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끌벅적한 점심시간, 교실 안에서 이어폰을 꼽고 심드렁한 표정으로 턱을 괴고 있는 숏컷의 여고생. 음량을 최대치로 해둬서인지 양쪽 이어폰 사이로 흘러나오는 거친 음악소리. 빅뱅, 소녀시대, 원더걸스, 엠블랙 등 아이돌 이야기를 주로 나누던 주변 친구들과의 잡담이 귀찮아 보인다. 그 소녀의 귀에 울리는 음악은 주로 팝송, 락 위주였고 가사보다는 그날 분위기에 맞는 멜로디 위주의 노래를 선곡했다.
지마켓에서 구매한 이름 모를 23,900원짜리 MP3. 그 속에 내 취향이 묻어나는 팝송과 락을 넣어 소중히 쥐고 다니던 시절의 나. 사춘기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다 어둡고 우중충한 노래가 대부분이었던 것 같다. 공부와 대학 진학에 큰 관심이 없었던 고3이었기에 크게 힘든 게 없었는데도 그땐 왜 그렇게 땅굴 속으로 파고들었는지. 굴삭기 마냥 땅을 파대는 습성은 솔직히 지금도 여전하다. 본래 타고난 기질인 거지 뭐.
음악을 듣고 부르는 걸 좋아하는 건 아마 부모님의 영향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엄마의 말에 의하면 아빠는 가수를 준비했었다고 한다. 아빠는 라이브 카페에서 통기타와 함께 노래를 부르기도 했고 엄마도 합창단 제의를 받았다고 했었으니까.
나는 10대 때부터 가수 윤하의 노래도 즐겨 들었다. 어쩌다 인터넷을 통해 음원 불법다운이 나쁘다는 걸 알았고 원 저작자에게 돌아가는 수익이 거의 없다는 걸 알았다. 그 이후로 더 이상 음원을 어둠의 경로를 통해 다운 받지 않았다. 그 당시 용돈을 요구하기 어려웠던 집안사정에 내가 선택한 방법은 좋아하는 가수의 팬카페를 가입하는 것이었다. 팬 카페 BGM으로 타이틀 곡뿐만 아니라 다른 수록곡들도 들을 수 있었고 창 하나만 켜두면 24시간 내내 노래가 흘러나왔으니까.
그러다 대학을 가게 되었고 라섹을 하게 된다. 라섹 후 3일 동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었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누워있어야만 했다. 그때 내 곁을 함께 했던 건 라디오였다. 그렇게 윤하가 MC를 맡고 있는 '별이 빛나는 밤에'를 처음 듣게 되었고 그때 나는 '가수' 윤하가 아닌 '사람' 윤하에게 빠져버렸다. 노래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윤하라는 사람이 궁금해졌달까. 겨우 며칠 들었던 라디오에서 공인을 대상으로 동질감을 느끼는 것도 웃기지만 이상하게 뭔지 모를 비슷함이 느껴졌다.
라디오를 듣고 앨범을 사서 모으고 콘서트를 가고 지방 공연도 따라가 보고. 20대 초중반까지 내 인생 최대 덕질의 시기였다고 말할 수 있다. 아마 내가 서울에 살았으면 대부분의 행사와 공연을 따라다니며 신나게 덕질을 했을 것이다. 한 앨범을 세상에 들려주기 위해 몇 년을 고심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곡에 대한 진중함이 느껴졌다. 음악을 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15살의 소녀가 아무것도 없이 일본으로 무작정 건너가서 데뷔를 했다는 건 그만큼 절실했고 진심이었기에 가능했지 않았을까. 그 마음이 음악을 대하는 태도에서도 잘 나타나서 좋은 창작물이 많이 만들어지는 것 같다.
마음이 힘들고 지칠 땐 'Home', '스물두 번째 길', '답을 찾지 못한 날', 'Truly', 'Set me free', 'Someday'를 시원한 락이 듣고 싶을 땐 'supersonic', 'subsonic', 'fireworks', 'P.R.R.W', 'hero'를 사랑에 아플 땐 '소나기', '봄은 있었다', '내 마음이 뭐가 돼', '없던 일처럼', '시간을 믿었어 ' 등 윤하의 다양한 곡들.. 꼭 한번 들어보라고 말하고 싶다.
내 오른쪽 손목에는 타투가 하나 있다. 한번 새기면 지울 수 없으니 그만큼 의미 있는 걸 새기고 싶었달까. 그렇게 오랜 시간 고민 끝에 남긴 콜드플레이의 'Fix you'. 노래의 가사를 해석하는 순간 곡이 너무나 따뜻하게 느껴졌고 엄청난 위로가 되었다. 영어라고는 알파벳과 기본적인 단어밖에 모르던 내가 하루 만에 영어가사를 다 외워버렸을 정도로 의미가 있는 곡이다.
이 곡은 삶에 지쳐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위로를 건네는 곡이다. 내가 꽂힌 구절은 바로 이 부분이다.
‘Lights will guide you home And ignite your bornes And i will try to fix you’(빛들이 너를 집으로 인도하고 네 몸의 깊은 뼛속까지 따스하게 밝힐 거야. 그리고 내가 널 치유해 줄게). 여기서 따스하게 치유해 주겠다는 말이 단순히 가사로 들리지 않았다. 아무도 몰랐던 나의 힘든 마음을 헤아리고 있던 누군가가 해주는 말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fix you’라는 문구는 내 첫 번째 타투가 되었다.
누군가는 내게 "노래로 위로를 받는 게 공감이 안 가"라고 말한 적 있다. 노래는 그저 노래일 뿐이라고. 맞다. 노래는 노래고 내가 쓰는 글도 그저 글일 뿐이다. 그치만 한 글자씩 모여져서 만들어진 음절과 문장들은 또 다른 누군가에게 삶의 희망을, 따뜻한 위로를, 마음의 위안을 준다. 글의 힘을 아는 사람들은 글을 계속 찾아 읽고 쓰는 것처럼 노래도 마찬가지 아닐까. 지금 생각해 보면 내가 노래를 계속 찾아 듣는 이유 중 하나가 그때 그 순간의 감정을 공감받고 위로받기 위함이었음을 다시 한번 느낀다.
요즘은 현생에 부딪혀 예전처럼 시간을 내어 노래를 찾거나 하지는 않는다. 그래도 여전히 출퇴근길 나를 제일 먼저 지배하는 건 양쪽 블루투스 이어폰에 울리는 음악이다. 언젠가는 운동과 헬스에 관한 글뿐만 아니라 작사도 한번 해보고 싶은 마음. 내가 느낀 모든 것들을 글이든 작사든 어떠한 방식으로든 표현하고 널리 널리 알려 단 한 명에게라도 선한 영향력을 주고 싶다. 세상은 작고 작은 힘들이 모여 함께 살아지는 거니까. 내가 음악을 듣고 어두운 마음을 밝혀왔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