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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식 May 09. 2018

가족과 꿈의 경계에서

늦은 저녁. 집으로 향하는 장진주의 걸음에 힘이 없다. 힘이 약하다고 여고생은 아르바이트로 쓰지 않는다니.


우울한 기분으로 걷던 장진주는, 동네 놀이터에서 서성이는 중년 남성을 보았다. 수염은 제멋대로 자라 삐죽거리고, 머리는 자를 때가 지나 지저분해 보이는 남자였다.


“아빠?”


고개를 돌려 장진주의 모습을 바라보는 아빠. 한데, 모양새가 영 이상했다. 귀신이라도 본 것 같은 얼굴로, 딸의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장진주는 의아하다는 듯이 아빠 앞에 섰다.


“왜 그래?”

“…”


대답 없이 심각한 얼굴로 장진주를 바라보는 아빠. 미약하게 몸이 떨리고 있다. 입에서 나오는 음성 역시 떨렸다.


“네가… 내 딸이니? 내 딸… 내 딸 맞니?”

“무슨 소리야? 아빠 또 술 먹었어?”


장진주가 눈살을 찌푸리며 술 냄새를 맡아보지만, 나지 않았다. 이상하다는 듯이 아빠를 보는데, 아빠의 눈시울이 점점 붉어지더니,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리는 것이 아닌가?


“뭐, 뭐야? 왜 그래?”


대답 없이 눈물만 흘리며 부들부들 떨던 아빠가 딸을 와락 껴안았다.


“으익? 왜 그래, 갑자기?”

“내 딸, 내 딸! 정말 보고 싶었다. 정말 보고 싶었어, 내 딸!”

“무슨 소리야? 아침에도 봤잖아?”


이 상황이 이상하다 못해 당황스러운 장진주의 표정.

아빠는 울먹이며 말했다.


“난 너를 처음 봤단다. 17년 전… 네 엄마가 너를 유산한 뒤로 말이다.”


장진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

.

.


장진주는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황당하다는 얼굴로 아빠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평행 우주?”


아빠는, 자신이 평행 우주의 다른 지구에서 차원을 건너왔다고 했다. 그곳은 모든 게 이 지구와 똑같지만, 장진주가 유산되어 존재하지 않는 세계라고 했다.

장진주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아빠를 보다가, 버럭 화를 냈다.


“아빠, 무슨… 무슨 소리야, 도대체!”


아빠는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


“아빠에게 전화해보겠니?”

“뭐?”

“그래. 영상통화를 해보면 알겠구나.”

“…”


장진주는 황당했지만, 아빠의 얼굴이 너무나 진지하였다. 찜찜한 얼굴로 핸드폰을 꺼내서 영상통화를 걸어보는 장진주.


[어~ 왜? 웬 영상통화냐?]


핸드폰 너머에도 아빠가 존재했다. 

놀라 부릅뜬 눈으로 핸드폰 속 아빠와 눈앞의 아빠를 번갈아 보는 장진주.


“아, 아, 아빠? 아빠?”

[어, 왜 그러는데?]


놀란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는 장진주를 향해 고개를 끄덕거리는 아빠.


“어, 어. 어딘가 해서… 나중에 봐.”

[뭐야?]


장진주는 전화를 끊고, 충격 속에 할 말을 잃었다. 아빠는 충분히 기다려줬다.

한참 만에 정신을 차린 장진주는,


“그 말이 진짜면… 왜? 그, 여기는 왜 오신 건가요?”


그 질문에 아빠는 씁쓸하게 웃으며 입을 열었다.


“엄마… 네 엄마 있지?”

“네? 네.”

“여기서는 엄마가 어떤 선택을 했는지 알겠구나. 너를 이렇게 예쁘게 키워냈으니까 말이다. 근데, 그곳에서 네 엄마는…”

“…”

“네가 태어나기 전에, 너를 지웠단다.”

“네?”


엄마가? 나를? 황당해하는 장진주.


“엄마의 꿈은 배우였어. 17년 전에 엄마에게 기회가 왔고, 엄마는 갈등했지. 임신한 상태로는 영화에 출연할 수가 없었거든. 알고 있었니?”

“아, 아뇨?”


처음 듣는 얘기에 장진주는 혼란스러워졌다. 아빠는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선 좋은 엄마구나… 넌 모르겠지만, 엄마는 너를 지우고 싶어 했어. 난 반대했지. 제발 아이는 지우지 말자고 무릎까지 꿇고 빌었어. 알았다고 하더구나. 그래서 그런 줄로만 믿었는데… 내가 없을 때, 엄마는 자해로 인공유산을 했단다.”

“아…”


그때를 떠올리는 아빠의 얼굴이 슬픔과 분노로 뜨거워졌다.


