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보는 것은 각자의 '믿음'이다
또 다시 '시뮬라크르'
우리가 보는 것은 각자의 ‘믿음’이다
<메시아>라는 드라마가 있다. 신의 권능을 지닌 듯한 인물이 나타나고 기적과 같은 미스테리한 일들이 벌어진다. 사람들은 동요하고 의심하고 추종하고, 소문이 퍼진다. 종교가 어떻게 생기고 어떠한 현상들이 일어나고 전파되는지를 보여주고,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꽤 재미있고 잘 만들어진 드라마이다.
그래서 그가 정말로 신의 선지자인지 아니면 사기꾼에다가 우연적 행운이 따르는 인물인지 정말로 궁금하다.
어떤 이는 한쪽의 확신을 가지고 어떤 이는 중간 지점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며 드라마를, 그리고 실제 현실을 바라본다. 당연히 드라마에서도 실제 현실에서도 모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완벽한 답은 제시되지 않는다. 만약에 그런 것을 제시한다고 해도 각자의 시점에서 다르게 해석할 것이며, 결국 인간들은 진실을 보는 것이 아니고 각자 자신들의 ‘믿음’ (그것이 신 존재의 증거라는 확신 또는 그것이 사기라는 확신)을 보고 있기 때문이다.
간단하게 이야기하면 둘 중의 하나이다. 그것이 진실이든지 아니면 거짓이든지. 좀 더 자세히 파고들자면 만약에 그것이 거짓이라면, 다시 말해서 그가 그냥 사기꾼이라면, 자기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지능형 사기꾼인지 아니면 자기가 사기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자신이 정말로 메시아라고 믿고 있는 허언증 환자 내지 정신병자인지로 나누어질 것이다.
정리하면
①진짜 메시아
②지능형 사기꾼
③허언증 환자나 정신병자
이렇게 크게 나누어 셋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조금 더 생각해 보면 ③은 빼야 한다. 왜냐하면 기적처럼 일어났던 일들 중 모래폭풍이 불거나 허리케인 속에서 살아남은 일 등은 정말로 신의 기적이거나 우연적 자연현상이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총 맞은 아이를 살려냈다든지 물 위를 걸었다든지의 일들은 진짜 신의 능력 아니면 조작, 둘 중에 하나이기 때문이다. 그 지점에서 ③은 삭제된다. 그렇다면 결국 ①과 ② 둘 중에 하나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들의 믿음과 세상의 결과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의 진실이 진실이라고 해도, 끝없이 의심하고 부정하는 사람들을 모두 다 설득시킬 수는 없다. 보는 각도에 따라서 그것이 거짓말이라는 논리와 증거를 어떻게 해서든지 간에 찾아낼 것이고 끝까지 부정할 것이다.
반대로 그것의 진실이 거짓이라고 해도, 절망 끝에 매달려 그 믿음 하나만을 붙잡고 있거나 여태껏 진심과 온 열정을 다해 그 믿음을 가지고 살아왔는데 그것이 무너지면 삶이 무너질 것 같은 사람들의 믿음을 없앨 수는 없다. 그것이야 말로 그들에게 가장 잔인한 형벌일 것이다. 어떻게 해서든지 그들은 그것이 거짓이 아니라는 증거와 논리를 찾아낼 것이며, 그들의 종교와 믿음은 절대로 무너지지 않는다.
결국 신이 진짜로 존재하든지 존재하지 않든지 실체적 진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란 이야기이다. 만약에 내가 실체적 진실을 알아낸다고 해도 나의 궁금증만 해결될 뿐이지, 그것은 큰 의미가 없다. 결과적 현실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어느 쪽이든 그것을 완벽하게 증명할 수가 없고, 사람들의 답안지는 이미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미술도 마찬가지이다. 그것이 진짜 예술인지 사기인지 애매한 작업을 하는 사람이라면
① 진짜 예술가
② 지능형 사기꾼
③ 허언증 환자
이 셋 중에 하나일 것이다.
그런데 종교에서는 보이지는 않지만 3가지 경우의 구분선이 존재할 것이고 진실은 그중에 어느 한 가지이다. 비록 어느 쪽도 그것을 완벽하게 증명하는 것이 불가능할지라도 말이다. 하지만 예술에서는 3가지 경우를 분리하는 경계선이 표면적으로는 존재할지 몰라도, 우리의 믿음을 배신할 수도 있는 실체적 진실을 향해 파고 들어가면 그 구분선이 존재하지 않는다. 희미해지고 붙어버려서 한 몸이 되어버린다.
그것이 예술의 특성이다. 그런 면에서 예술은 종교보다 더 복합적이고 고차원적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