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 대신 몸을 제물로 바쳤다

로렌 슬레이터 <블루 드림스>

by Lana H

가끔 가다 기록으로 남기기 어려운 책을 만날 때가 있다. 이번이 딱 그런 날이다. 책은 흥미롭게 읽었다. 하지만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 읽었던 책은 <블루 드림스>. 정신병 약의 발견과 쓰임새, 미래의 정신질환 치료의 방향성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아직 나는 약이 절실하게 필요할 정도로 정신병을 앓은 적이 없다. 가끔가다 우울한 '기분', 불안한 '감정'만 들뿐, 정말 죽을 것 같은 고통까지는 느껴본 적이 없다. 저자 로렌 슬레이터는 35년간 정신과 약을 복용한 환자이자 심리학자다. 책을 읽다 보면 내가 겪었던 정신적 고통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녀가 겪은 처참한 상황을 간접적으로나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녀가 겪은 정신질환 증상 중 일부를 발췌해본다.


비참한 절망, 어지러운 불안, 변덕스러운 희열이 번갈아가며 나타났다. 밤을 새워서 두툼한 책을 완성하다가도 다음날 낮이 되면 글을 쓸 때 느꼈던 순수한 시의 본질이 사라졌다. (...) 열세 살부터 스물네 살까지 다섯 번이나 입원 치료를 받았고 인생에 희망이 별로 없었다. 강박적으로 팔에 자해를 했고 침대까지 가지 못하는 날도 많았다. (...) 세상은 극복할 수 없는 산이었다. (...) 일을 시작할 힘이 없었다. 발을 바닥에 내려놓는 노력조차도 복잡한 차원의 문제처럼 불가능했다.




정신질환을 겪는 사람은 당장에라도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한다. 멀쩡한 정신으로 살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내어놓을 수 있다는 생각을 지닌다. 다행히 요즘은 정신과에 대한 인식이 많이 나아져 정신적 문제가 있으면 가벼운 마음으로 자유롭게 상담을 받을 수 있는 분위기다. 그러나 저자 슬레이터는 아직 정신의학은 불완전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정신과 약에 숨어있다.


우리는 몸이 아프면 의사를 찾아가서 약을 처방받는다. 병원에 갈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약국에 가서 증상에 맞는 약을 구입한다. 약을 먹으면 몸이 한결 괜찮아진다. 증상이 나아지면 그냥 안 먹으면 그만이다. 그러 정신과 약은 조금 다르다.


일반적인 약은 병이 나으면 더 이상 먹지 않아도 몸에 별 이상이 없다. 하지만 프로작, 자이프렉사와 같은 정신과 약은 쉽게 복용을 중단할 수 없다. 약을 먹을 때 뒤따라오는 부작용이 크기 때문이다. 슬레이터는 정신과 약 때문에 당뇨병과 급격한 체중 증가, 입이 마르는 증상을 겪었다. 약에서 벗어나고자 복용량을 줄였지만, 그 과정이 만만치 않았다고 한다.


정신과 의사들은 인정하기 싫겠지만 병원에서 처방하는 약은 뒷골목에서 살 수 있는 약과 여러 가지 면에서 다르지 않다. 헤로인 중독자가 헤로인으로 해독을 해야 하듯 자이프렉사 사용자는 자이프렉사로 해독을 해야 한다. 해독은 보통 일이 아니어서 몸에 무리를 준다. 하지만 이걸 견뎌내면 다른 약, 지금보다 더 뛰어날 가능성이 있는 약이 나를 반겨줄 것이다. p.134

(...) 정신의학계는 아직 몸이 희생되지 않는 약을 찾지 못했다. 이 세상 모든 정신과 약은 '기브 앤드 테이크'다. 무엇이 희생됐는지 확실하지 않은 경우도 있다. 약을 장기간 복용했을 때 뇌가 어떻게 되는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p.207


정신과 약을 먹으려면 엄청난 각오를 해야 한다. "마음 대신 몸을 제물로 바쳤다"고 저자는 언급한다. 둘 다 가질 수는 없다. 그런데 정신과 약을 복용하고 있는 사람 중 뒤따르는 부작용을 알고 있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아니, 약 복용 자체를 진지하게 생각해 본 사람은 얼마나 될까?적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 약을 먹으면 나아지겠지. 의사 선생님이 처방해주신 약이니까 믿어야지'라는 마음으로 무작정 복용할 것 같다. 만약 내가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입장이라면 앞뒤 생각하지 않고 무조건 먹었을 것이다.


수십 년간 진정한 의미의 신약은 소수에 불과했다. 말로는 신약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업계에서 말하는 미투 약이다. 이미 출시돼 성공을 거둔 약을 살짝 변형한 약 말이다. 어떻게 하면 기존의 약을 새롭게 수정해 수익성 높은 상품으로 만들지 눈에 불을 켜고 있다. (...) 이제 우리는 제약회사가 유리한 결과가 나온 연구만을 선별해 발표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p.424

생각보다 정신과 약이 출시되는 과정이 상업적이라 조금 놀랐다. <블루드림스>에서 정신질환은 원인을 밝히기 힘든 질병이라 약을 개발하는 데 은 어려움이 있다며 언급한다. 몸이 다치면 수술을 하고 증상에 맞는 약을 처방하면 되는데, 정신이 다치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치료해나가야 할 지 혼란스러울 따름이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정신과 의사들 또한 정신병의 원인을 명확히 알아내기 어렵다 한다.




머리가 뒤죽박죽 된 기분에다 혼란스러웠지만, 그럼에도 꽤 많은 걸 배웠다. 간접적으로나마 정신병의 고통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블루 드림스>는 정신과 약을 복용할 계획이 있는 사람, 지인 중에 정신과 약을 먹고 있는 사람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권한다. 약을 둘러싼 여러 이해관계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후손들이 우리 시대의 치료법을 보며 다 망상이고 옛날 사람들이 미개했다는 증거라고 생각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 그때까지 우리는 완벽하지 않은 캡슐을 두고 선택해야 한다. 선택지는 약만큼이나 한정적이다.


이번 기록은 많은 아쉬움을 남긴다. 다 쓰지 못한 내용은 내 무의식으로 넘겨버려야지. 다음에 다른 책을 읽을 때 영감으로 다가오길.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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