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할 말만 하는 고집불통의 숨겨진 비밀

빌 설리번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by Lana H

주변에 꼭 말 안 통하는 사람이 있다. 누가 봐도 아닌 것 같은데 끝까지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다. 납득시키기 위해 근거를 들이밀어 보지만 소용없다. 그런 사람은 기본적으로 들을 준비가 안되어있다. 이런 부류가 남이라면 인연을 끊고 살면 된다. 굳이 자기 세계에 갇힌 사람과 어울릴 필요는 없으니까. 하지만 가족 중에 이런 사람이 있다면? 끔찍하다. 제발, 시대적 맥락에 맞지 않다고, 이제 당신이 갖고 있는 가치관은 젊은 세대에 통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득해본다. 열이면 열 "젊은 놈이 얼마냐 살아봤냐. 네가 나에 대해 뭘 알아? 어디서 어른을 가르쳐 들어?"라며 호통부터 치고 본다.


서로 '합리적'으로 의견을 주고받는 세상에 살고 싶다. 열린 마음으로 각자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분위기 속에 살고 싶다. 현실은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안타깝지만 나도 합리적이고 열린 마음으로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게 잘 안된다. 가치관이 다른 사람이 나의 신념을 건드리면 마음속 깊은 곳에서 화가 난다.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선다. 운이 좋으면 '그렇군요' 라며 넘어가지만 재수가 없으면 한바탕 소란이 벌어진다. 옥신각신 하며 자기 할 말만 하다 끝나는 우스운 상황이 된다.


왜 이렇게 그들은 자기 얘기만 하며 살까?




비밀은 여기에 숨어있다.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은 우리의 의사결정 과정 자체가 오류투성이라는 점을 지적한다. 제아무리 과학을 발전시켜 최첨단 기술 속에 둘러싸여 살아가도 인간 본성은 불완전하다는 걸 알려주고 있다. 저자는 우리 뇌의 속성이 현대사회랑 맞지 않아 첫 문단 예시 같은 일이 벌어진다고 주장한다. 이를 전문적인 용어로 '확증편향'이라 부른다.


확증편향은 애초에 뇌를 가진 목적 자체를 부정하는 고약한 습성이다. (...) 확증편향이 있으면 훌륭한 논증도 소 귀에 경 읽기다. 하지만 이런 습관이 지속되는 이유는 뇌에서 감정을 담당하는 부분이 먼저 진화했고 새로 진화한 추론 능력보다 훨씬 오랫동안 우리와 함께 해왔기 때문이다. 여전히 논리보다 감정이 이길 때가 많은 이유도 이 때문인지 모른다. p. 332


동물을 생각해보자. 동물들은 합리적인 사고를 하지 않는다. 더 나은 정글을 위해 토론하고 합의점을 찾는 활동을 하지 않는다. 바나나 GDP를 증가시키기 위해 개발을 하지 않는다. 동물은 그저 본능에 따라 먹이활동을 하고 번식한다. 때로는 영역싸움도 한다. 그러다 죽음을 맞이한다. 우리 뇌도 이런 메커니즘이 숨져있다. 남의 말을 안듣는 사람의 뇌는 아직 진화가 덜 되었다고 생각하는게 편할지도 모르겠다.


<생각에 관한 생각>에서는 확증편향을 이렇게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상대를 잘 알기도 전에 그를 좋아하거나 싫어하고, 딱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낯선 사람을 신뢰하거나 불신하며, 어떤 사업을 분석도 하지 않고 그것이 성공할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문제의 답을 겉으로 말하든 말하지 많든,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도 않은 채, 설명할 수도 옹호할 수도 없는 기초로 답을 내놓는 때가 종종 있다. <생각에 관한 생각 p.153>

어떤가? 생각나는 사람이 떠오르는가? 아니면 혹시 내 이야기가 아닐까는 의구심이 드는가? 우리는 확증편향 때문에 중요한 문제를 감으로 해결하려는 나쁜 습성이 있다. 이번만 투자하면 대박이야! 이번만 구입하고 안 살게! 그 사람은 그럴 리가 없어 이번만 잘못한 거야! 라며 자신의 생각이 절대적으로 옳다는 관점 아래 모든 것을 판단한다.