“그때의 충격으로 네 엄마는 다신 임신을 하지 못하는 몸이 됐어… 그래, 영화엔 출연했지. 일도 잘 풀렸어. 축하할 만해! 근데 그 대가로 다시는 너를 볼 수 없게 되었어. 넌 이해할 수 있어? 너를 희생해서 꿈을 이룬 그 여자를 이해할 수 있어?”

“아…”


울컥한 아빠의 눈시울이 붉게 충혈됐고, 장진주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몰랐다.

잠시, 긴 호흡으로 화를 삭인 아빠는 본론을 꺼냈다.


“내가 왜 왔냐고 물었니?”

“예?”

“그 여자에게 너를 한번 보여주고 싶었어. 네가 버린 딸이, 그 소중한 딸이 어떤 딸인지 두 눈으로 직접 보게 해주고 싶었어.”

“…”

“잠깐만… 도와주겠니? 아주 잠시만 말이다. 내 딸아…”


장진주의 얼굴이 심각해졌다.


.

.

.


“나 왔어.”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돌아온 장진주. 신발을 벗으며 눈으로 엄마를 찾았다. 

TV 앞에 앉아 가계부를 쓰고 있던 엄마는 돌아보지도 않고 물었다.


“밥은?”

“어, 먹었어.”


조심스럽게 엄마 옆에 가 앉는 장진주. 괜히 리모컨을 잡고 TV 채널을 돌리다가, 가벼운 투로 말했다.


“저기, 엄마.”

“왜?”

“엄마는 꿈이 뭐였어?”

“뭐라니?”


엄마가 관심 없는 듯 가계부에 집중하자, 장진주가 다시 한 번 물었다.


“엄마 꿈이 배우였어?”


볼펜을 잡은 엄마의 손이 뚝 멈췄다. 장진주를 돌아보며 묻는 엄마.


“누가 그래? 아빠가 그래?”

“으으응. 그냥…”

“…”


장진주는 엄마의 시선에 긴장했다. 엄마는 잠깐 말이 없다가, 다시 가계부로 얼굴을 돌렸다.


“배우였었지. 한때는 말이야. 엄마가 한 미모 하잖니?”

“응…”


장진주는 다시 볼펜을 움직이는 엄마의 손을 보았다. 거칠다. TV에 나오는 여배우들은 나이가 먹어도 손이 참 곱던데.


“엄마. 혹시, 후회해?”

“뭐가?”

“그, 왜… 꿈을 포기한 것 말이야.”

“…”


엄마는 다시 펜을 멈추고, 장진주를 돌아보았다. 마치, 얘가 무엇을 알고 있나 알아내려는 듯이 가만히 쳐다보았다. 

어색하게 웃는 장진주. 곧, 엄마의 입에서 단단한 목소리가 나왔다.


“엄마는 후회 안 해. 절대로.”

“…응.”

“가서 설거지나 좀 해.”


다시 가계부에 집중하는 엄마. 

자리에서 일어난 장진주의 얼굴이 복잡하다. 미안한 듯하면서도, 안심하는 기색이 역력한 얼굴이다.


.

.

.


불 꺼진 방 안. 침대에 누운 장진주는 머릿속이 복잡해 쉽사리 잠에 들지 못했다. 

아까는 그 아빠의 부탁을 거절했다. 자신을 강제로 유산한 엄마를 왜 보러 가고 싶겠는가? 

한데, 집에 돌아와 엄마를 보고 나서는 생각이 많아졌다. 


평소 엄마의 꿈 같은 건 생각해본 적도 없었다. 엄마의 꿈은 그냥 엄마인 줄 알았다. 한데, 17년 전에는 엄마도 나처럼 꿈이 있었다. 그 꿈을 펼칠 기회도 있었다. 어떤 마음으로 꿈을 포기 했을까? 엄마는 정말로,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을까?

만약 엄마가, 엄마를 위한 인생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지금보다 훨씬 행복하지 않았을까?


보고 싶어졌다. 자신이 아닌, 꿈을 선택한 엄마가 보고 싶어졌다.


만약 내일, 다시 한 번 그 아빠를 만난다면.


“…”


장진주의 미간이 갈등으로 좁아졌다.


.

.

.


“거긴 어떻게 갔다 오는 거예요? 아니, 애초에 어떻게 넘어오셨어요?”


어제와 같은 놀이터. 장진주는 다른 차원의 아빠를 만나 물었다.


“악마와 거래를 했단다.”


주머니에서 돌돌 말린 양피지를 꺼내어 펼치는 아빠. 양피지 속 그림 하단부에는 커다란 지구가, 상단부 왼쪽에는 작은 태양이 그려져 있었다.

장진주는 아빠가 펼친 양피지의 그림을 보다가, 갈등하는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 곧,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장진주.


“…한 번만 만나면 되는 거죠?”

