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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유히 May 17. 2023

사람도 음식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고 하니까

내게 가장 의미 있는 맛

누군가 나에게 물었다. “좋아하는 음식이 뭐예요?” 한참을 생각했다. 사실 나는 음식을 크게 생각하며 먹는 편이 아니라 그런지 ‘내가 진짜 좋아하는 음식은 뭘까?’ 하며 쉽사리 떠올리지 못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맛보다도 내게 의미가 있는 음식을 나도 모르게 마음에 품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콕콕콕’ 스파게티


네가 좋아한다길래 따라먹었다가 십몇 년이 흐른 지금도 여지껏 좋아하고 있다. 그 불량스러운 토마토소스의 맛이 처음엔 살짝 시큼하면서도 달짝지근 해지는 게 묘하게 내 입맛을 사로잡는다. 나는 지금도 이 맛을 좋아하는데. 너도 그럴까? 언젠가 우리가 마주하게 된다면 한번 물어보고 싶다. 아무 감정 없이 순수히 궁금해서. 과거의 네 취향이 내 취향의 일부가 되어 여전히 나와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좀 징그럽기도 하고. 네가 날 좋아하지 않았다면, 나 또한 널 좋아하는 감정이 없었다면 나는 애초에 이걸 먹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겠지.


콕콕콕 스파게티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한 달에 한 번씩 호르몬에 못 이겨 한번에 두 개씩 조리해먹기도 한다. 컵라면과 달리 끓는 물을 붓고서 4분을 기다린 후 면이 빠지지 않게 아주 조심히 물을 버려준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당근 후레이크와 소고기 후레이크를 콕콕 집어서 같이 버리는 것. 오로지 옥수수 후레이크만 남기고 먹어줘야 한다. 나만의 철칙이랄까. 이 과정이 너무나도 귀찮은 걸 알면서도 항상 쟁여오게 되는 건 왜일까. 왜 좋아하는지도 모른 채 그저 맛있게 먹을 뿐이다. 원래 무언갈 좋아하는 데에는 이유가 없다고 하니까.


세상에서 제일 못났던 그때, 나를 좋아할 사람이 하나 없던 그때. 나를 좋아해 줬던 너. 마음속에서 별들이 빙글빙글 돌아가며 짜릿하게 콕콕콕 찌르는 듯한 그 설레이는 느낌은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아, 그래서 콕콕콕 스파게티인가



직접 끓인 된찌. 비주얼은 그럴싸 하지만 엄마표 맛이 나지 않는다.


엄마표 된장찌개


우리 집은 일주일에 3번 이상은 ‘된장찌개’를 먹었다. 큰 재료 없이 집 된장과 시판 된장 그리고 두부와 양파만 들어가 담백 짭짤한 엄마표 된장찌개. 보글보글 끓여지고 있는 작은 뚝배기가 식탁 위에 놓여지면 숟가락으로 한 숟갈 두 숟갈 밥그릇으로 옮겨 밥과 함께 열심히 비빈다. 따끈따끈 갓 지은 밥과 된장찌개의 조합은 된장 특유의 꼬릿한 냄새를 풍기면서도 입맛을 다시게 만든다. 여기에 계란 후라이 한 장을 올려서 같이 으깨 먹으면 순식간에 한 그릇 뚝딱이다.


첫 독립 후 된장찌개가 먹고 싶어서 엄마의 레시피대로 만들어 보았다. 하지만 그 맛이 나지 않았다. 맛은 있었지만 엄마가 끓여주던 그 순정의 맛은 없었다. 혼자 살면서부터 다이어트를 시작하여 식단위주로 챙겨 먹다 보니 집밥은 잘 안 먹게 되었는데 요즘은 집밥이 자꾸 생각난다. 한식 위주로 먹고 싶지만 늦은 시간에 퇴근하고 오면 요리를 해서 챙겨 먹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더욱더 생각나는 엄마표 된장찌개.


그때는 반찬투정을 할 수 없었다. 우리 집 식탁에는 왜 된장찌개만 올라오는지 현실적으로 너무나 잘 알고 있어서였을까. 엄마가 끓인 된장찌개가 제일 맛있다며 입천장이 데이는 줄도 모르고 뜨거운 한 숟갈을 뜨던 날들. 퇴근하고 집에 녹초가 되어 들어올 때 유독 생각이 난다. 그리고 누군가 차려준 밥상은 아주 귀하다는 것과 일을 하며 매일매일 아침상과 저녁상을 차리던 엄마의 정성과 수고스러움을 다시 한번 느끼는 서른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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