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과 상상력의 위대함
그것이 그저 각종 어렵고 폼 나는 단어들을 적당히 아무렇게나 조합해 만든 ‘아무 말 대잔치’라고 할지라도, 엄숙한 분위기와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면 그 아무 말 대잔치로부터도 어떠한 의미는 도출된다.
그렇게 인간의 믿음과 상상력이라는 것은 위대한 것이다. 그것에 무언가 있을 것이라는 믿음과 지적으로 열등한 존재이기 싫은 승부욕, 누군가는 이해하는데 나는 그러지 못해 소외되고 바보가 되는 것 같은 불안감은 온몸의 세포들을 긴장시키고, 모든 집중력을 모아 두뇌를 입체적으로 풀가동 시킨다. 그러면 아무런 연관과 인과성이 없는 단어들로부터 꿈에서 보는 듯한 초현실적 이미지와 모호하고 알 듯 말 듯 한 의미가 창조되고 조합되는 것이다. 인간 뇌의 위대함이 아니라고 할 수 없다.
콘텐츠의 힘보다 감상자가 갖는 태도와 믿음의 힘이 훨씬 더 세다
현실에서는 그것이 어떤 충실한 콘텐츠를 지녔느냐보다 그것에 대한 선입견과 태도가 결정적으로 더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본질적인 ‘내용’보다, 사람들에게 선입견을 심어주고 어떠한 태도를 갖게 하는 ‘껍데기’와 ‘권위’가 중요하다는 것이다. 존중과 믿음, 경외감을 가지고 바라보면 부실한 것조차 귀엽고 순수해 보이고 모든 게 좋아 보이는 것이고, 의심과 저평가의 편견을 가지고 바라보면 좋은 것조차도 후져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플라시보 효과와도 상통하고 결국 또 ‘시뮬라크르’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노장 대가에 대한 우리의 환상과 기대에 대해 말해보자. 노작가는 존중받아야 하는 존재가 맞다. 하지만 그것과 별도로 그들의 말이 모두 심오한 의미를 품고 있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런 기대를 가지고 있을 뿐이다.
예술이라는 것이 사유라는 것이, 사기와 말장난과 인생의 진리 사이에 구분 지어지는 경계선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것 같은 나이 지긋한 대가라 할지라도 예술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는 뜬 구름 같은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고 반 사기꾼의 재능이 드러날 수밖에 없다.
우리는 그것을 진지하고 엄숙하게 듣지만, 꼭 그럴 필요는 없다고 본다. 노장 대가들의 인터뷰를 백발 아우라와 존중심을 빼고 들으면 애매모호한 것은 마찬가지이고, 그들도 자신이 하는 말이 무슨 소린지 모르고 정답을 모르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단지 같은 말을 들어도 알아서 더 이해하고, 듣는 사람이 세월의 깊이를 담아서 더욱 높게 평가할 뿐이다.
비하하려는 것이 아니다. 예술이라는 것이 원래 그런 것이다. 애매모호하고 뜬 구름 잡는 것에 순수하고 진지하게 몰입하는 모습이 아름다운 것이 예술가의 멋이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