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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식 May 02. 2018

부품을 구하는 요괴

어느 날 아침, 부품을 구하는 요괴가 나타났다. 

요괴가 나타난 곳은 아무도 없는 허허벌판이었다. 


3미터에 달하는 순백색 요괴의 몸체는, 마치 서 있는 커다란 짚단 같았다. 

곧, 그 짚단 틈에서 하얀 팔 세 개가 쑥 튀어나왔다. 손바닥을 가진 팔 하나, 손바닥 대신 눈이 달린 팔 하나, 입이 달린 팔 하나. 

세 개의 팔 중 눈과 입이 달린 팔이 하늘 높이 솟아올랐다. 그러더니 하늘 위에서 입이 열리며 말을 내뱉었다. 

 

[내 기계가 고장 났어! 부품이 필요해!] 

 

순간, 전 인류의 머릿속으로 요괴의 목소리가 울렸다. 

곧 요괴의 다른 손에 있던 눈의 눈꺼풀이 열렸고, 전 인류의 머릿속에 요괴가 있는 허허벌판의 풍경이 떠올랐다. 눈을 감을수록 더욱 선명히. 

너무나 놀라운 일에 전 인류가 공황 상태에 빠졌을 때, 요괴가 다시 사람들의 머릿속으로 말을 했다. 

 

[바위 깎는 기계의 부품이 늙어 죽었어! 기계를 못 쓰니까 자꾸만 바위가 자라나서 내 앞마당이 볼품없어졌단 말이야! 새로운 부품을 구해야겠어!] 

 

혼란스러운 사람들은 요괴의 말을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요괴는 짚단 속에서 바위 깎는 기계를 거짓말처럼 꺼내놓았다. 

인류는 그 기계라는 것이 머릿속에 보이자마자 깜짝 놀랐다. 건물 한 채만 한 크기의 직립보행 근육 덩어리가 시뻘건 몸을 꿈틀거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간들아! 내 기계의 허벅지에 꼭 맞는 부품이 필요해!] 


요괴의 말대로, 괴생물체는 한쪽 허벅지 부분이 휑하니 파여 있었다. 

사람들은 도대체 그게 왜 기계인지는 제쳐둔다 해도, 부품을 어떻게 구하겠단 말인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너희 인간들 중의 하나가 내 기계의 부품이 되어줘야겠어!] 


요괴의 말에 인간들은 아연실색했다. 인간을 부품으로 쓰겠다니? 설마 저 허벅지에? 

사람들이 안정을 찾을 틈도 주지 않고, 손바닥이 달린 요괴의 세 번째 팔이 하늘 위로 올라왔다. 

하늘 위로 올라온 요괴의 손이 손가락을 튕겨 딱! 소리를 내는 순간! 


“앗?” 

“어어!” 

 

전 인류의 이마 앞에 파란 불빛이 생겨났다. 

당황한 사람들은 손으로 불빛을 휘저어보고, 떨쳐내보려 해봤지만 불빛은 사라지지 않았다. 곧, 요괴에 의해 불빛의 정체가 밝혀졌다. 

 

[내 기계에 딱 맞는 부품을 찾아야 하니까 말이야! 조건을 모두 통과한 인간을 부품으로 쓸 거야! 먼저, 무게가 너무 무거우면 안 돼! 한 65킬로그램 정도였으면 좋겠어!] 

 

요괴가 다시 손가락을 딱! 튕겼고, 전 인류 중 65킬로그램이 아닌 사람들의 이마 앞에서 불빛이 사라졌다. 

상황을 파악한 대다수 인류는 안도했고, 65킬로그램인 사람들은 울상을 지었다. 

 

[키가 너무 작거나 커도 안 돼! 170센티미터 정도가 좋을 것 같아!] 


딱! 소리와 함께 많은 사람들의 파란 불빛이 꺼졌다. 

불이 꺼져 이제 자기 일이 아니게 된 대다수 인류는, 조금은 여유를 갖고 사건을 지켜보았다. 물론 아직 불빛이 꺼지지 않은 사람들의 얼굴은 일그러져 있었다. 


[머리카락이 너무 길면 내 기계가 간지러울 것 같아! 대머리였으면 좋겠어!] 


대머리가 아닌 사람들의 불빛이 꺼지자 곳곳에서 안도의 한숨 소리가 들렸다. 


[손톱, 발톱이 너무 길어도 내 기계가 싫어하겠지?] 


손발톱 관리가 안 된 사람들은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 


[아, 맞다! 나이가 너무 많으면 또 늙어 죽겠지? 30년이 안 된 인간이었으면 좋겠어!] 

 

또다시 많은 사람의 불빛이 꺼졌고, 파란 불빛을 가진 인간들은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 

 

[그래! 딱 좋아! 너희들이 내 기계에 딱 맞는 부품이야! 가장 가까운 데 있는 게 누굴까?] 

 

순간, 하늘에 떠 있던 요괴의 손이 허공에서 사라지더니, 파란 불빛을 가진 인간들 중의 하나를 잡아채어 돌아왔다. 

