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요, 북아현동
최근 부동산 관련 뉴스를 확인하다 보면 '재개발, 뉴타운 해제' 키워드를 심심치 않게 확인할 수 있다.
그 키워드 옆에는 '도시재생'이라는 키워드가 함께 따라붙곤 한다.
요새 하루 일과 중에 습관처럼 이 키워드들을 검색해 많은 정보들을 찾거나, 기사들을 읽어 내려간다.
여느 때와 같이 사무실에서 재미있는 골목, 공간, 동네들을 찾기 위해 웹서핑을 하던 중,
우연하게 북아현동 재개발에 대한 기사를 읽게 되었다.
그리고 곧 이 동네가 간직하고 있는 모습들은 사라지고, 아파트들이 들어설 예정이라고 한다.
인터넷에 돌아다니는 수많은 벽화, 낮은 지붕의 오래된 건물 그리고 골목과 계단 사진들.
사진을 통해 확인한 북아현동의 모습은 마치 부산의 '감천 문화 마을'을 연상시켰다.
이 동네는 과연 어떤 이야기들을 품고 있을지 궁금해지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사무실은 홍대, 북아현동은 고작 지하철로 3 정거장 떨어진 위치에 있었다.
마침 점심시간이었고, 나는 배가 고프지 않았다. 이것은 운명의 데스티니.
바로 북아현동으로 발걸음을 옮기기로 결정하였다.
비가 오는 날이었다.
개인적으로 비가 오는 날에 걷는 것을 좋아하여(사이코패스는 아니다) 알 수 없는 기대감을 가지고 북아현동으로 출발하였다.
비 오는 날의 북아현동의 모습은 어떨까?
"서울특별시 서대문구 북아현동"
아현역 2번 출구 그리고 가구거리를 지나
홍대역에서 아현역 까지는 겨우 3 정거장
늘 유동인구가 많은 홍대 일대와 달리
아현동은 나름대로 조용하고 고즈넉하였다.
아현역 2번 출구로 나오면 가구거리를 마주하게 된다.
모퉁이를 돌면 가구점들이 보이고,
가구점들 사이에 소소하게 펼쳐진 수많은 골목길을 볼 수 있었다.
빗소리와 함께 걷는 길은
잠시 동안이지만 휴식처 같았다.
재개발 그리고 곧 없어질 주택가
골목길을 걷다 보면 벽면에 덕지덕지 붙여진
흰 종이들을 발견할 수 있다.
"북아현 2구역 서울시 뉴타운 직권해제 1순위"
"매몰비용까지 지원받아 조합이 해산됩니다."
북아현동은 2005년 서울시 3차 뉴타운 개발지로 선정되었다. 그리고 북아현동은 그간의 모습은 사라질 예정이고, 고층 아파트가 들어설 것이다.
곧곧에 붙어있는 재개발 관련 포스터들로 인해 북아현동의 그간 있었던 문제와 갈등을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 폐허들과 곧곧에 버려져 있는 생필품. 사람이 오고 다녔던 길목들 사이는 이제 정적이 채우고 있다.
골목골목에 놓여있는 정감, 그리고 집
골목 사이사이에는 옛날 집들이 늘어서있다. 그리고 대부분은 더 이상 사람이 살지 않는다.
오래된 벽, 오래된 창문, 오래된 대문
나는 그 오래된 것들에서 '정감'을 느낄 수 있었다.
분명히 이 곳에는 해맑게 웃고 장난치던 아이들이 많았을 것이다.
벽에 있는 수많은 낙서들이 그것에 대한 단서다.
"검도가 최고", "다 덤벼"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그 유치함은 이 동네의 활기를 불어넣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그렇게 한참 아이들이 장난치는 모습을 상상하고 다시 시선을 돌렸을 때, 주변 거리에는 아무도, 아무것도 있지 않았다.
울퉁불퉁한 계단, 그리고 올라가기
한참을 걸었을까?
슬슬 길이 경사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골목길에 계단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비되지 않은, 울퉁불퉁한, 불편한 계단들.
얼마 동안의 세월을 지냈는지 계단 곳곳은 갈라지고, 깨지고, 잡초들이 자랐다.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올라갈 때마다 번잡한 도시의 소음 속에서 자유로워지는 기분.
홍대 사무실에서 이 곳까지의 거리는 불과 3 정거장이지만, 전혀 다른 풍경이었다.
한참을 올라섰을 때,
눈길을 끄는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얀색 배경에 꽃과 풍선, 아기자기한 벽화들이었다.
방향을 틀어 그 길로 발걸음을 옮겼다.
북아현동에 처음 마주했던 골목길들과 또 다른 느낌이었다.
마치 "이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가는 길입니다. 환영합니다."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벽화 그리고 동행
그렇게 나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자리 올랐다.
곧곧에 그려져 있는 벽화를 보며 걷고 있을 때쯤, 비도 멈추었다.
이 벽화는 대학생들과 사회봉사자들이 매주 한차례씩
"아름다운 골목길"을 만들기 위해 직접 그려 넣은 것이라고 한다.
누군가가 정성스럽게 그려 넣은 벽화들은 동네를 비추는 등불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때 눈에 들어온 두 글자 "동행"
'함께 걷자'라는 의미가 평소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마치 우리에게 무언가 메시지를 남기는 단어는 아니었을까? 우리는 과연 동행을 하고 있을까?
가슴 벅찬 단어지만, 걷고 있는 이 거리에서 본 '동행'이라는 단어는 씁쓸함도 느껴진다.
우리는 부수고 새로운 것을 만드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북아현동 호반재 마을에 올라 내려다본 모습
북아현동 호반재 마을은 '한양 부근에 있던 호랑이들이 새끼를 데리고 인왕산 대왕 호랑이에게 인사드리러 가는 길목의 고개'라고 전해 오는 데서 그 이름이 유래했다.
복잡하게 늘어선 집들이 남아있고, 한편에는 아파트들이 들어서고 있다.
"우리는 항상 부수고, 없애고 새로 만드는 것에만 익숙해져 있지 않는가?"라는 생각이 든다.
서울에는 분명 역사적으로나 지역적으로 가치가 있는 곳이 많이 있다.
물론 재개발이 무조건적으로 나쁘다고 볼 수 없지만
기존에 가지고 있는 가치에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것이 호화스러운 건물보다 멋진 것 아닐까?
아파트 건축으로 인해 사라질 북아현동의 모습은
과연 '동행'이라는 단어에 어울릴 수 있을지에 대한 생각에 잠기며 길을 내려왔다.
"잊지 말아요, 북아현동"편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