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라는 이름의 회고 - 5장 : 아내

사랑하는 나의 반쪽

by Fixframe

너무 늦은 고백


아내에 대해 쓴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많이 우는 것도, 가장 많이 미안한 것도, 가장 많이 후회하는 것도 아내에 대한 부분이다.


아내는 나보다 세 살 어리다. 스물네 살에 나를 만났고, 삼십 살에 결혼했다. 지금은 마흔일곱이다.


이십삼 년을 함께 살았다. 결혼 전 육 년의 연애 기간까지 합하면 거의 삼십 년이다.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사람.


하지만 고마워하는 법을, 사랑한다고 말하는 법을 배운 것은 너무 늦었다. 병이 들고 나서야. 죽음을 앞두고 나서야.


이제서야 고마움을 표현하는 이유는 남은 삶이 많지 않아서이기도 하지만, 아파지기 시작하면서 나에 대한 간호에 모든 시간을 쏟고 있는 아내를 보며 미안한 마음 때문이기도 하다.


아내는 많이 늙었다. 아이들 셋을 키우는 동안. 나를 돌보는 동안. 젊은 얼굴에 주름이 생기고, 까만 머리에 흰 머리가 섞이고, 밝던 눈빛이 피곤해졌다.


그것이 다 나 때문이라는 것을 안다. 내가 아내를 늙게 했다. 내가 아내의 젊음을 가져갔다.


미안하다. 그리고 고맙다. 너무 늦었지만, 이제라도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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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날


아내를 처음 만난 것은 1997년 여름이었다.


회사 동료의 소개였다. 같은 회사 디자인팀에 있던 여자. 나보다 세 살 어린 스물네 살.


첫 만남은 회식 자리였다. 팀 회식에 내가 끼어가게 되었고, 그 자리에 아내가 있었다.


첫인상은… 솔직히 잘 기억나지 않는다. 예뻤다는 것만 기억난다. 작은 키, 단발머리, 환하게 웃는 얼굴.


“안녕하세요. 저는 웹팀 김민수입니다.”


“안녕하세요. 디자인팀 이수진입니다.”


그렇게 인사를 나눴다. 평범한 인사. 특별할 것 없는 첫 만남.


하지만 그날 밤, 집에 돌아와서도 아내 생각이 났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자꾸 떠올랐다. 웃는 모습이, 목소리가, 눈빛이.


다음 날 출근해서 동료에게 물었다.


“어제 그분… 이수진 씨. 남자친구 있어?”


“아, 수진이? 없는 걸로 알아. 왜? 혹시…”


“아니야. 그냥 궁금해서.”


거짓말이었다. 관심이 있었다. 알고 싶었다. 만나고 싶었다.


용기를 내서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회사 메신저로.


“이수진 씨, 저 김민수입니다. 어제 회식 때 뵀었는데요. 혹시 점심 같이 드실 수 있으세요?”


답장이 왔다.


“네, 좋아요.”


그렇게 시작되었다. 우리의 이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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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 시절


육 년을 연애했다.


길다면 긴 시간이었다. 하지만 행복한 시간이었다.


아내는 명랑했다. 늘 웃었고, 긍정적이었고, 에너지가 넘쳤다. 나는 내성적이고 조용한 사람이었는데, 아내는 그 반대였다.


“왜 그렇게 조용해요? 말 좀 해요!”


아내가 투정 부렸다.


“나는 원래 이래. 말이 없어.”


“그래도 연애할 땐 말 좀 해야죠. 뭐 생각하는지 알아야 하잖아요.”


“생각? 당신 생각하지.”


“에이, 뻔한 소리.”


하지만 아내는 웃었다. 그 뻔한 소리에도 좋아하며 웃었다.


우리는 자주 만났다. 주말마다. 퇴근 후에도. 시간이 날 때마다.


영화를 보러 갔고, 맛집을 찾아다녔고, 공원을 산책했다. 평범한 연애. 특별할 것 없는 데이트. 하지만 그 모든 순간이 행복했다.


아내는 요리를 좋아했다. 자기 집에 나를 초대해서 직접 만든 음식을 대접했다.


“어때요? 맛있어요?”


“응, 맛있어.”


“진짜요? 거짓말 아니죠?”