“그래. 한 번이면 충분해.”

“알았어요… 그럼 만날게요.”


고마워하며 고개를 끄덕이던 아빠는, 검지를 뻗어서 양피지 속 태양을 짚었다. 장진주도 시키는 대로 함께 태양을 짚었고, 왼쪽에 있던 태양을 오른쪽으로 끌어 옮겼다.

바로 손가락을 떼는 아빠의 모습에 조금 눈이 커진 장진주가 물었다.


“에? 끝났어요?”

“그래. 여기가 아빠가 사는 세상이야.”


장진주는 두리번거리며 주변을 살폈지만, 방금 전이랑 달라진 부분을 찾지 못했다.


“우리 집에 가자. 엄마가 기다리고 있단다.”

“아… 예.”


장진주는 앞장서는 아빠의 뒤를 따르면서도 연신 주변을 둘러보았다. 전혀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아 신기하고, 이상했다.


“여, 여기가 집이라고요?”

“그래.”


장진주의 입이 떡 벌어졌다. TV에서나 보던 초호화 아파트였다. 장진주가 너무 놀라자, 아빠가 덧붙여 말했다.


“네 엄마는 유명한 배우니까.”

“와아…”


장진주는 약간 기가 죽을 정도로 놀랐다. 엄마가 배우로 이렇게까지 성공해 있을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지금 올라탄 이 엘리베이터만 해도 자신의 방만 하다고 생각했다.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문 앞에 선 둘은 잠시 멈췄다.


“괜찮니?”

“네… 아, 잠시만요.”


긴장한 장진주는, 빠르게 뛰는 심장을 느끼며 가슴에 손을 올렸다. 잡생각들이 머릿속에서 마구 엉켰다.

꿈을 이룬 엄마의 모습은 어떨까? 나를 보면 무슨 말을 할까? 나를 유산했을 때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진주야.”

“네? 아… 예. 괜찮아요…”


심호흡을 하는 장진주. 곧, 아빠의 뒤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섰다.


“여보.”


아빠의 부름에 거실 소파에 앉아 책을 보던 엄마가 돌아보았고, 장진주와 눈이 마주쳤다. 

장진주는 깜짝 놀라 눈이 커졌다.

엄마가 맞았다. 분명 맞는데, 너무나 달랐다. 10년은 젊어 보였다. 얼굴에 주름이 없고, 피부는 잡티 없이 깨끗하고, 머릿결은 너무나 곱고, 몸에는 군살 하나 없었다. 맑은 눈빛마저도 왠지 우아해 보였다. 정말 예뻤다.


엄마 역시, 장진주를 보며 살짝 놀란 모양새였다. 엄마는 무슨 상황인지 묻는 듯한 얼굴로 급히 아빠를 쳐다봤다.


“우리 딸이야. 우리 딸 장진주.”


벌떡 일어나는 엄마. 장진주를 바라보는 눈동자가 사정없이 흔들렸다. 

장진주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쳐다만 보았다. 

말은 아빠에게서 나왔다. 비웃는 듯 냉소적으로.


“어때? 네가 버린 딸을 본 감상이? 이렇게 예쁘게 컸어. 신기하지? 너랑 꼭 닮았어.”

“…”

“왜? 왜 그래? 왜 말이 없어? 뭐라고 말 좀 해보지?”

“…”

“뭐라고 말 좀 해보라고. 할 말이 있을 것 아니야! 어? 예쁘다든가! 잘 자랐다든가! 그게 아니면, 유산해서 미안하다든가!”

“…”


아빠는 충혈된 눈으로 소리 질러댔고, 장진주는 어찌할 줄을 몰라 눈치를 살폈다.

그 순간,


“아!”


엄마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무너진 얼굴로 울먹이며 말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

“…”


끝없이 반복되는 그 말 외에는 다른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


.

.

.


아빠가 자리를 피해준 거실 소파에, 장진주와 엄마가 나란히 앉아 있었다. 어색한 침묵을 깨고, 눈이 퉁퉁 부은 엄마가 먼저 입을 열었다.


“난… 네 아빠가 거짓말을 하는 줄 알았어. 근데, 널 처음 봤을 때 바로 알겠더라. 딸이 맞구나. 진짜 내 딸이구나. 이상하지만, 그랬어.”

“아, 네…”


장진주는 어색함에 경직되어 있었다. 분명 엄마가 맞지만, 너무 달랐다.


“몇 살이니?”

“아… 17살이요…”

“그래… 참 예쁘다. 남자 친구는 있니?”

“네? 아. 아뇨…”

“응… 뭐, 좋아하니? 먹고 싶은 거 있어? 배고프니?”

“아니요, 괜찮아요.”

“그래. 취미가 뭐니? 너도 아이돌 좋아하고 그러니? 싸인 CD 같은 거 구해줄까?”