 

“으아악! 아악! 악!” 


65킬로그램에 170센티미터, 대머리에 28살이었던 그는 비명을 질렀지만, 요괴는 그를 요리조리 돌려보며 만족스러워했다. 


[아주 좋아! 얼른 가서 마당에 바위들을 깎아봐야겠어!] 


요괴는 바위 깎는 기계와 인간 부품을 가지고 사라져버렸다. 

동시에 전 인류와 요괴의 링크도 끊어졌고, 남겨진 파란 불빛들도 모조리 꺼졌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류는 이 요괴 대사건에 대해 떠들기 시작했다. 


시청률 100퍼센트의 실시간 뉴스를 본 것과 같았기에, 전 세계 어디에서든 요괴 사건을 화제로 얘기들을 해댔다. 


“어이쿠, 놀래라! 그나저나 그 사람 진짜 재수 없네. 어떻게 전 인류 중의 한 명으로 그렇게 뽑혔대?” 

“어떻게 사람을 부품으로 쓴대? 아무리 요괴라지만…” 

“그 사람은 이제 영원히 일개 부품으로 살아야 하는 거야? 진짜 불쌍하다.” 

“나 같으면 그냥 죽으면 죽었지, 절대 그런 괴물의 부품이 되진 않을 거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요괴의 일개 부품으로 전락한 그 사람의 처지를 불쌍히 여겼다. 

이렇듯 아침부터 요괴 때문에 전 세계에 한바탕 소란이 일어났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오늘은 평일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맡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익숙하게 걸음을 걸었고, 익숙하게 다시 손을 놀렸다. 매일매일 하던 일들을 익숙하게 반복했다. 인간 하나가 사라져도 사회는 멀쩡히 돌아갔다. 

 

한편, 정부와 언론 매체들은 요괴의 흔적을 쫓아 허허벌판을 찾아 나섰다. 그들은 요괴와 기계가 왔다 간 발자국을 찾아내어 취재했다. 곧, 요괴의 흔적에 대한 연구가 시작됐다. 한데 그날 저녁, 또다시 깜짝 놀랄 만한 일이 벌어졌다. 

부품이 되어 끌려갔던 그가, 허허벌판 한가운데에 갑자기 나타난 것이다. 

요괴의 흔적을 연구 중이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모여들었고, 그를 향해 어떻게 돌아왔는지를 물었다. 

그는 본인도 어안이 벙벙한지, 얼떨떨해하며 말했다. 

 

“…퇴근이랍니다.” 

 

퇴근이라니? 뜻밖의 소식에 인류는 황당함을 느꼈다. 기계의 부품으로 쓴다고 데려간 인간을 퇴근시켜주다니? 

거기다가 더욱 놀라운 점은, 그가 일당을 받아 왔다는 것이다. 

글쎄, 어른 주먹만 한 금덩이를 일당이라며 받아 왔다. 

 

“세상에!” 

 

요괴의 부품이 된다는 것도 그다지 힘든 일이 아니었다. 그의 표현에 의하면, 마치 어머니의 양수에 들어가 있는 듯이 편안했다는 것이었다. 괴생물체의 허벅지에 끼워진 채 가만히 있으면 어느새 부품으로서의 일이 끝나고, 금덩이와 함께 집으로 돌려 보내진다. 이 얼마나 좋은 직업인가? 

온종일 화제의 중심이 된 그는 다음 날이 되자, 알아서 먼저 허허벌판으로 출근했다. 

허허벌판에 나타난 요괴는 그를 반가이 맞이했다. 

 

[오! 인간 부품아, 와 있었구나? 그래! 어제 다 못 깎은 바위를 깎아야지! 어서 가자!] 

 

요괴는 잽싸게 그를 낚아채 사라졌다. 

그렇게 되자, 사람들의 태도는 완전 180도로 바뀌어버렸다. 

 

“그 사람 진짜 재수 좋다! 어떻게 전 인류 중의 한 명으로 그렇게 뽑혔대?” 

“어떻게 금덩이를 막 준대? 아무리 요괴라지만, 와…” 

“그 사람은 이제 영원히 요괴의 부품으로 살 수 있는 거야? 진짜 부럽다.” 

“나 같으면 죽어도 그 부품 자리 안 놓친다! 무조건 체중 조절해야지.” 

 

이렇듯 아침부터 소란이 크게 일어났지만, 시간이 조금 흐르자 사람들은 각자의 자리로 돌아갔다. 

그날도 평일이었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회에서 맡은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익숙하게 걸음을 걸었고, 익숙하게 다시 손을 놀렸다. 매일매일 하던 일들을 익숙하게 반복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어제와는 달랐다. 사람들은 온종일 그의 얘기를 했다. 

요괴의 부품이 된 그의 특별함에 비추어, 본인들의 의미 없는 하루하루를 처량해했다. 그가 부러웠고, 그처럼 특별해지고 싶었다. 