“진짜야. 정말 맛있어.”


아내는 뿌듯해하며 웃었다. 그 웃음이 좋았다.


가끔 싸웠다. 다른 연인들처럼. 사소한 일로.


“왜 전화 안 받았어요?”


“바빴어. 회의 중이었어.”


“회의 끝나고 바로 전화하면 되잖아요. 얼마나 기다렸는데.”


“미안해. 깜빡했어.”


“맨날 깜빡해요. 진짜 나한테 관심 없는 거 아니에요?”


“아니야. 관심 있어. 많이 있어.”


“그럼 좀 더 신경 써요.”


“알았어. 앞으로 신경 쓸게.”


싸우고 나면 화해했다. 내가 먼저 사과하고, 아내가 용서해주고, 그렇게 다시 평화로워졌다.


육 년 동안 우리는 헤어질 뻔한 적도 있었다. 크게 싸워서. 서로 소원해져서.


“이렇게 사는 게 맞나 싶어요. 우리 안 맞는 거 아닐까요?”


아내가 울며 말했다.


“무슨 소리야. 우리 잘 맞아.”


“안 맞아요. 당신은 조용하고, 나는 시끄럽고. 당신은 집에만 있으려 하고, 나는 밖에 나가고 싶고. 다 달라요.”


“달라도 괜찮아. 그래서 더 좋은 거 아니야?”


“그게 좋은 건지 모르겠어요.”


한동안 연락을 끊고 지냈다. 일 개월쯤. 그 시간이 너무 힘들었다. 아내 없는 하루하루가 공허했다.


결국 내가 먼저 연락했다.


“보고 싶어. 만날 수 있어?”


아내도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바로 답장이 왔다.


“나도 보고 싶었어요.”


만나서 이야기했다. 오래. 솔직하게.


“나 당신 없으면 안 돼.”


“나도요.”


“결혼하자. 우리 결혼해.”


갑작스러운 청혼이었다. 준비도 안 된 청혼. 하지만 진심이었다.


아내는 울었다. 그리고 고개를 끄덕였다.


“네. 결혼해요.”


그렇게 우리는 약속했다. 평생을 함께하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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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그리고 시작


결혼은 2000년 봄에 했다.


준비 기간이 짧았다. 돈도 별로 없었다. 하지만 행복했다.


작은 예식장에서 작은 결혼식을 올렸다. 가족과 친구들만 초대했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따뜻했다.


아내는 웨딩드레스를 입고 빛났다. 천사 같았다. 아름다웠다.


“평생 행복하게 해줄게.”


내가 약속했다.


“나도 당신을 평생 사랑할게요.”


아내도 약속했다.


우리는 그 약속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완벽하지는 못했지만.


신혼집은 부천의 작은 전세였다. 좁았지만 우리만의 공간이었다.


신혼 생활은 달콤했다. 매일 아침 함께 일어나고, 함께 아침을 먹고, 함께 출근하고, 함께 퇴근하고,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텔레비전을 보고, 함께 잠들었다.


“행복해요?”


아내가 물었다.


“응, 너무 행복해.”


“나도요. 이렇게 행복할 줄 몰랐어요.”


하지만 그 달콤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결혼 삼 개월 만에 아내가 임신했다.


예상치 못한 임신이었다. 준비도 안 됐고,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기뻤다. 우리의 아이가 생긴다는 것이.


“우리 부모가 되는구나.”


“네. 떨려요. 잘할 수 있을까요?”


“잘하지 뭐. 우리 잘할 수 있어.”


하지만 그것은 자신감이 아니라 무지였다. 부모가 된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몰랐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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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을 키우며


큰아이가 태어났다. 딸이었다.


제왕절개였다. 아내는 수술대 위에 누워 고통을 겪었다. 나는 수술실 밖에서 기다렸다. 불안했다.


몇 시간 후, 간호사가 나왔다.


“딸 낳으셨어요. 산모도 아기도 건강해요.”


안도했다. 그리고 아기를 봤다. 작았다. 빨갛고 주름진 얼굴. 하지만 아름다웠다.


아내는 회복실에 누워 있었다. 피곤해 보였지만 웃고 있었다.


“우리 딸이에요.”


“응. 예쁘다.”


“당신 닮았어요.”


