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제주 1년 살기를 하면 뭘 할 수 있을까?
작년 5월, 6년을 다닌 직장을 시원하게 퇴사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퇴사를 하고 여행을 많이 떠난다는데 그중 한 곳이 아마 제주도가 아닐까. ‘퇴사한 사람들이 다 모여있는 곳 = 제주도’라는 공식이 있을 정도니까. 그렇게 나도 제주도로 떠났고 어쩌다 보니 2주살이를 하게 됐다. 혼자 길게 여행을 다녀본 적이 없었던 나. 가더라도 항상 누군가와 함께였기에 온전히 혼자만의 여행을 해보고 싶었다. 원래는 2주가 아닌 일주일이었으나 여행 마지막날 너무 아쉬워서 즉흥으로 한 주 더 보내게 되었다는 비하인드. 첫 주는 서귀포시 중문에서, 두 번째 주는 제주시 조천읍에서 제주와의 시간을 보냈다.
몇 년 전만 해도 제주도는 2박 3일로 여러 번 다녀오기도 했다. 하지만 그 짧은 시간 동안 온전히 제주를 즐긴다기보다 가야 할 곳들을 가야 하는 ‘도장깨기’같은 느낌이 더 강했다. 여유를 느끼려고 갔는데 오히려 여유가 없었달까. 그래서 그런지 이번 제주살이 때는 조금 더 오래 머물며 찬찬히 둘러보고 싶었다. 제주를 구석구석 다 돌아보기엔 2주라는 시간은 정말 택.도.없.이 부족하다는 걸 체감했고 오히려 여기저기 돌아다니기보다 한 곳에 머무르며 그 시간이 주는 여유를 누렸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진짜 멍해질 정도로. 정말 이래도 되나 싶을 정도로.
일주일을 더 머문 건 6년을 일했으니 2주 정도는 쉬어도 된다는 보상심리도 있었다. 한동안은 늘어날 일 없이 줄어들 잔고를 생각하면 마냥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지만 제주에서의 시간을 당장 돈과 비교하고 싶지 않았다. 또 그 당시 '퇴사 후 여행'은 그 누구도 뭐라고 하지 않는 명패 같은 것이었으니 이래저래 자기 합리화를 더해서 충동적으로 더 머물게 된 것이다. 그리고 전혀 후회되지 않았고 오히려 한 달 살기를 하지 않은 게 아쉬웠다.
그런 말이 있지 않나. 사람은 여행을 다녀오면 그 기억으로 살아간다고. 처음엔 그 말이 와닿지 않았는데 이번 제주 여행을 끝내면서 마음으로 느꼈다. 제주 2주 살기를 마무리하고 다시 집으로 돌아와 사진첩을 볼 때마다 그 시간 속에 있던 순간순간의 장면들이 머릿속에서 그려졌다. 그때의 날씨, 온도, 풍경이 4D처럼 나를 감쌌다. 이전에 짧게 짧게 다녀왔었던 제주여행과는 확실히 달랐고 내겐 그저 단어에 불과했던 '여행'이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그래서 그런 걸까. 내게 좋은 기억만 남아있는 제주라서 또다시 가고 싶어졌다. 현실은 높은 물가와 걷잡을 수 없이 변덕스러운 날씨에 여름과 겨울을 나기가 정말 고역이라는데 말이다. 여행하기 제일 좋은 5월에 다녀와서인지 온 세상이 푸르고 상쾌한 제주의 기억뿐이라 그런 것 같다. 한라산과 윗세오름을 오르며 너무나 행복했던 그 순간을 잊을 수 없다.
언젠가 제주살이를 하게 된다면 아마 낭만은 사라지고 차가운 현실 속에 혼자 덩그러니 놓이겠지. 하지만 그런 낯선 상황 속에서 나는 어떤 선택을 하고 무엇을 하게 될지 궁금하다. 사람은 극한의 상황에서 자신도 모르는 모습을 많이 발견하니까. 말을 붙일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는 곳에서 과연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확실한 건 가만히 앉아서 전전긍긍하고 있지 않을 거라는 것이다. 나의 도전력과 한계를 느껴보고 싶기도 하다. 너무 맨땅에 헤딩이 아닌가 싶지만 어차피 인생은 내가 선택하는 대로 행동하는 대로 흘러가게 되어 있으니까. 지금 내가 살고 있는 삶 또한 나의 모든 선택들이 한데 모여 만들어진 만큼 제주살이도 그러하지 않을까.
1년 정도 제주살이를 한다고 가정했을 때 필요한 생활비는 미리 준비할 예정이다. 그렇지만 현실적으로 제주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부터 고민하게 된다. 제주는 육지에 비해 일자리가 적고 또 제주도에 가서까지 갑갑한 회사생활은 하고 싶지 않다. 가만히 앉아 있는 사무직 말고 다른 일을 해보고 싶기도 하고. 돈은 벌고 싶을 때 벌고 쉬고 싶을 땐 쉬는 한량의 제주 라이프를 꿈꾸는데 너무 허무맹랑한 이야기일까? 호기롭게 1년 살이를 결심하고 떠났다가 반년도 채우지 못하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태반이라는데 말이다.
제주에 가게 된다면 제주에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일들을 해보고 싶다. 지금처럼 사람들을 상대하며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일보다는 온전히 혼자 하는 일을 말이다. 가령 당근, 귤, 키위 농장알바나 단순 노동도 좋다. 제주 토박이 찐 도민들의 이야기를 기록하는 것도 좋고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표현해보고 싶기도 하다. 봉사활동도 좋고 다양한 곳에서 보수를 받지 않는 대신 체험 겸 짧게 알바를 해보고 싶기도 하고. 이렇게 보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명확하지 않다는 걸 알게 되었지만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호기심 많은 자유로운 영혼이라는 건 확실히 알 것 같다.
2주살이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 1년살이를 하게 되었을 때 내가 느낄 감정은 무엇일까? 좋은 것도 잠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실망과 후회로 가득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좋아하는 것들로 채워나가면 또 다르겠지. 삶을 바라보는 시각 또한 달라질 수도 있는 것이다. 해도 후회 안 해도 후회라면 나는 해보고 후회하고 싶다. 지금 당장 제주살이는 어려워도 나는 작년에 느꼈던 행복함을 다시 한번 느끼려고 한다. 곧 다가오는 5~6월쯤 여행은 아니더라도 등산을 목적으로 제주를 방문할 계획이다.
1년 전 그때 그곳을 다시 방문하게 되었을 때의 나는 어떤 기분일까? 꼭 다시 와야겠다고 다짐했던 그 순간이 떠오르며 굉장히 벅찰 것 같다. 그리고 제주살이를 결심하는 분들의 마음을 나 또한 그 자리에서 느낄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내가 기대했던 것과 달리 실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런데 나는 이 글을 쓰면 쓸수록 제주도로 훌쩍 떠나고 싶은 마음이 점점 진심이 되어 가고 있다.
“푸릇푸릇한 5월이 좋을까? 아니면 6월 생일 기념으로 갈까? 연차를 언제 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