 

“난 이렇게 힘들게 일해서 쥐꼬리만큼 버는데, 그 사람은 매일매일 편안히 금덩이를 벌어 올 거 아냐?” 

“지금 전 세계에서 제일 유명하지 않냐? TV 프로에서 서로 초대하려고 난리도 아니던데?” 

“그 사람은 요괴 세계가 어떤지 다 구경할 수 있을 거 아냐? 얼마나 신비롭고 짜릿할까!” 

 

요괴의 일개 부품이 된 인간은, 하루 만에 전 인류의 동경과 부러움을 샀다. 

그날도 그는 무사히 금덩이와 함께 돌아왔고,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요괴의 부품으로 편안히 일했다. 심지어 주말에는 휴식까지 있었다. 

그러나 그의 행운은 길지 않았다. 주말 휴식을 취하던 그가 그만, 차 사고를 당하게 된 것이다. 

월요일, 그를 찾아온 요괴는 짜증을 냈다. 

 

[뭐야? 내 인간 부품 꼴이 왜 이래? 몸무게도 줄었잖아? 에이! 새로운 부품을 구해야겠네!] 

 

요괴는 또다시 안테나처럼 세 팔을 뻗어 전 인류를 스캔했다. 그러고는 첫날과 마찬가지로 조건에 맞는 사람 중 하나를 잡아채 왔다. 

잡혀 온 그는 두려움보다는 기대감이 가득했다. 

 

“가, 감사합니다!” 


[음~ 딱 좋아! 새로운 부품으로 아주 적당해!] 

 

요괴는 새로운 부품을 데리고 요괴 세계로 떠났고,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며 한 가지 생각을 떠올렸다. 

만약 부품 인간이 조건을 잃는다면, 새로운 누군가가 요괴의 부품이 될 수 있겠구나! 

그때부터 몇몇 사람들이 요괴의 조건을 맞추기 위해 노력했다. 키가 170센티미터인 사람들은 몸무게를 65킬로그램에 맞추려 노력했고, 몸의 털을 다 밀고 손발톱도 깨끗이 관리했다. 

그렇게 조건을 맞춰낸 수많은 인간이 아침마다 허허벌판 가까이에 모여들었다. 그리고 며칠 뒤의 아침, 

 

[응? 인간 부품 어디 갔어? 뭐야? 죽은 거야?] 

 

두 번째 부품 인간이 밤새 누군가에게 살해당하고 말았다. 

인류는 생각했다. 조건을 맞춘 누군가가 그를 죽였을 거라고. 

그러거나 말거나 요괴는 상관없었다. 

 

[에이, 다른 부품을 구해야겠군! 어디 보자. 응? 뭐야? 왜 다들 이 근처에 모여 있어?] 


심지어 사람들은 요괴에게 접근하기 시작했다. 


“요괴님! 저를 부품으로 써주십시오!” 

“아닙니다! 제가 더 부품에 어울립니다!” 

“저는 눈썹까지 다 밀었습니다, 요괴님!” 

 

[오잉? 인간들이 왜 이러는 거야? 이상하네? 음… 에이 뭐, 아무렴 어때? 어디 보자. 너로 정했다!] 

 

요괴는 수많은 인간 중 하나를 낚아채 요괴 세계로 사라졌다. 

희비가 엇갈리며, 남겨진 수많은 인간이 아쉬워했다. 

며칠 뒤. 

 

[뭐야? 또 죽었어? 인간들아, 너희 혹시 지금 전쟁이라도 하는 중이야? 왜 이렇게 잘 죽어?] 

 

또다시 며칠 뒤. 

 

[세상에! 인간은 너무 쉽게 죽는 것 같아! 이거 참, 이번엔 튼튼한 인간으로 뽑아야겠는데?] 


며칠 뒤, 며칠 뒤, 며칠 뒤, 며칠 뒤… 

 

[거참! 원래 인간 부품은 일회용인가? 몇 번 쓰면 끝이야? 너희 인간들은 참 허약하구나?] 


그렇지만 요괴는 걱정이 없었다. 그 일회용 부품이 되기를 원하는 인간들조차 너무나도 많았다. 

 

[뭐, 아무렴 어때! 어차피 난 당장 쓸 수 있는 부품만 있으면 되니까! 보자. 오늘은 어떤 부품으로 골라볼까?] 

 

“요괴님, 저를…” 

“아뇨, 저를…” 

“제가…” 

 

170센티에 65킬로그램, 대머리에 손발톱 깨끗. 

170센티에 65킬로그램, 대머리에 손발톱 깨끗. 

170센티에 65킬로그램, 대머리에 손발톱 깨끗. 

170센티에 65킬로그램, 대머리에 손발톱 깨끗. 

170센티에 65킬로그램, 대머리에 손발톱 깨끗. 

 

무수히 많은 똑같은 인간들이, 똑같은 부품이 되고자, 똑같은 곳으로 몰려들었다. 

기계의 부품이 되기 위해. 기계의 한낱, 부속품이 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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