“아니야. 당신 닮았어. 다행이야.”


그날부터 우리의 진짜 삶이 시작되었다.


육아는 전쟁이었다. 아기는 밤낮없이 울었고, 우리는 잠을 잘 수 없었다. 교대로 아기를 돌봤지만 둘 다 녹초가 되었다.


특히 아내가 힘들어했다. 모유 수유를 하느라 몸이 망가졌고, 산후우울증까지 왔다.


“못 하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아내가 울었다.


“조금만 참아. 아기가 크면 나아질 거야.”


“언제요? 언제 나아져요?”


“곧. 곧 나아질 거야.”


하지만 쉽지 않았다. 큰아이가 돌이 될 때까지 아내는 계속 힘들어했다.


그리고 큰아이가 두 돌이 되었을 때, 아내가 다시 임신했다.


“또 임신했어요.”


아내의 목소리에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섞여 있었다.


“괜찮아. 우리 할 수 있어.”


“진짜요? 큰애도 힘든데 둘째까지…”


“괜찮아. 내가 도와줄게.”


하지만 그것도 빈말이었다. 나는 바빴고, 돈을 벌어야 했고, 집에 있는 시간이 적었다.


결국 아내가 혼자 감당해야 했다. 큰아이를 돌보면서 임신을 견디는 것을.


그런데 그 임신 중에 장모님이 폐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다. 아내는 무너졌다.


임신한 몸으로 병원을 오가며 어머니를 돌봤다. 큰아이도 돌봐야 했고, 자기 몸도 챙겨야 했는데, 어머니까지.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그리고 결국 유산했다.


병원에서 전화가 왔다. 아내가 울고 있었다.


“아기가… 아기가 죽었어요…”


그날 밤 아내를 안고 함께 울었다. 우리의 아이를 잃은 슬픔에.


몇 개월 후, 아내는 다시 임신했다. 이번에는 조심했다. 무리하지 않으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아들을 낳았다. 건강한 아들.


“아들이에요. 우리 아들.”


아내는 행복해했다. 장모님이 그렇게 원하시던 아들을.


하지만 장모님은 손주를 보지 못하고 몇 달 후 돌아가셨다.


아내는 또 무너졌다.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하고 장례를 치렀다. 아기를 업고, 큰애 손을 잡고.


“힘들지?”


“힘들어요. 너무 힘들어요.”


“미안해. 내가 더 도와줘야 하는데.”


“괜찮아요. 당신도 바쁜 거 아니까.”


하지만 괜찮지 않았다. 아내는 점점 지쳐갔다.


그리고 이 년 후, 막내가 태어났다. 다시 딸이었다.


세 아이. 큰애, 둘째, 막내.


아내는 혼자서 세 아이를 키웠다. 나는 일한다는 핑계로 집을 비웠고, 아내는 집에서 아이들과 싸웠다.


“밥 먹어!”


“숙제해!”


“왜 싸워!”


“조용히 해!”


매일 소리 지르고, 매일 혼내고, 매일 지쳐갔다.


아내의 얼굴에서 웃음이 사라졌다. 밝던 눈빛이 흐려졌다. 젊던 얼굴에 주름이 생겼다.


서른다섯의 아내는 마흔처럼 보였다. 아이들이 아내를 늙게 했다. 아니, 내가 아내를 늙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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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희생


아내는 자기 자신을 포기했다.


결혼 전, 아내는 디자이너였다. 재능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고, 꿈이 있었다.


“나중에 내 스튜디오를 차리고 싶어요.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아내가 말했었다. 결혼 전에.


하지만 결혼하고 아기가 생기면서 모든 것을 포기해야 했다.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아이를 돌보고, 꿈을 접었다.


“언젠가 다시 일할 거예요. 아이들 크면.”


아내가 말했다.


“그래. 그때 다시 해.”


하지만 아이들은 쉽게 크지 않았다. 큰애가 조금 크면 둘째가 태어났고, 둘째가 조금 크면 막내가 태어났다.


세 아이를 키우느라 십 년이 흘렀다. 그 십 년 동안 아내는 집에만 있었다. 아이들만 돌봤다. 자기 자신은 잊고 살았다.


“당신도 당신 인생을 살아야지.”


내가 가끔 말했다.


