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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a H Sep 19. 2021

꼰대와 선배 그 사이에서 -

'나이'를 주제로 이야기 짓기

야! OO학번 집합!


갓 군대 전역한 복학생 위주로 미친 군기 문화가 있었다. 20살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하기 위해 대학에 입학했건만, 왜 내 등록금 내고 욕을 먹어야 하는지 의문이었다. 고작 20대 중후반 꼬꼬마들이 자기네들 '나이' 좀 더 먹었다고 엄한 애들을 갈궜다. 엎드려뻗쳐는 기본, 폭언과 욕설까지 학과가 미쳐도 단단히 미쳤었다. 다른 대학교에 다니는 언니는 '원래 예체능이 좀 빡세. 군기 문화 장난 아니야'라고 말하며 부조리에 분노하던 나를 달래줬다. 거의 90도 각도로 인사하고 (지금 생각하면 뭔 짓인가 싶다) 교수님보다 선배가 더 무서운 존재로 보였다. 다행히 나는 존재감이 별로 없는 편이라 '찍힘'은 당하지 않았다. 가엾게도 똑 부러지는 동기가 과 선배의 눈엣가시 같은 존재가 되었다. 말투가 차갑다는 이유로 특히 여자 선배들은 '싸가지없다' 라며 대놓고 면박을 줬다. 


이런 미친 문화를 거리낌 없이 받아들였다. 매번 반복되는 기합에 익숙해졌다. 그렇게 3학년, 4학년이 되면서 나 또한 꼰대화가 되었다. 내가 뭐라고, 내세울만한 실력도 없는 주제에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콧대를 세우며 다녔다. 트렌치코트를 딱 입고, 스카프를 두르며 커리어우먼인 척하며 과 생활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오글거린다.) 후배들이 날 대충 보고 지나가면 화가 났었다. '아니 라떼는 머리 조아리고 다녔는데, 세상 참 좋아졌네' 하면서 "너희 인사 안 해?"라고 혼냈다. (어휴 낯이 다 뜨겁다) 이후 대학원에서 내가 혼냈던 후배를 다시 만났는데. 그때 기억이 너무 미안해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존댓말을 썼다. 끝까지 OO학교 출신 같은 건 내세우지 않았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나이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나이는 숫자일 뿐 압도적인 실력과 성과가 더 중요하다는 걸 깨지고 혼나면서 느꼈다.


세계일주 급으로 여행을 해 본 건 아니지만, 여러 나라를 다니며 나이라는 개념의 장벽을 허물었다. 나와 가치관이 맞으면 누구든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이는 그저 머리카락 색깔 같은 신체적 특징 중 하나였다. 나보다 어려도 생각이 깊으면 어른이었다. 배울 점이 있는 사람이었다. 오랫동안 군기 문화에 익숙했던 나는 상대와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하는 게 처음에는 어색했다. 상대의 눈을 보고 이야기하기 너무 힘들었다. 항상 나이 많은 사람과 얘기할 때 눈을 깔고 바닥 먼지 세는 데 너무 길들여져 있었다. 그래도 외국인과 서툰 회화로 이야기하면서 상대의 눈을 보는 훈련을 했고, 지금은 약간 불편하지만 예전보다 나아졌다. 눈 동그랗게 뜨고 밝은 표정으로 K-어른들과 의견을 주고받는다. (사적에서) 이렇게 적극적인 태도로 이야기를 나누면 의외로 좋은 반응이 돌아왔다. 활기 있어 보인다고, 자신감 있어 보여서 보기 좋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전히 한국은 나이와 인격을 동일시한다. 이런 문화는 유교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절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여전히 군기 문화는 남아있고, 나이와 직급만으로 상대를 찍어 누른다. 효율이라는 미명 하에 '아랫사람'의 의견은 자동으로 묵살당한다. 회의시간에 리더가 '질문할 거 더 없나요?' 물으면 말단 직원은 절대 대답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인 '룰'이 존재한다. '감히 사회생활도 얼마 안 해본 녀석이, 어딜 나서?' 은연중에 표현하며 또다시 나이로 찍어 누른다. 그래도 요즘은 꼰대가 매우 핫한 이슈라 함부로 젊은 사람한테 위계질서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그런다. 오히려 어른들이 조언을 해 주려고 하면 '꼰대!!'라고 외치며 두 귀를 닫는 기현상이 벌어진다고 한다. 어쨌든, 한국의 나이 문제는 갈 길이 엄청 멀다. 유교 걸, 유교 보이들이 과연 '평등한 관계'를 받아들일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참고도서>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20634122

http://book.naver.com/bookdb/book_detail.nhn?bid=1649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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