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폰은 죄가 없다. 진짜 문제는...

니르 이얄, 줄리 리 <초집중>

by Lana H
요즘 애들은 스마트폰에 빠져 살아... 어휴 나중에 뭐가 되려고 저러냐...


라며 한숨을 내쉬는 어른들이 많을 것이다. 겨우 28살 먹은 나도 "요즘 애들은 왜 저렇게 스마트폰에 갇혀 사냐... 라떼는 안 그랬는데.."라며 한탄한 적이 있었다. 과연 스마트폰 기기 때문에 아이들이 중독 수준으로 인터넷에 빠져 살까? 그렇지 않다. 과거 어른들은 텔레비전을 바보상자라 불렀다. 당시 어른들은 "요즘 젊은것들을 만날 테레비만 본다. 쯧쯧 말세다 말세..."라며 지금 상황과 비슷한 걱정을 늘어놓았다.



누군가는 이렇게 반문할 것이다. "아니, 그래도 우리 때는 지금처럼 심각하지 않았어요. 하루 종일 방구석에 처박혀 게임하는 친구는 지금과 달리 많지 않았으니까요" 어느 정도는 맞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디지털 기술 자체가 문제의 원인이 아니다. <초집중> 책을 살펴보면 신기술에 관한 우려는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의 대상이었다.인용구를 살펴보자.


인쇄기는 창녀다 -베네치아의 수도사 겸 필경사. 필리포 디 스트라타 (1474)-
(구텐베르크 인쇄혁명에 관한 반박으로 보인다)
교육화로 인해... 정신 이상이 증가 중, 아동의 뇌와 신경계를 소진시킬.. -의학 학술지(1883)-
(산업화 이후 등장한 정규 교육 시스템에 대한 우려)
학교 숙제를 하는 따분한 행위와 [라디오] 스피커를 듣는 '짜릿한 행위'에 대해 주의력을 나눠 쓰는 습관이 생겼다 -음악잡지 그래머폰 (1936)-
(당대 혁신 상품이었던 라디오 사용의 치명적 단점 언급)




내용을 읽어보니 어떤가? 지금과 비슷한 내용이 보이지 않는가? 인용구를 읽으면서 '신기술에 대한 걱정'은 인간의 본능일지도 모른다는 점을 알게 되었다. 많은 부모들은 자녀들이 스마트폰과 디지털기기에 중독될 것 같다는 걱정을 보인다. 그러나 <초집중>에서는 자녀들이 중독 형태의 "딴짓(원래 하고자 하는 일을 방해하는 요소)"에 빠지는 이유가 디지털 기기 외 다른 심리적 요인이 있음을 알린다.


자율성 박탈


선진국 형태 교육을 받은 아이들은 유년시절 내내 제약된 규율 속에 지낸다. 안전을 중요시하는 문화가 팽배한 탓에 스스로 선택하고 결정하는 권한이 줄어들게 되었다. 아이들은 일정 시간에 울리는 종과 어른의 처벌에 의해 내적 동기를 상실한다.


자신의 내적 동기를 상실한 아이들은 잃어버린 자율성을 찾기 위해 가상의 친구를 찾게 되고 디지털 기기를 통해 규율 속에 억압된 자아를 SNS에 표출한다. 온라인에서는 어른들의 통제가 없기 때문이다.


수많은 아이가 교실에서 의욕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는 명확히 알 수 있다. 관심 분야를 자율적으로 탐색하고 싶은 욕구가 충족되지 않기 때문이다.(중략) 오프라인과 달리 온라인에서는 아이들이 굉장한 자유를 누린다. 자율적으로 결정을 내리고 창의적인 문제 해결 전략을 실험할 수 있다. p.235


심리적 굶주림


아이들은 자신이 잘하는 일을 하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공교육의 표준화된 시험은 아이의 유능성(심리적 충족감)을 발견하는 데 한계가 있다. 학교에서 성적을 잘 받지 못한 아이는 자연스레 기가 죽고 자존감이 낮은 사람으로 성장한다.


그렇게 학교에서 아웃사이더로 분류된 아이는 어떻게든 자신의 유능성을 확인받으려 한다. 온라인이 그 역할을 한다. 끊임없는 SNS 활동, 게임, 많은 좋아요를 얻기 위해 무슨 행동이든 한다. 설령 그 행동이 도덕적으로 옳지 않을지라도... 아이는 자신만의 숙달, 발전, 성취, 성장을 얻고 싶어 한다.

교실에서 유능성을 못 느끼는 아이는 다른 곳에서라도 성장하고 발전하는 기분을 느끼고 싶어 한다. 이런 박탈감을 그냥 봐 넘길 리 없는 기업이 게임, 앱 같은 잠재적 딴짓 유발원을 '심리적 영양실조'의 치료제로 판매한다.(중략) 아이들이 학교에서 재미도, 가치도, 발전 가능성도 못 느끼는 활동에 시간을 쏟는 현실에서 '밤이면 유능성을 강하게 느낄 수 있는 활동에 빠져드는 건 당연한 현상'이다. p.237


결핍된 애착


아동범죄 위험을 우려해 보호자들은 아이를 밖에 함부로 돌아다니지 못하게 한다. 항상 부모의 동행이 있어야 하고 아이를 외출시키려면 상대편 부모와 미리 약속을 잡아놔야만 가능하다. 자녀 혼자 밖에 가야 할 일이 생기면 반드시 부모와 직접적으로 통화가 되는 연락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아이들은 어린 시절 부모의 구속 없이 또래와 어울리는 시간을 통해 사회성을 형성한다. 또한 친구들과 소통하며 대인관계 맺는 법을 배운다. 그 속에서 친구들과 끈끈한 애착형성을 한다. 이런 경험을 하지 못한 아이들은 결핍된 애착을 충족시키기 위해 디지털 가상세계를 이용한다.

통계적으로 보면 요즘 애들이 미국 역사상 가장 안전한 세대인데도 그런 우려(아동범죄)의 목소리가 나온다. 그러나 보니 유감스럽게도 많은 아이가 밖에 잘 나가지 않고 체계가 잡힌 프로그램에만 참여하며 디지털 기술로 친구를 찾고 어울릴 수밖에 없다. p.238
우리 사회는 아이들을 위험에서 지키고 교육하려면 아이들이 가장 행복해하는 활동을 금하고 그들이 수시로 어른의 지도와 평가를 받는 환경에 더욱더 오래 있게 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런 환경은 태생적으로 불안과 우울을 조장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p.239



<초집중>을 읽으며 학원강사를 하던 때가 생각났다. 학원 복도에서 삼삼오오 모여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아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복도에서 게임을 하면 안 된다고 많이 혼냈다. 이 부분을 읽으며 '그때 내가 이런 시대적 배경이 있다는 걸 알았더라면... 조금이라도 아이들 마음을 이해하고 스마트폰 사용해 대해 이야기를 나눌수 있었을텐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또 초등, 중학생인 사촌동생이 왜 그렇게 스마트폰에 살다시피 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이 책을 통해 아이들의 내면을 조금이나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매일 어른들의 통제를 받는 그런 삶, 학교, 학원, 숙제, 공부하라는 부모님 잔소리... 아이들이 겪는 삶이 안쓰럽게 느껴진다. 학교에서 공부를 못한다고 사회에서 실패하는 게 아닌데, 어른들의 잘못된 가치관이 아이들을 망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지금 상황에서 서평 쓴 내용을 실천할 방법은 없는지..고민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