“인생? 나한테 무슨 인생이 있어요. 아이들 키우는 게 내 인생이죠.”


아내의 목소리는 씁쓸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해요. 당신 잘못도 아닌데.”


하지만 내 잘못이었다. 내가 아내에게 그렇게 살라고 강요한 것이었다.


“아이들한테 엄마가 필요해. 다섯 살까지는 엄마가 꼭 곁에 있어야 한대.”


나는 교육학 논문을 핑계로 아내를 집에 묶어뒀다. 아내가 일하겠다고 할 때마다 만류했다.


“조금만 더 참아. 막내가 유치원 가면 그때 일해.”


그렇게 시간을 미뤘다. 그리고 막내가 유치원에 갈 때쯤, 아내는 지쳐 있었다. 다시 시작할 엄두를 못 냈다.


“이제 너무 늦었어요. 십 년 동안 일 안 했는데 누가 나를 뽑겠어요.”


“그래도 해봐. 프리랜서라도.”


“프리랜서? 애들 돌보면서 어떻게 일해요. 시간도 없고, 에너지도 없어요.”


아내는 포기했다. 자기 꿈을. 자기 커리어를.


그리고 그 포기 위에 우리 가족이 있었다. 아이들의 성장이 있었다. 나의 편안함이 있었다.


아내의 희생 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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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 싸움


우리는 자주 싸웠다.


특히 아이들이 어렸을 때. 육아 스트레스, 경제적 압박, 시간 부족. 모든 것이 우리를 짓눌렀다.


“당신은 맨날 일만 해요! 집에는 관심도 없고!”


아내가 소리쳤다.


“내가 왜 일하는데! 돈 벌려고! 우리 가족 먹여 살리려고!”


“돈만 벌면 다예요? 아이들은요? 나는요?”


“당신도 일하면 되잖아! 왜 나만 일해야 해!”


“일을 어떻게 해요! 애들 누가 봐요!”


말이 거칠어졌다. 서로를 탓했다. 상처를 줬다.


“당신이랑 결혼 안 할걸.”


아내가 울며 말했다.


“나도 후회해.”


나도 화가 나서 대답했다.


그런 말을 하고 나면 후회했다. 진심이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은 돌이킬 수 없었다.


한동안 서로 말을 안 했다. 같은 집에 살면서도 남이 된 것처럼. 필요한 말만 최소한으로.


“밥 먹어.”


“응.”


“애들 학교 갔어?”


“응.”


그게 전부였다.


아이들은 눈치를 봤다. 우리가 싸우는 것을 알았다. 조심스러워했다.


“엄마, 아빠랑 싸웠어?”


큰애가 물었다.


“아니야. 안 싸웠어.”


“거짓말. 티 나. 왜 싸워?”


“어른들 일이야. 신경 쓰지 마.”


하지만 아이들이 어떻게 신경을 안 쓸 수 있을까. 부모가 싸우는데.


결국 내가 먼저 사과했다. 대부분.


“미안해. 내가 잘못했어.”


“뭐가 잘못했는데요.”


“말을 심하게 해서. 당신 마음 아프게 해서.”


아내는 한참 말이 없다가 대답했다.


“나도 미안해요. 나도 심하게 말했어.”


“괜찮아. 이해해.”


“이해는요. 나도 당신 이해 안 돼요.”


그래도 화해했다. 안 하면 안 되니까. 우리는 부부니까.


시간이 지나며 싸움은 줄었다. 체념한 것일 수도 있다. 서로를 이해하게 된 것일 수도 있다.


이제는 거의 싸우지 않는다. 큰 싸움은. 사소한 티격태격은 있지만.


하지만 그 수많은 싸움의 상처는 남아 있다. 보이지 않게. 마음속 깊은 곳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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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병


일 년 전, 나는 병을 진단받았다.


췌장암. 말기.


의사는 말했다. “육 개월에서 일 년 정도 남았습니다.”


세상이 무너졌다. 아직 오십밖에 안 됐는데. 아이들도 아직 어린데.


아내에게 말하기가 두려웠다.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몰랐다.


집에 와서 아내를 마주했다. 평범한 저녁이었다. 아내는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당신, 왔어요? 밥 곧 돼요.”