“아뇨, 아뇨. 아뇨…”


엄마는 마치 장진주에 대해 모든 걸 알고 싶다는 듯이, 끊임없이 질문해댔다. 장진주는 어색했다. 분명 엄마가 맞는 걸 느끼면서도 그랬다. 집에 있는 엄마가 아주 예쁘게 꾸며도 이렇게 어색할까?


엄마는 연신 질문을 하다가, 어색해하는 장진주의 모습을 보고 말을 멈췄다. 그 대신 손을 잡으며 지긋한 눈빛으로 장진주를 바라보았다. 소중한 보물을 보듯이,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이 그렇게 보았다.

장진주는 고개 숙여 엄마의 손을 바라보았다. 부드러웠다. 집에서 가계부를 쓰던 엄마의 거친 손과 너무 달랐다.

입술을 축이고, 조심스럽게 입을 여는 장진주.


“저기… 배우시잖아요?”

“응.”

“꿈을 이루신 거잖아요. 그… 행복하세요?”

“…”


질문 속에 담긴 의미 때문인지, 단박에 미안한 표정을 짓는 엄마. 당황한 장진주가 급히 정정했다.


“아뇨, 미안해하실 필요 없고요. 저는 저를 유산… 아무튼, 그걸 탓하려는 게 아니라요… 꿈을 이루고 행복하신지가 궁금해서요. 아시겠지만, 제가 사는 곳에도 그, 엄마가 있잖아요? 전 엄마 꿈이 배우였던 것도 17년 만에 처음 알았거든요. 그러니까, 나쁜 뜻으로 묻는 게 아니고요…”

“그래. 그래.”


고개를 끄덕거리는 엄마의 얼굴이 조금 슬퍼 보였다. 장진주는 괜히 미안해졌다.

잠깐 말없이 손을 내려다보고 있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너에게 미안했어. 믿을지 모르겠지만, 정말 많이 울었어.”

“…”

“그래서 더 열심히 했어. 내 아이까지 버려가면서 얻은 기회였으니까, 필사적으로 했지. 행복했냐고 묻는다면… 응, 행복했어.”

“아…”

“좋았지. 꿈꿔왔던 영화에 출연하고, TV에 나오고, 유명해지고… 돈도 많이 벌고, 좋아해주는 팬들도 생기고… 사람들에게 인정도 받고. 어떻게 행복하지 않을 수가 있겠어?”


엄마는 말을 하며 한쪽 벽을 바라보았다. 그 시선 끝에, 진열대 한가득 각종 트로피들이 빛나고 있었다.


“…”


장진주는 집에 있는 엄마를 생각했다. 엄마도 행복할까? 알 수 없다. 하지만 내가 만약 엄마라면…


“저기… 진주야?”

“네?”


생각에 잠겨 있던 장진주가 고개를 돌리자, 엄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한 번만… 안아봐도 될까?”

“아…”


장진주가 고개를 끄덕이자, 엄마는 장진주를 꼭 끌어안았다. 엄마는 장진주의 묵직한 실체감을 느끼며 눈물을 흘렸다. 장진주는 생각했다.


엄마 냄새다. 엄마랑 냄새가 똑같구나. 엄마가 맞구나.


.

.

.


식탁에 차려진 음식의 반의 반도 못 먹고 남길 정도로 호화로운 저녁 식사가 끝났다. 

식사 내내 두 모녀의 대화를 듣기만 할 뿐, 한마디도 하지 않던 아빠가 처음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가자.”

“아!”

“아…”


아빠의 말에, 엄마가 슬퍼했다. 장진주는 왠지 미안해졌지만, 의자에서 일어나는 아빠를 따라 어정쩡하게 몸을 일으켰다. 그때 급히 장진주의 손을 잡는 엄마의 고운 손.


“저기, 진주야!”

“네?”

“저기… 저기…”


우물쭈물하던 엄마는, 우는 듯 웃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엄마랑… 여기서 같이 살지 않을래?”

“네?”


당황하는 장진주. 엄마의 얼굴이 너무 간절했다.

그때, 웃음을 터트리는 아빠. 

분위기에 맞지 않는 그 경박한 웃음이 둘의 시선을 끌었다. 한참을 웃던 아빠는 엄마를 보며 차갑게 말했다.


“네가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어?”

“…”

“그 결정은 17년 전에 했어야지. 지금 이렇게 남의 딸 앞에서 할 게 아니라.”

“…”


엄마는 반박을 하지 못했다. 아빠는 한껏 입술을 비틀어 웃었다.


“넌 엄마 자격이 없어. 그러니까 아이도 가질 수 없는 몸이 된 거야. 하늘에서도 너 같은 엄마에게는 자식을 주고 싶지 않을 테니까.”

