친 손으로 내 무릎을 닦아주시던 모습을.

밥상에서 나에게 반찬을 올려주시던 모습을.

굽은 등으로 가족을 지탱하시던 모습을.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시던 모습을.


그 모든 순간들을 기억할 것이다.


그리고 내 아이들에게, 손주들에게 전할 것이다.


“이것이 어머니라는 존재다. 이것이 사랑이다. 이것이 희생이다. 이것이 가족이다.”


어머니, 고맙습니다.


당신의 자식으로 태어나 영광이었습니다.


당신의 사랑을 받아 행복했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시간들은 제 인생의 가장 큰 축복이었습니다.


안녕히 주무세요, 어머니.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사랑합니다.


영원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