“응…”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아내가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얼굴이 안 좋아 보이네.”


“앉아봐. 할 말이 있어.”


아내는 앉았다. 불안한 표정으로.


“뭔데요? 무슨 일이에요?”


“나… 병원에서 진단받았어.”


“진단? 무슨?”


“췌장암. 말기래.”


침묵이 흘렀다. 긴 침묵.


아내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손이 떨렸다.


“거짓말이죠?”


“미안해. 진짜야.”


“얼마나… 얼마나 남았다고 했어요?”


“육 개월에서 일 년.”


아내는 울음을 터뜨렸다. 소리 내어 울었다.


나도 울었다. 처음으로 아내 앞에서 울었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왜 당신이 미안해요. 당신 잘못도 아닌데.”


“당신 혼자 두고 가게 돼서. 아이들 혼자 키우게 해서.”


“그런 소리 하지 마요. 당신 안 갈 거예요. 치료하면 나아질 거예요.”


하지만 우리 둘 다 알았다. 췌장암 말기는 치료가 어렵다는 것을. 기적이 필요하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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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간호


그날 이후 아내는 변했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나를 돌보기 시작했다.


병원 예약, 약 챙기기, 식단 관리, 운동 보조. 아내의 하루는 나를 중심으로 돌아갔다.


“이거 먹어요. 몸에 좋대요.”


“이 운동 해요. 체력 유지해야 해요.”


“약 시간이에요. 먹어요.”


“병원 가야 해요. 준비해요.”


아내는 쉬지 않았다. 나를 위해.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부작용이 심했다. 구토, 탈모, 피로, 식욕 부진.


가장 힘들 때, 아내가 곁에 있었다.


“괜찮아요. 조금만 참아요.”


“너무 힘들어. 못 하겠어.”


“할 수 있어요. 당신은 강한 사람이에요.”


아내는 내 등을 쓰다듬어줬다. 토할 때 물을 떠다 줬다. 밤새 깨어 나를 지켰다.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을 때, 아내가 내 머리를 밀어줬다.


“차라리 밀어버려요. 그게 나아요.”


아내는 바리캉으로 내 머리를 밀었다. 조심스럽게. 다정하게.


“다 밀었어요. 거울 볼래요?”


거울을 봤다. 낯선 얼굴이었다. 머리가 없는 나. 병든 나.


“못생겼지?”


“아니요. 멋있어요.”


거짓말이었지만 고마웠다.


밥을 먹지 못할 때, 아내는 특별한 음식을 만들었다. 부드럽고, 소화하기 쉽고, 영양가 높은 음식.


“이거라도 먹어요. 조금만.”


“먹기 싫어. 다 토할 것 같아.”


“그래도 먹어야 해요. 기력이 있어야 버텨요.”


아내는 한 숟가락씩 떠서 내 입에 넣어줬다. 어린아이 먹이듯이.


“잘했어요. 조금 더.”


그렇게 한 끼를 먹는 데 한 시간이 걸렸다. 하지만 아내는 인내심 있게 기다렸다.


밤에 잠을 못 잘 때, 아내가 옆에 누워 내 손을 잡아줬다.


“무서워?”


“응. 무서워. 죽는 게 무서워.”


“괜찮아요. 나 여기 있잖아요.”


“당신도 무섭지?”


“무서워요. 당신 없는 세상이 무서워요.”


우리는 손을 꽉 잡고 밤을 견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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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늦은 깨달음


병이 들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내가 나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내가 아내를 얼마나 당연하게 여겼는지.


좋은 감정으로 시작된 우리의 인연은 가정을 일구고 세 명의 자식을 성인으로 키우는 시간까지 흘러왔다. 그 긴 시간 동안 아내는 늘 내 곁에 있었다.


하지만 나는 고마워하지 않았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당연하게 여겼다.


이제서야 아내의 고마움을 깨닫게 된 것이 미안한 마음 때문이다.


왜 진작 몰랐을까. 왜 건강할 때 고마워하지 못했을까. 왜 젊었을 때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했을까.


후회가 밀려왔다. 거대한 파도처럼.


“당신, 고마워.”


어느 날 내가 말했다.


“왜 갑자기요?”


“그냥. 고마워서.”


“뭐가요?”