“…”


엄마는 가장 아픈 상처를 찔린 것처럼 눈물을 주르륵 흘렸다.

중간에서 끼어들 수 없었던 장진주만 안절부절못했다.

아빠는 엄마의 그 표정이 통쾌한 듯, 혹은 슬픈 듯, 복잡한 얼굴로 쳐다보다가 돌아섰다.


“가자. 너무 늦지 않게 가야지…”

“네…”


장진주는 엄마를 향해 다른 말은 못하고, 꾸벅 인사만 한 뒤 아빠의 뒤를 따라나섰다.

식탁에 홀로 남겨진 엄마는 양 손바닥으로 얼굴을 감싸며 무너져 내렸다.


.

.

.


장진주가 사는 동네의 놀이터로 걸어가는 둘. 무거운 공기 속에, 아빠가 자조 섞인 웃음을 지었다.


“아빠가 참… 못났지? 실망했지?”

“…”


아빠는 대답을 기대하지는 않은 듯, 변명처럼 혼자 중얼거렸다.


“아빠가 고아인 건 알지? 아빠는 꿈이 있었어. 나를 닮은 아이를 낳아서, 내가 받지 못했던 사랑 다 주고 싶었어. 그런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었어. 근데…”


아빠는 고개를 흔들며 말을 끊었다가, 다시 이어 말했다.


“알아. 아빠가 생각해도 아빠는 참… 쓰레기야. 17년 전 그날 이후로 단 한순간도 엄마를 미워하지 않은 적이 없었어. 알고 있어. 엄마도 힘들었겠지… 힘든 결정이었고, 다시는 아이를 가질 수 없게 됐을 땐 더 힘들었을 거야. 내가 옆에서 엄마를 위로해줬어야 했겠지.”

“…”

“그런데, 그럴 수 없었어. 위로해줄 수 없었고, 응원해줄 수도 없었어. 아빠도 힘들었거든. 너를 잃고 나서, 너무 힘들었거든.”

“…”

“네 엄마가 너를 유산한 뒤로, 아빠 인생도 끝났어. 매일 술이나 마시고, 경마장이나 다니고, 일도 안 하고 쓰레기처럼 살았어. 그래도 엄마는 아무 말도 안 하더라. 차라리 화를 냈으면 아빠가 변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화 한번 안 내더라… 우린 17년동안 부부이면서 부부가 아니었어.”

“…”

“지금도 가끔, 꿈을 꿔. 만약 17년 전 그날에 엄마가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우리 가족은 지금 무엇이 되어 있을까? 부질없지만… 만약 그랬으면 나는, 우리 가족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을까?”

“…”


아빠는 씁쓸한 얼굴로 입을 다물었다. 곧, 둘은 놀이터 앞에 도착했고, 아빠가 양피지를 꺼냈다.

그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던 장진주가,


“아빠.”


아빠를 불렀다.


“어? 어어, 진주야!”


처음으로 불린 아빠라는 호칭에 아빠의 얼굴이 상기됐다. 장진주는 가만히 아빠를 보다가 말했다.


“우리 엄마랑 여기 엄마는 너무 달랐어. 여기 엄마가 더 예쁘고, 더 우아하고, 더 행복하고… 근데.”

“…”

“근데 아빠는 똑같아.”

“뭐?”


아빠의 얼굴이 멍해졌다.


“아빠는 여기나, 거기나 똑같아. 매일 술만 마시고, 도박이나 하고, 엄마만 고생시키고… 정말 못난 아빠야.”

“뭐?”


흔들리는 아빠의 얼굴을 장진주는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엄마 때문이라고만 생각하진 마. 아빠 인생이 지금 그런 건… 모두 다 엄마 잘못만은 아니야. 아빠는 원래…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동자가 흔들리는 아빠.

장진주는 손가락을 뻗어 양피지의 태양을 짚으며, 마지막으로 말했다.


“그러니까, 엄마만 너무 미워하지 마. 아빠 인생은 아빠가 결정한 거니까…”


태양을 옮기며, 연기처럼 사라져버리는 장진주.

홀로 남겨진 아빠는 석상처럼 굳어서 움직일 줄을 몰랐다.


“…”


.

.

.


“아!”


갑자기 사라진 아빠의 모습에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장진주.


“아… 돌아왔구나…”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장진주의 발밑에 양피지가 떨어져 있었다. 양피지를 집어 들고, 복잡한 얼굴로 바라보는 장진주.


.

.

.


“어디 갔다 오니? 전화는 왜 안 돼?”

“어? 어어… 핸드폰 배터리가 나갔어.”


집으로 돌아온 장진주는, 엄마를 자세히 살폈다. 조금 전 보고 온 엄마와 너무 달랐다. 더 늙었고, 더 삶에 찌들어 있었다.

