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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a H Jul 11. 2020

독서가 주는 놀라운 힘

독서 후 글쓰기까지 하면 환상적

나는 어릴 때 책 읽는 것을 좋아했다. 6살 때였나, 어느 날 엄마가 카세트테이프와 책을 사 주셨다. 빠듯한 살림에 자식 교육에 관심이 있던 엄마는 당시 꽤나 큰돈을 들여 전집 세트를 마련하다. 운이 좋게도 난 엄마가 만족할 만큼 카세트 음원을 들으며 책을 고 또 읽었다.


그때 책이라는 것을 처음 접한 날이었다. 분야는 가리지 않았다. 전래동화, 역사, 탐험, 과학 등 다양한 책들을 탐독했다. 유치원을 갔다 오면 저녁밥을 먹기 전까지 라디오에 카세트를 넣고 성우가 들려주는 목소리에 따라 책을 눈으로 스캔했다. 글자는 잘 몰랐지만 음원의 효과음에 맞춰 책을 읽었다. 엄마 말로는 처음 언 그림만 보다가 어느 순간 책에 있는 글자를 보고 있더란다. 그 후 엄마는 내가 영재인 줄 알고 선행학습을 시켜봤지만 잘 따라 하지 못해 많이 답답해하셨다. 꿀밤을 많이 맞았다. 엄마는 '아니, 책을 많이 읽었으면 공부를 잘해야 하는 거 아니니? 왜 이렇게 문제를 못 풀어?!!'라며 나를 타박했지만, 어쩌겠나. 유치원생한테 초등학교 3학년 수준의 문제를 풀어라는데 잘 푸는 게 이상한 거 아닌가??


결국 초등학교 입학을 하고 나서야 이상한 선행학습은 그만두었고, 방과 후 피아노 학원만 다니기로 했다. 평소에는 학원 갔다가 동네 친구들이랑 강으로 논으로 밭으로 돌아다니다 가끔 놀만한 친구가 없을 때면 허름한 방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었다. 또 자식 교육에 열정이 많은 엄마는 위인전 전집을 샀고, 나는 또다시 엄마가 만족할 만큼 책을 여러 번 읽었다. 엄마가 강제적으로 시킨 건 절때 아니고 그냥 책 내용이 재밌어서 여러 번 읽었다. 글과 그림으로 만나는 위인의 삶이 신기했고 나와 문화권이 다른 사람들의 생활양식을 그림으로 관찰하며 상상하는 게 즐거웠다.


당시 우리 집은 워낙 낡아 TV나 냉장고 같은 전력 소모가 많은 가전제품에는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그럴 때마다 위인전 전집을 내 옆에 잔뜩 쌓아놓고 지루한 시간을 달래고자 읽고 또 읽었다. 재독 횟수가 20번은 족히 넘었을 것 같다. 28살인 지금 아직도 그 책의 내용과 그림이 어렴풋이 기억난다.


초등학교 때 도서관은 내가 가장 좋아했던 장소였다. 초등학교 6학년 때 10권이 넘는 소설 전집을 다 읽고, 1000페이지가 넘는 나니아 연대기를 읽었으며, 웬만한 학습 만화는 재미있게 읽었다. 특히 20권 정도 되는 시리즈 만화인 <그리스 로마 신화>는 거의 5번 정도 읽은 기억이 있다. 덕분에 지금까지 그리스 신이 누구이고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름만 부르면 다 알 지경이 되었다.


중학교 때는 성장소설과 <살아남기 시리즈> 만화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지만 고등학생 때부터 입시라는 쓸데없는 압박 때문에 책을 점점 놓게 되었고, 대학 때 책을 다시 쥐어보려 했지만 다른 재밌는 것들이 너무 많아 그러지 못했다. 졸업 후에도 간간히 책은 읽었지만 본격적으로 다시 제대로 독서하기 시작한 건 작년이었다. 책만 읽지 않았다. 책을 읽고 기록을 남기기 시작했다.


기록이 주는 힘은 놀라웠다. 처음에는 단순한 독후감 수준이었다면, 시간이 갈수록 스스로에게 던지는 질문이 생기고, 생각이 깊어지는 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작가의 주장에 의문을 품기도 했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외워서 얻은 가공된 지식이 아닌 내가 스스로 얻은 날것 그대로의 지식을 얻게 되었다. 마치 수렵채집인이 사냥감을 잡은 것처럼 말이다. 주제적으로 사고할 수 있는 한 개인으로 성장하는 기분이 들었다.


요즘은 모든 감각을 빼앗는 즐거운 것 (쾌락에 가까운)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더욱 독서하기 힘든 것 같다. 그러나 짧은 즐거움을 주는 것들은 나의 내면을 채우지 못한다. 오히려 그것을 다 즐기고 나면 공허한 마음만 들뿐이다. 하지만 독서는 온전히 단독자로서의 나와 마주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만들어 줄 것이고, 책에서 전하는 메시지가 나의 빈 마음을 채워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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