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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ana H Jul 18. 2020

13년 만에 다시 산을 찾게 된 이유

오랜만에 등산을 다녀왔다. 15살 눈 덮인 한라산 등반 이후 단 한 번도 산에 오르지 않았다. 추웠고, 다리는 아프고, 재미없고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요즘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책을 읽어서 그런지, 자연과 가까이하고 싶었고, 스스로 다시 산에 오르기를 결심했다.

 

아침 7시에 일어나 간단히 채비를 하고 동네 뒷산에 올랐다. 내가 생각한 등산은 산책 정도로 편하게 사색도 하며 조용한 시간을 보낼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온통 오르막에다가 여름이라 그런지 산모기가 많았다.그래도 천천히 올라가보았다. 숨이 턱끝까지 차오르기 시작했다. 그동안 도시생활에 찌든 내 몸과 마음을 씻기라도 하듯 땀이 비 오듯이 쏟아졌다. 일반적인 계단 오르기와는 차원이 달랐다. 넘어지지 않게 바위를 잘 딛고 다녀야 했고, 목적지에 맞게 가고 있는지 수시로 주위를 둘러보며 산을 타야 했다.

사진이 흔들렸다. 많이 힘들었나보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스스로의 한계를 테스트하는 것만 같았다. 산을 오르면서 내가 가진 모든 감각을 총동원했다. 벌레나 뱀 같은 동물이 나오는지, 혹여나 배설물을 밟는 건 아닌지 하면서 말이다. 스마트폰과 인터넷에 쏟았던 감각과는 차원이 다른 감각을 사용했다. 등산로를 오르면서 나뭇잎와 이름 모를 신기한 새, 이끼, 바닥에 기어가는 곤충을 관찰했다.

신기한 새. 도망갈까봐 카메라 줌을 최대로 한 상태로 찍음.

산 정상에 가는 도중 오래된 성곽을 마주했다. 아마 옛날 사람들이 적군이 오는지 보기 위해 만들었을 것이다. 성곽 너머 시내가 한눈에 다 보였다. "사람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했지만 그들이 만든 장소는 여전히 여기에 남아있다. 앞으로도 여기 남아 있을 것이다"라는 생각을 했다.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갔다. 다시 숨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숲이 뿜어내는 향기가 짙어졌다. 몸은 힘들었지만 정신적 고통은 전혀 들지 않았다. 가장 높은 장소에 올라갔다. 도시 전체가 한눈에 들어왔다. 산 너머 멀리 있는 곳도 보였다. 모든 게 장난감처럼 작아 보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작은 것들을 얻기 위해 괴로워하고, 비교하고, 정신없이 사는 걸까...." "더 가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가치를 추구하는 삶이란 어떤 삶인가?"라는 깊은 고민까지 하게 되었다. 별스럽다. 온갖 감상에 빠졌다.


조금 더 오랫동안 먼 거리를 보고 싶었다. 하지만 스크린에 익숙해진 내 눈은 저 너머의 풍경을 보기 힘들어했다. 눈에 낀 불순물들이 자꾸만 맑은 하늘을 가려댔다. 또 깨달았다. "그동안 가까운 것만 보고 살았구나. 조금 더 멀리 보며 살지 않았구나"라고. 도시가 주는 육체적 편안함에 빠져 살다 자연이 주는 신비로움을 한꺼번에 느끼고 나니, 집에 돌아오자마자 기절한 듯이 잠들었다.


왜 나이가 들면 산을 찾게 되는지 알 것 같다. 다음주에 또 등산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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