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유유히 May 23. 2023

스물다섯 스물하나 ing

새로운 만남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


나는 평소 드라마를 잘 챙겨보지 않는다. 독립하면서 구매한 TV는 사실상 유튜브에서 음악을 듣는 용도로 사용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친구가 비싼 블루투스 스피커를 들였다며 이럴 거면 도대체 왜 샀냐고 할 정도로. 하지만 이런 내게도 인생 드라마가 있다. 작년 초에 방영한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유일하게 본방을 한 편도 빠짐없이 다 챙겨봤다. 왜냐하면 남자주인공과 여자주인공과의 관계성을 보며 옛 생각이 남과 동시에 다시 그런 만남을 해보고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2521'로 불리는 스물다섯 스물하나는 1998년, 시대에게 꿈을 빼앗긴 청춘들의 방황과 성장을 그린 청량로맨스물이다. 국민앵커 엄마를 뒀지만 많은 시간을 혼자 보내야 했던 외로운 펜싱 선수 '나희도(김태리)'와 부유한 회장님 아들로 자랐지만 IMF를 맞으며 온 가족이 뿔뿔이 흩어지면서 희망을 잃어버린 '백이진(남주혁)’'의 사랑 이야기.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특히 나는 이진의 역할에 더 공감이 갔다. 열여덟 고등학생인 희도는 당시 이진을 향한 감정이 무엇인지 몰라 우왕좌왕한다. 이진은 이런 희도의 마음이 자신을 향한 사랑인 걸 알면서도 희도 스스로가 그 마음이 뭔지 온전히 깨닫고 느낄 수 있게 기다려주었다. 희도의 마음을 이용하지도 재촉하지도 않고 그저 옆에서 지켜봐 주던 이진. 그러한 이진의 사려 깊은 마음이 너무 따뜻하게 느껴졌다. (안 좋아할 수가 없다 정말.) 최고로 좋은 것만 경험하게 해주고 싶다는 그 마음 또한 너무 공감이 가서 더 이입을 했는지도 모른다. 사랑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끼는 희도. 이런 모습이 마치 옛날의 나를 보는 것 같았다. 시간의 흐름에 관계없이 누군가를 마음에 들이게 되면 첫사랑 마냥 심장이 쿵하는 건 지금도 여전하지만.


살면서 존재만으로 힘이 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진과 희도의 사랑은 결국 현실에 부딪혀 끝이 났어도 서로를 향한 응원과 지지하는 마음은 흔들림 없이 자리 잡고 있다.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던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처럼 성장할 수 있었고, 나 또한 마찬가지로 드라마를 시청하면서 그때 그 시절을 자연스레 떠올렸다. 드라마 OST인  '원슈타인 - 존재만으로'라는 곡은 지금도 첫 간주 도입부가 귀에 울리는 순간 여전히 마음이 설레곤 한다.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이때까지 스쳐 지나간 사람들 중에 내가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게, 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게 만드는 존재는 사실 몇 없었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 그걸 알아서 인지 더 소중했고 더욱 특별했다. 나 또한 상대방에게 그런 사람이었길 바라지만 이건 내 욕심이니까 묻어두기로 했다. 제일 힘든 순간 서로에게 의지하며 힘을 주고 또 힘을 받기도 하는 백도커플을 보며, 오랫동안 묵혀있던 연애세포가 하나둘 깨어났다. 그 덕분에 아주 오랜만에 마음이 뜨거워졌다. 


백이진이 희도의 남편이 아니라는 결말에 분노한 시청자들이 많았지만, 나는 새드엔딩(?)이 아니라고 느꼈다. 오히려 현실적인 결말이라 순응했다. 작가의 의도도 시청자들의 마음도 충분히 이해가 됐기에 별 반응을 하지 않고 담담히 받아들였던 것 같다. 백도 커플이 이별 후 시간이 흘러 다시 마주하던 장면에서 서로를 똑바로 마주 보며 응원하는 모습이 진심으로 느껴졌고, 나는 결코 절대 슬픈 결말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물론 이진과 희도가 이어지지 않아서 아쉬울 순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완결되어 더 좋았다.


tvn 스물다섯 스물하나


지난 기억 속에 끝이 정말 개차반 같은 만남도 있었지만 그렇지 않은 만남도 있었다. 마음이 남아있어도 어떻게 할 수 없는 거기까지인 관계. 그 순간은 너무 아프고 힘들었다. 살이 급격하게 빠졌고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시간들. 하루는 엄마가 그런 내 모습을 보면서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손에 쥐고 있는 걸 놓을 줄도 알야 한다'라고 말하며 내 방문을 닫았다. 그 한마디에 이불속에서 숨죽이며 엉엉 울었고 다음날부터는 다시 일상을 되찾기 시작했다. 그 친구가 정말 행복하길 바라며.


이젠 지나간 청춘 속에 남겨진 사람과의 기억을 떠올리면 흐뭇하다. 물론 지금도 청춘이긴 하지만. 그런 추억이 있었기에 또 새로운 만남을 기대할 수 있고 '아 그땐 그랬었지' 하며 힘을 받는 게 아닐까. 그러므로 나에겐 스물다섯 스물하나가 아직도 진행 중이다.


작가의 이전글 사람도 음식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없다고 하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