당신의 프리마돈나 뇌는 세상이 자기가 알고 있는 모습 그대로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자신이 가장 소중히 여기는 신념을 뒤집는 새로운 발견이 등장하면 인지부조화(기존 신념을 부정당할 때 느끼는 고통)가 생긴다. (...) 우리 뇌는 무의미한 우연에 지배되는 세상을 경계한다. 우리는 우리에게 닥치는 일들이 아무런 까닭도 이유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보다 차라리 신의 큰 계획, 업보, 천국과 지옥 같은 근거 없는 개념을 믿어버린다. p.344

우리 뇌는 주인공이 되고 싶은 욕구가 있다. OO주기설, 음모론, 종말론 같은 근거가 빈약한 이론에 우리가 취약한 이유다. 제아무리 가설-실험-결론 도출을 기반으로 한 과학문명에 살아도 미스터리한 사건 앞에선 이성보다 감정이 앞선다. 애매모호, 불확실함, 측정 불가능한 영역에서는 우리의 프리마돈나 뇌가 오작동을 일으킨다. 그래서 유튜브나 SNS에 업로드되는 음모론에 좋아요가 생각보다 많이 찍히는지도 모르겠다.




확증편향을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가지를 정리봤다.




1. 자신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파악하자.


어떤 부분에서 수정 보완할지 알아봐야 한다. 평소에 다양한 관점이 얽힌 자료를 읽어볼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독서를 추천한다. 특정 작가의 책이 아닌 여러 분야, 여러 작가의 책을 읽으며 내가 무엇을 알고, 모르고 있는지 깨달을 필요가 있다.


2. 상대방의 의견을 입 닫고 들어 보자.


우리 무의식에는 신념과 자신의 인격을 동일시하는 본능이 있다. 그러나 신념은 언제든 바뀔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두자. 나와 반대되는 상대의 의견을 들을 때마다 심장이 아프겠지만 입 꾹 닫고 참아보자. 인내하며 경청하다 보면 서로 절충안을 찾는 기적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3. 주장을 펼치고 싶다면 데이터 혹은 근거 자료부터 모으자.


이 과정에서도 분명 확증편향이 들어갈 것이다. 그래도 내 말이 무조건 옳다며 우기는 것보다 자료를 제시하며 주장하는 편이 훨씬 낫지 않은가. 비록 자료 모으는 과정이 엄청 귀찮더라도 '의식적 노력'으로 참고 해 보자. 공부는 엉덩이로 하는 거 아니겠나.





<나를 나답게 만드는 것들> 제목만 들어보면 감성 에세이 같다. 하지만 이 책은 생물학 카테고리에 속한다. 후성유전학에 관심 있는 과학 덕후라면 엄청 즐겁게 읽을 것이다. 관련 배경지식이 없는 사람이 읽기엔 아마 난이도가 좀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과학 문외한인 나는 재밌게 읽었다. 중간중간에 튀어나오는 작가의 유머도 재밌었고, 나를 구성하는 유전적, 환경적 요인에 대해 알아보는 것도 재밌었다.


이번 서평은 '확증편향'을 중심으로 썼다. <사피엔스> 저자 유발 하라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 몸은 21세기를 살지만 마음은 수렵채집 시대에 산다" 우리는 확증편향을 완전히 피할 수 없다. 그래도 우리 뇌가 확증편향으로 가득 찬 프리마돈나라는 걸 인정하기만 해도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되지 않을까.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것이야말로 진정으로 아는 것이다
-공자-


<읽은 책>


<참고한 책> 개인적으로 강력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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