“다. 모든 게. 나를 돌봐줘서. 아이들 키워줘서. 나랑 살아줘서.”


아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무슨 소리예요. 당연한 거잖아요.”


“당연하지 않아. 정말 고마워.”


“…고맙긴요. 나도 고마워요.”


“뭐가?”


“당신이 내 남편이어서. 내 인생의 반쪽이어서.”


우리는 안았다. 오랜만에. 아이들이 어렸을 때 이후로 처음으로.


“사랑해.”


내가 말했다.


“나도 사랑해요.”


아내가 대답했다.


그 순간, 깨달았다. 이 말을 진작 했어야 했다는 것을. 매일 했어야 했다는 것을.


하지만 너무 늦었다. 이제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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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에게 남기는 말


아내, 이 글을 읽을 당신에게.


내가 이 글을 쓸 때, 당신은 부엌에서 내일 먹을 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내가 소화하기 쉬운 음식을. 영양가 높은 음식을.


당신은 쉬지 않습니다. 나를 위해. 하루 종일 나를 돌보고, 밤에도 깨어 나를 챙깁니다.


미안합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


당신과 결혼한 것은 내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습니다. 당신이 아니었다면 나는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당신이 있어서 가정이 있었고, 아이들이 있었고, 행복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고마워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한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정말 미안합니다.


당신은 나를 위해 많은 것을 포기했습니다. 꿈도, 커리어도, 자유도. 그 모든 것을 포기하고 나와 아이들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당연하게 받았습니다.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이제야 알았습니다. 당신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얼마나 외로웠는지. 얼마나 많은 것을 감내했는지.


미안합니다. 진심으로.


그리고 고맙습니다. 진심으로.


당신 덕분에 나는 행복했습니다. 당신 덕분에 나는 아버지가 될 수 있었습니다. 당신 덕분에 나는 완전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곧 떠납니다. 당신을 두고. 아이들을 두고.


마음이 아픕니다. 당신 혼자 남겨두는 것이. 하지만 한편으로는 안심이 됩니다.


내가 가도 당신만 남지 않아서. 아이들이 있으니까. 당신에게는 큰애, 둘째, 막내가 있으니까.


아이들이 당신을 지킬 것입니다. 내가 하지 못한 것을 아이들이 할 것입니다.


당신을 행복하게 해줄 것입니다. 웃게 해줄 것입니다. 외롭지 않게 해줄 것입니다.


그러니 너무 슬퍼하지 마세요. 나를 위해 울지 마세요. 당신의 삶을 사세요.


아이들과 오래오래 행복하게 사세요. 웃으며 사세요. 건강하게 사세요.


그리고 언젠가, 먼 훗날, 당신도 이 세상을 떠날 때가 오면, 그때 나를 찾아오세요.


다시 우리 만나요. 그곳에서.


그때도 나의 아내가 되어줘요. 다시 한번 당신의 남편이 되고 싶습니다.


그땐 일찍 고마워하고, 일찍 사랑한다고 말할게요. 매일매일 말할게요.


당신을 당연하게 여기지 않을게요. 소중히 대할게요. 행복하게 해줄게요.


약속합니다.


지금까지 못 해준 모든 것을, 다음 생에는 다 해줄게요.


그러니 기다려줘요. 오래 걸리겠지만. 수십 년 걸리겠지만.


기다려줘요. 당신의 남편을.


사랑합니다, 아내.


이생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영원히.


고맙습니다.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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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의 눈물


이 편지를 아내에게 보여줬다.


아내는 읽으며 울었다. 소리 내어 울었다.


“왜 이제야… 왜 이제야 이런 말을 해요…”


“미안해. 진작 했어야 했는데.”


“늦었어요. 너무 늦었어요…”


아내는 내게 안겼다. 꽉 안았다.


“가지 마요. 제발 가지 마요.”


“미안해. 나도 가기 싫어.”


“그럼 가지 마요. 여기 있어요. 나랑 같이 있어요.”


“그럴 수 있으면 좋겠어. 하지만…”


“싫어요. 안 돼요. 당신 없으면 나 어떻게 살아요.”


“살 수 있어. 당신은 강한 사람이야.”


“강하지 않아요. 나 약해요. 당신 없으면 못 살아요.”


“아이들이 있잖아.”