복잡해 보이는 장진주의 시선이 이상한 엄마.


“왜? 뭐 묻었어?”

“…아니.”


실없다는 듯 부엌으로 향하는 엄마. 그 뒷모습을 보던 장진주가 물었다.


“엄마! 주름 방지 화장품 같은 거 안 써?”

“어이구, 그럴 돈이 어딨니? 로션 살 돈도 없어!”

“…”


돌아오는 대답이 너무 팍팍하여, 장진주는 슬펐다. 건너 세계에서 멋있게 사는 엄마와 비교되어, 미안했다. 만약 자신이 아니었다면, 엄마도 그렇게 살 수 있었을 텐데.

장진주는 싱크대 앞의 엄마에게 달려가 뒤에서 끌어안았다.


“어머? 왜 이래?”

“엄마…”

“왜 그래? 용돈 필요해? 엄마 돈 없어.”

“아니. 그냥. 미안해서…”

“원 참! 뭐가 미안해.”


장진주는 엄마 등에 얼굴을 묻었다. 자신 때문에 꿈을 포기한 엄마에게 미안했다.

한데, 지금 이 순간 장진주가 정말로 미안했던 것은, 


자기 인생도 엄마처럼 될까 봐 걱정하고 있는, 자신의 나쁜 마음이었다.


.

.

.


불이 꺼진 여배우의 집.

여인이 넓은 소파에 웅크리고 앉아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현관문이 열리고, 걸어오는 사내.


“…”


사내는 복잡한 얼굴로 여인을 내려다보다가, 들릴 듯 말 듯한 음성으로 말했다.


“미안해.”


사내가 17년 만에 처음 해보는 말이었다.

여인이 천천히 고개를 들어 사내를 올려다보았다.


“…”

“…”


마주친 두 사람의 눈이 오랫동안 떨어지지 않았다.


.

.

.


침대에 누운 장진주는 오늘 밤도 쉽사리 잠들 수 없었다.


장진주도 어릴 적부터 간직해온 꿈이 있었다. 스튜어디스. 그건 지금의 가정 형편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참아야 할 꿈이었다.

장진주는 배우고 싶었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남들처럼 대학도 가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을 해서 집안 빚을 갚아야 했다. 아니, 지금 당장에라도 알바를 구해야 했다.

지금 장진주가 잠들지 못하는 것은, 자신에게 기회가 생겼기 때문이다. 장진주는 양피지를 만지작거렸다.

만약, 저쪽 세계로 넘어간다면 어떨까? 그쪽 엄마의 딸이 된다면… 내 꿈을 마음대로 이룰 수 있지 않을까?


장진주의 고민은, 17년 전 엄마의 고민과 닮아 있었다. 두 엄마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신의 미래를 투영했다.


“…”


아무리 생각해도 장진주는, 엄마처럼 되고 싶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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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찌개와 멸치조림, 오징어젓갈. 항상 장진주네 식탁에 올라오는 반찬이었다.

밥을 깨작대던 장진주가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 있잖아… 엄마 꿈 말이야. 영화배우.”

“또, 왜?”

“그거 포기한 거, 정말로 후회 안 해? 만약 영화배우 했으면 진짜 성공해서 유명한 여배우가 됐을지도 모르잖아.”

“당연히 유명해졌겠지. 엄마가 워낙 예뻤으니까.”

“응, 그건 그래. 그러니까 후회 안 해?”

“흠…”


젓가락질을 멈춘 엄마가 장진주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심각한 얼굴로 눈을 몇 번 깜빡여가며 장진주의 얼굴을 관찰하다가, 피식 웃는 엄마.


“후회 많이 했지.”

“정말?”


놀라 되묻는 장진주의 눈동자가 커졌다.


“그래도 네가 태어난 그날 이후로는,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어. 너를 내 품에 안자마자, 세상에 그 어떤 것도 의미가 없어졌거든.”

“아…”


엄마는 사랑 가득한 눈으로 장진주를 바라보았다. 장진주는 왠지 찔려서, 그 시선을 받아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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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뒤.

장진주는 놀이터에서 양피지를 펼쳐들고 한참을 갈등하고 있었다.

곧 장진주는 스스로 다짐하듯 중얼거렸다.


“그래. 물어만 보자. 17년 전에 꿈을 선택한 걸 후회하는지 안 하는지만 물어보고 오자…”


손가락을 뻗어 태양을 짚는 장진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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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야? 진주야!”


엄마는 타워팰리스 경비실까지 버선발로 달려왔다.

금세 눈시울이 붉어져 장진주의 손을 잡는 엄마. 장진주는 역시, 조금 어색했다.


“아, 저…”

“들어가자. 일단 들어가자.”


엄마는 얼른 장진주를 집으로 데려갔다. 집에 아빠는 없었다.

