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 말이 있다. 현재 가장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의 모습이 지금 내 모습이라고. 이렇게 말하면 내 주변 사람들이 뿌듯해할까? 불쾌해할까? '끼리끼리'라는 단어가 나와 내 주변 사람들에게는 부정적으로 작용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할 수 있다’와 ‘할 수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차이가 있다. 전자는 긍정으로 똘똘 뭉쳐 되든 안 되든 목표를 향해 도전하는 모습을 보인다. 또 주변 사람들을 응원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반면 불가능의 뉘앙스를 풍기며 자꾸만 자존감을 깎아내리는 후자. '에이~ 못할 걸~', '네가~?', '하던 거나 잘해' 등의 말들로 나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드는 사람들. 이제 이런 사람들은 조금씩 멀리하게 된달까. 그게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어도 말이다.
요즘은 나를 격려하고 응원해 주는 사람들 위주로 자주 만나게 된다. 이게 내 삶에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 같다. 이들 또한 자기가 하고자 하는 것들에 도전하고 성취를 해 나가는 사람으로서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간다. 나는 또 그 모습을 보며 영향을 받는다. 그래서 이때까지 내가 지내온 시간과는 전혀 다르게 한 주를 보낸다.
1~2년 전의 내 모습은 영혼 없이 회사만 출퇴근하는 직장인이었다면, 지금은 좀 다르달까. 매일 택시를 타고 기차를 타며 이동하는 출퇴근길이 꽤 피곤하긴 하다. 하지만 하고 싶었던 취미생활을 놓지 않으려 한다. 매주 글쓰기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하면서 올해 목표였던 카카오 브런치 작가도 승인되었다. 퇴근 후주 4~5일은 헬스장에서 웨이트를 하며, 매주는 아니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꼭 등산을 가려고 한다.
한창 운동에 빠져서 헬스장에 매일매일 출석하던 때가 있었다. 그 당시 주위 사람들이 나를 보며 건강한 자극을 받는 걸 느끼면서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오로지 내 삶에 집중하고, 도전하다 보면 내 주변 사람들도 자연스레 물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 그래서 좋은 사람을 찾아가기보다는 내가 먼저 변화하고 싶다는 마음. 그렇게 한 명씩 물들어서 지금보다 삶을 더 알차게 즐기면서 보낼 수 있는 친구들이 많아지는 게 내 희망사항이기도 하다.
이렇게 나와 비슷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내 곁에서 오래오래 머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기 위해선 나부터 실천하고 변화해야겠지. 나의 이런 생각과 마음가짐들이 단 한 명에게라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면 내 삶이 조금 더 가치 있지 않을까.
내게 좋은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10대, 20대 때는 장난과 조언이랍시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하는 막말에 상처를 받아도 그것 또한 우정의 표시라고 여겼다. 그 당시엔 과격한 표현이 친분의 척도처럼 받아들여지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30대가 되고 나니 가까울수록 선을 지키고 무엇이든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 좋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마워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진 친구와 오래오래 우정을 쌓고 싶다.
나도 내 맘을 모르는데 타인이 어떻게 나를 다 이해할까? 간혹 누군가 나를 본인이 생각하는 틀에 박아놓고, '너는 이런 애니까', '너 원래 그렇잖아', '내가 아는 넌 이런 사람인데'라고 말할 때가 있다.
난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큰 반감이 든다. 그들이 말했듯나란 사람을 이렇게 규정하기 쉽다면 나 스스로를 다루기 참 편할 텐데. 사이가 깊을수록 배려와 함께 예의를 지켜야 한다는 말이 이제는 정말 와닿는다.
이제는 경험치가 쌓여 사람을 볼 수 있는 나만의 기준이 생긴 것 같다. 그래서 내게 부정적인 영향을 주는 사람들과는 점점 거리를 두게 되고 나 자신을 더 우선시하게 된다. 좋은 사람, 좋은 인연을 만나기 위해선 결국 스스로에게 먼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걸 느끼는 요즘이다. 타인의 삶보다 내 삶에 관심을 가지고 집중하다 보면, 비슷한 류의 사람들이 모여 자연스레 청신호를 울리는 ‘끼리끼리’가 형성될 거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