“아이들로는 안 돼요. 당신이 있어야 돼요.”


우리는 한참을 안고 울었다. 서로를 붙잡고.


“다음 생에 다시 만나요.”


내가 말했다.


“다음 생은 싫어요. 이번 생에서 같이 있고 싶어요.”


“나도. 하지만 안 되잖아.”


“왜 안 돼요. 기적이 일어날 수도 있잖아요.”


“기적…”


“네. 기적. 당신 나을 거예요. 꼭 나을 거예요.”


아내는 믿고 싶어 했다. 기적을. 하지만 우리 둘 다 알았다. 기적은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그래도… 그래도 다음 생에 만나면…”


아내가 말을 이었다.


“다시 당신 아내가 될게요. 또 당신을 사랑할게요.”


“고마워.”


“그땐 일찍 사랑한다고 말해줘요. 일찍 고마워해줘요.”


“그럴게. 약속해.”


“그리고 오래오래 함께 있어줘요. 이번처럼 일찍 가지 말고.”


“그럴게. 백 년도 넘게 같이 살자.”


“백 년도 모자라요. 천 년.”


우리는 웃었다. 울면서 웃었다.


“사랑해, 아내.”


“나도 사랑해요,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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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한 시간, 함께할 시간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의사는 말했다. 삼 개월 정도. 길어야 육 개월.


하지만 우리는 그 시간을 소중히 보내기로 했다.


매일 아침, 함께 일어난다. 아내가 죽을 준비해주고, 나는 천천히 먹는다. 아내는 옆에 앉아 나를 지켜본다.


“맛있어요?”


“응. 당신 솜씨가 늘었어.”


“거짓말. 맨날 이것만 만드는데.”


“그래도 맛있어.”


식사 후, 짧은 산책을 한다. 아파트 단지 안을. 아내가 내 팔을 잡아준다. 천천히 걷는다.


“날씨 좋네.”


“그러네요. 봄이 왔어요.”


“봄… 내가 볼 수 있는 마지막 봄이겠지.”


“그런 소리 하지 마요.”


“사실인데.”


“사실이어도 말하지 마요. 듣기 싫어요.”


오후에는 함께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옛날 이야기를. 처음 만났을 때, 연애하던 때, 결혼 초기.


“기억나요? 처음 만났을 때.”


“응. 회식 자리였지.”


“당신 첫인상 어땠어요?”


“예뻤어. 환하게 웃는 게.”


“나는 당신이 조용해 보여서 좋았어요. 신중하고 믿음직스러워 보였어요.”


“지금도 그렇게 보여?”


“아니요. 지금은 그냥 내 남편이에요.”


우리는 웃었다.


저녁에는 아이들이 온다. 큰애, 둘째, 막내. 모두 모인다.


“아빠, 오늘 어때요?”


“괜찮아. 너희들 보니까 힘이 나.”


“거짓말. 안 괜찮은 거 티 나요.”


“그래도 너희 보면 좋아.”


아이들과 이야기하고, 농담하고, 웃는다. 평범한 가족의 저녁 시간.


하지만 모두가 안다. 이것이 마지막일 수도 있다는 것을. 그래서 더 소중히 여긴다.


밤에는 아내와 둘이 있는다. 침대에 나란히 누워 손을 잡는다.


“오늘도 고마웠어.”


“뭐가요?”


“다. 모든 게.”


“나도요. 고마워요.”


“사랑해.”


“나도 사랑해요.”


그렇게 매일을 보낸다. 남은 시간을.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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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 아내라는 이름


아내.


그 단어에는 내 인생의 반이 담겨 있다.


사랑, 가족, 행복, 고통, 희생, 헌신.


아내 없는 나는 상상할 수 없다. 아내가 아니었다면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늦었지만 이제는 안다. 아내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내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그리고 후회한다. 진작 말하지 못한 것을. 진작 고마워하지 못한 것을.


하지만 이제라도 말한다.


고맙습니다, 아내.


당신의 남편이 되어 영광이었습니다.


당신과 함께한 시간은 내 인생 최고의 시간이었습니다.


사랑합니다.


이생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영원히.


안녕, 아내.


잘 살아요.


행복하게 살아요.


언젠가 다시 만날 때까지.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