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억 원에 팔린 <예술가의 똥>
예술가의 똥 - 첫 번째 이야기
예술가의 똥
피에로 만초니라는 작가가 있다. 인분을 깡통에 담아 작품화시킨 작가이다.
피에로 만초니 (1933-1963)
혹자들은 미술이 온갖 희한한 행태들을 일삼더니 급기야 갈 데까지 갔다고 말하기도 하고, 혹자들은 말도 안 되고 참기 힘든 현대미술에 대한 비판과 조롱으로 해석을 하기도 한다. 자본주의에 삼켜진 미술계를 비판하고 작품을 돈으로만 환산하고 높은 가격일수록 환장하는 자본가 컬렉터들에게 일침을 놓는 작품이라며, 자본가들은 그것도 모르고 작품을 칭송한다며 쓴웃음을 짓는 이들도 있다.
해석은 각자의 자유이고, 그런 해석들도 틀렸다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단순하고 일차원적인 해석이 아닌가 싶다. 나는 피에로 만초니의 작품(1961)에서 미술과, 좀 더 거창하게는 세상의 본질을 관통하는 통찰을 발견하기 때문이다.
인분을 작품이라고 하는 것이 어떤 사람들에게는 더럽게 여겨지기도 하고 불쾌감과 거부감을 줄 수도 있다. 하지만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깨닫고 난 후에 무릎을 치고 깊이 공감을 해서인지, 나는 재기 발랄하고 엉뚱한 괴짜적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사실 그것이 똥이든 콧물이든 그 무엇이든 그것은 별로 중요치 않다. 그것은 관객들의 관심을 최대한 끌기 위한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소재일 뿐이다. 중요한 것은 깡통에 담고 봉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똥을 깡통에 담았다며 미술이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것이냐며 왁자지껄 소란스럽지만 사실 거기에 진짜로 똥이 담겨 있는지는 알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이 관심을 갖고 호들갑을 떠는 것은 깡통 안에 진짜 똥이 담겨 있다는 믿음 위에 기반하는 것이다.
만약에 진짜 똥을 투명 유리병 안에 담았다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작품이 된다. 1차원적으로 해석하자면 깡통 안에 담긴 똥과 유리병 안에 담긴 똥이 그게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이냐고 할 수도 있다. 나는 그 지점이 바로 피에로 만초니가 미술사에 남는 중요한 작가가 되는 포인트라고 본다. 유리병 안에 담긴 똥이라면, 말 그대로 ‘똥’ 작품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해석의 겹은 급격히 얇아진다.
하지만 그는 통조림 깡통 안에 담고 밀봉했다. 그리고 거기에 똥이 담겨 있다고 했다. 그러면 이제 작품이 ‘믿음’의 단계로 넘어간다. 거기에는 똥이 담겨 있을 수도 있고, 안 담겨 있을 수도 있다. 똥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담겨 있을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당연히 거기에 똥이 담겨 있다고 생각하고 전제하고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판단하고 평가한다. 이 지점이 바로 이 작품의 핵심이다. 사람들은 믿음대로 보고, 생각하는 대로 본다는 것이다. ‘플라시보 효과’ 와도 통하는 지점이다. 그리고 그것은 진짜일 수도 있지만 거짓 이미지일 수도 있고, 결국 또 보드리야르가 말한 ‘시뮬라크르’(가짜 이미지)에 닿는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초니의 작품을 유리병에 담긴 똥 작품과 같이 생각하지만, 그 안에 진짜 똥이 담긴 것이 맞냐고 의심하는 사람들도 있기 마련이다. 같은 제목의 작품을 90개 만들었는데, 그 안에 정말로 똥이 들어 있는 것이 사실인지 확인하기 위해 누군가 하나의 작품을 개봉해 보았다. 그렇다면 그 안에 정말로 똥이 들어 있었을까?…
그 안에는 또 하나의 깡통이 들어 있었다. 으아! 만초니는 이런 상황을 예견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끝까지 확인하기 위해서는 다시 또 그 깡통을 개봉해야 한다. 그러면, 그 안에는 정말로 똥이 들어 있을 수도 있고, 다른 무언가가 들어 있을 수도 있고, 아니면 또다시 깡통이 들어 있을 수도 있다. 답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또다시 깡통을 개봉할 것인지 선택을 해야 한다. 하지만 모른 선택에는 대가가 따르는 법. 답을 알기 위해 깡통을 개봉하고 나면 작품은 훼손되고 가치는 사라져 버리고 만다. (으아!!!)
거기에서 끝까지 깡통을 개봉해서 답을 알아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너무 궁금해서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끝까지 개봉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끝까지 개봉한다면 답은, 정말로 똥이 있거나, 다른 무언가가 있거나, 아무것도 없거나. 그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거기까지 가 보는 것이 이 문제에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고 본다. 작가도 선택을 해야 했을 테고 답은 그중에 하나일 텐데 그것이 무엇이든 상관이 없고 중요치 않다고 생각한다. 나는 여기까지 왔으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와 가치는 충분히 전달이 되었다고 본다.
실제로도, 깡통을 개봉하고 그 속에 또 하나의 깡통을 발견한 그 상태에서 멈추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똥이 아니라 회반죽이 들어 있다는 소문도 있고, 아무것도 없다는 소문도 있고, 실제로 똥이 들어 있다는 소문도 있다.
이 작품속 이야기는 세상 속 우리들의 삶과 놀랍도록 닮아 있지 않은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내가 굳게 믿고 있는 사실이 사실은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사람들은 진실을 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보고 있다는 것. 이 세상은 ‘시뮬라크르’가 지배한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