소파에 앉은 두 사람.


“저… 묻고 싶은 게 있어서요.”

“그래그래.”


뭐든지 물어보라는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

장진주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17년 전에 그… 꿈을 선택하셨잖아요.”

“아… 으응…”

“혹시… 후회하세요?”

“…”


장진주는 솔직하게 말해달라는 듯, 엄마를 보았다. 엄마는 잠시 말이 없었다.

그러나 곧, 입을 떼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후회했어.”

“아.”


장진주의 입에서 탄식이 흘러나왔다. 후회하는구나. 엄마는 후회하지 않았는데, 이곳 엄마는 후회하는구나.

한데, 엄마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사람이니까… 사람이니까 후회했지. 살면서 몇 번씩 생각했어. 만약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그런데…”


엄마가 미안해하며 말했다.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난 아마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 너를 앞에 두고 할 말은 아니지만… 아마 그랬을 거야. 정말 미안해…”

“아…”

“너는 어때? 너도 꿈이 있니? 무슨 일이 있어도 이루고 싶은 소중한 꿈 말이야.”


장진주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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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집으로 돌아온 장진주가 가장 먼저 들은 것은 엄마의 한숨 소리였다.

장진주는 가계부와 씨름하고 있는 엄마의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불쌍했다. 엄마는 왜 저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엄만 충분히 더 행복하게 살 수 있었는데.

두려웠다. 나도 엄마처럼 되는 걸까? 보잘것없는 내 미래도 결국 엄마를 닮게 되는 걸까?


다른 차원의 엄마가 했던 말이 장진주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언제라도 좋으니까… 진주가 엄마한테 기회를 줄 수 있다면, 엄마는 언제라도 좋으니까, 응? 늘 기다리고 있을게.]

“…”


양피지를 잡고 있는 장진주의 손에 힘이 꾹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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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진주는 놀이터에 서 있었다.

아까부터 태양 위에 손가락을 올려놓은 채 멈춰 있는 장진주.

흔들리는 눈으로 고민하다가, 눈을 질끈 감고, 손가락을 옆으로 그었다.


눈을 꾹 감고 부들부들 떨고 있는 장진주의 귓가에, 갑자기 남자의 음성이 들려왔다.


“진주야…”

“아!”


장진주가 눈을 뜨자, 장진주를 기다리고 있던 아빠의 모습이 보였다.

아직 혼란스러워하는 장진주의 얼굴을 보며, 아빠가 물었다.


“결정한 거니?”

“…네.”


아빠는 가만히 장진주를 바라보다, 이내 장진주 쪽으로 손바닥을 내밀었다. 곧, 장진주가 그 위에 양피지를 얹었다.

양피지를 챙겨 넣은 아빠는 고개를 끄덕이며 앞장섰다.


“가자. 내 딸 진주야.”

“…”


따라나서는 장진주의 얼굴에, 확신 같은 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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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엄마는 장진주를 끌어안고 울며, 같은 말만 반복했다.


“고마워… 고마워… 고마워…”

“…”


장진주의 코끝이 시큰해졌다. 그러나, 곧 눈물을 흘릴 것 같은 눈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옆에서 모녀를 바라보던 아빠는 생각에 잠겨 있었다. 모녀가 떨어지자마자,


“진주야.”

“네?”

“정말로 우리 딸로 살기로 한 거지? 다시는 그곳으로 돌아가지 않고, 이 세계에서 살기로 한 거지?”


확인을 받듯이 묻는 아빠. 장진주는 무거운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네.”

“…”


아빠는 잠시 말이 없다가, 다시 물었다.


“진주야. 그럼 그곳에 있는 진짜 엄마는?”

“여보!”


소리쳐 말을 막는 엄마. 아빠는 그런 엄마를 힐끔 쳐다만 볼뿐, 다시 진주를 보며 물었다.


“거기 있는 엄마를… 버린 거니?”

“여보!”


기겁하며 막아서는 엄마. 아빠는 아랑곳없이 장진주의 대답을 요구했다.

장진주는 괴로워하며 대답했다.


“예. 전… 저도 제 꿈을 이루고 싶어요. 가난한 그곳에선 절대 이룰 수 없는 제 꿈이요…”


엄마는 얼른 장진주를 다시 안아주었다.


“그래그래. 뭐든지 하렴. 엄마가 뭐든지 다 해줄게.”


한데 아빠는, 가만히 장진주를 보다가 뜬금없이 물었다.


“진주야. 너도 알겠지만… 아빠는 쓰레기야. 알지?”


아빠는 양피지를 든 손으로, 한쪽 방을 가리키며 물었다.


“저 방 보이니?”

“네…”

“만약, 저 방 안에, 네 엄마가 숨어 있다면 어떡할래?”

“네?”


장진주의 눈이 흔들렸다.


“여보, 지금 무슨!”


깜짝 놀란 엄마를 향해 손을 뻗어 제지하는 아빠.


“저기 숨어서 네가 하는 이야기를 다 듣고 있었다면 어쩔래? 네가 그곳의 엄마를 버리고, 이곳을 선택했다는 걸 다 듣고 있었다면 말이야.”

“왜… 왜, 왜?”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 장진주에게, 아빠는 냉정한 얼굴로 말했다.


“확실하게 하고 싶었어. 네가 확실하게 그쪽 세계와 연을 끊게 하고 싶었어. 이 방법이라면 가능하잖아?”

“거, 거짓말… 거짓말!”


고개를 흔드는 장진주. 아빠는 냉정하게 말했다.


“넌 알고 있지? 저 방 안에 네 엄마가 지금 왜 조용한지. 여기서라면, 진주 네가 원하는 모든 꿈을 이룰 수 있단 걸 알고 있으니까 그렇겠지…”


장진주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한번… 확인해볼래? 확인해봐.”

“아…”


아빠가 가리킨 문을 보며 침을 꿀꺽 삼키는 장진주.

부들부들 떨리는 걸음걸이를 옮겼다. 아닐 거다, 아무도 없을 거다 생각하면서도 가슴이 울렁거려 미칠 것만 같았다. 문고리를 잡은 손이 마구 떨렸다.

조심스럽게 문고리를 돌린 장진주가, 이를 악물며 문을 확 젖히자,


“아!”


장진주는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욕실이었다. 아무도 없었다.

주저앉아 부들거리다가, 엉금엉금 기어가 커다란 욕조 안까지 살피는 장진주.

아무도 없었다. 몸에 힘이 빠졌다.


어느새 다가온 아빠가, 장진주를 향해 양피지를 내밀었다. 착잡한 얼굴로 말했다.


“진주야… 또다시 17년 전과 같은 선택을 반복하진 말자. 이 세계에선… 더는 안 된다.”

“아…”

“우리 부부는 슬픈 사람들이야. 당연해. 그건 17년 전 선택에 대한 당연한 대가야. 근데… 꿈까지 포기한 너희 엄마는 왜 슬퍼야 하는 거니?”

“아아…”


양피지를 받아든 장진주는 엉엉 울었다.


“미안해요. 미안해요.”


소리 내어 엉엉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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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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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은 밤의 놀이터. 퉁퉁 부은 눈의 장진주가 발밑을 바라보고 있었다.

말없이 장진주를 바라보던 아빠는, 외투를 벗어 장진주의 어깨에 둘러주었다.


“춥지?”


고개를 들어 아빠를 본 장진주는, 작은 목소리로 사과했다.

“…죄송해요.”


아빠는 고개를 저으며, 미안해하는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미안하다. 난 엄마에게도, 너에게도, 꿈을 포기하라고만 강요하는구나. 미안하다.”

“아니에요.”


장진주도 아빠를 따라 고개를 저었다.

곧 양피지를 펼쳐 든 장진주는, 손가락으로 태양을 짚고는 아빠의 손가락을 기다렸다.

그러나 아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난 됐다. 아마 다시 쓸 일도 없을 거야. 그곳에 가면… 양피지는 찢어도 된다.”

“…네.”


고개를 끄덕인 장진주는, 마지막으로 다시 아빠에게 사과한 뒤 태양을 옮겼다.

“…”


연기처럼 사라진 딸의 빈자리를 바라보는 아빠. 미련 없이, 뒤돌았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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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은 엉엉 울며 사내를 때렸다. 사내는 묵묵히 맞으며 여인을 안아주었다.

엉엉 우는 여인의 등을 토닥이며 사내는 말했다.


“우리, 개나 키울까? 고양이? 아니면… 입양은 어때?”


여인의 흐느낌이 사내의 품에서 점점 멎어들었다.


.

.

.


“엄마!”


장진주가 엉엉 울며 엄마에게 달려들어 안겼다.


“어머! 왜 이래? 무슨 일 있어? 응?”


깜짝 놀란 엄마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장진주를 보듬었다.

연신 미안하다며 엉엉 울던 장진주는, 엄마의 질문에, 겨우 소리 내 답했다.


“그냥… 그냥 엄마가 나를 낳아준 게 너무 고마워서 그래!”


엄마는 황당하다는 듯이, 딸을 안으며 대답했다.


“으이구! 네가 태어나준 게 더 고마워!”


모녀는 서로를 따스하게 안아주었다.


“근데 너 그 옷은 뭐니? 어디서 났어? 비싸 보이는데?”


“응? 아앗, 맞다! 어, 이 옷은, 그게 그러니까… 응? 뭐지?”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은 장진주가 고개를 갸웃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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