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0시간 또는 2년의 시간을 앞으로 어떻게 살아갈지 생각하는 데 쓰는 사람은
분명 뭔가 의미 있는 삶을 만들어낼 것이다.
<타이탄의 도구들> 中 Will MacAskill
4,000시간이 일하는 시간으로 따지면 2년에 해당한다고 한다.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할지, 내 삶의 목적은 무엇인지를 생각하는 데 4,000시간 정도 쓰는 건 충분히 타당하다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인걸까, 설득력 있게 들렸다. 타이탄의 도구들을 읽으며 여러 가지를 삶에 적용했는데 그 중 4,000시간을 '나를 돌아보고 찾는 시간' 으로 정하였다.
한 업계에서 사회생활 20년을 넘게 하면서 나를 온전히 제대로 쉬게 해준적이 있었는지를 생각해본 결과 없었기에 지금 나에게 가장 필요한 시간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잠시 일을 멈추는 것에 대해 수입이 없어질 것에 대한 경제적 불안감이 들었지만, 지금이 아니라면 다시 쓸 수 없는 시간이기에 적극적으로 나를 찾는 시간으로 쓰기로 했다.
안식년(sabbatical year)은 7년마다 1년씩 쉬는 해. 재충전의 기회를 갖도록 하기 위하여 1년 정도씩 주는 휴가.
'안식년' 제도는 1차 의료기관(의원급)에는 거의 없었는데, 최근 규모가 있는 곳에서 5년 이상 장기근속자에게 1개월 또는 2주 유급 휴가를 주는 등 휴식이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1년의 휴가는 아니지만 의료 조직 특성상 이런 제도가 생겨나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발전이고 변화라고 볼 수 있다.
안식년 제도가 있는 병의원에 근무해 본 적은 없지만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일상 속에서 숨 쉴 구멍이 생기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 앞으로 좋은 조직문화를 만들어가는데 이보다 더 좋은 복지는 없을 거라고 생각된다.
나는 스스로 선택한 안식년, 갭이어, 휴식 등 다양한 수식을 붙여가며 의미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잠시 멈춤'을 선택했다. 내가 만들고 경험한 워커홀릭의 세상은 '열정' 이라는 이름으로 숨 쉴 구멍 없이 일만 하는 세상속으로 몰아 넣는 게 당연한 것 처럼 사는 세상이었다. 그렇게 살아야 성공하는 사람이 된 것 처럼.
이제야 숨을 제대로 쉬고 있다는 기분이 든다.
워커홀릭의 세계에서 빠져 나와 보니 세상은 생각보다 아름답고 여유 있었다.
그 여유 속에서 나는 또 다른 무언가를 계획하고 살아가고 있지만 그 계획이 내가 스스로 만든 계획이라는 점이 다르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과 계획하고 결과물에 자가피드백을 하며 새로운 것 들을 창조해나가는 것들. 책임도 내가 지고 만족감도 나 스스로 얻는 일이다.
4,000시간 중에 올해 2,000시간을 스스로를 관찰하고 발견하는 시간으로 보내고 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어떻게 변화하고 싶어하는지 무엇을 원하는 지에 알아차리는 게 스스로에게 주는 올해 미션이다. 5년, 10년 후의 원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그게 '무엇' 인지 찾아나서야 한다.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생각하는 데 얼마나 시간을 쓰고 있을까?
베스트셀러에 오른 수 많은 책 들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조언에는 모닝페이지, 5분 저널, 아침 일기 등을 강력하게 추천한다. 추천한 이 도구들은 생각하는 훈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한다. 20대에는 매년 새해가 되면 다이어리를 구매하고 일기를 쓰곤 했었는데, 30대가 된 이후로 바쁘다는 핑계로 어느 순간 기록하지 않았다. 다이어리를 꾸준히 썼다면 어땠을까.
'지금 시작해도 늦지 않았다'를 외치며 최근에는 '생각하고 기록하는 습관'을 가지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10년 넘게 쓰지 않던 글을 쓴다는 게 쉽지 않았고, 평소 일을 하며 글을 쓰긴 하지만 업무용 글쓰기여서 딱딱하기만 하다. 부드럽게 내면의 소리를 솔직하게 쓸 수 있는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그 과정에서 처음에는 내면에서 부정적인 목소리가 들렸다.
'모닝 페이지를 쓰면 창조성을 경험한다고 하는데 글에는 온통 반성뿐인데?'
'A4에 세 쪽을 쓰라고 하는데 아침에 글씨도 잘 안 써지고, 컴퓨터로 쓰는 게 편한데'
'감사일기, 반성일기, 그냥 글쓰기.. 등 뭐가 다른걸까?'
'계속 쓰기만 하면 된다는 데 정말 그 말이 맞을까'
'이렇게 계속 쓰면 의미 있는 시간이 만들어지는 게 맞을까'
온통 의문의 질문들과 함께 의구심이 들었지만 '쓰기' 를 멈추지 않았다. 끝까지 해보자는 마음으로 글쓰기에 도움 되는 책과 세미나 등에 시간과 비용을 투자해서 끊임없이 배웠다.
'생각하는 법', '기록하는 법'도 배워야 하는 거였다. 다행히도 약 10개월 정도가 지나자 쓰는 습관을 통해 잠재되어 있던 나의 생각들을 글로 끄집어 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여전히 쓴 글을 발행하는 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린다.
뭐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면 결과물은 얻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늘 포기 보다
끈기 있게 버티는 쪽을 선택한다.
<타이탄의 도구들> 을 읽고 타이탄들의 조언에 따라 브런치에 글을 쓰고 작가의 서랍에 저장하고, 블로그에도 포스팅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세상에 마법은 없다.
스티븐 잡스가 말한 것 처럼 점들이 연결되어 하나의 선이 되는 것, 쥴리아 카메론이 말한 것처럼 동시성이 일어나고 있을 뿐이다. 지금까지 내가 꾸준히 노력하며 해왔던 것 들이 조금씩 연결되며 내가 원하던 일들이 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
2,000시간을 다 쓰기도 전에 올해 가장 행복한 일이 생겼는데, 바로 브런치 작가에 선정된 일이다. 올해 초 심난한 마음을 뒤로 하고 글쓰기에 집중하며 작가의 서랍에 차곡차곡 내 생각을 모았다. 6개월이 지난 후 작가에 도전했고 선정되고 나서 글을 수정하며 업로드 중이다. 나에게 뜻깊은 2023년에 행복하고 소중한 추억을 만들어 준 브런치에 감사하다.
'브런치 작가 선정' 된 것 보다 더 중요한 건 지속적으로 글을 발행하는 것이라고 들었다.
올해 안식년을 통해 기존에 살고 있던 정신없이 바쁘던 삶의 일부를 도려내고, 앞으로 내가 삶을 온전하게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방향을 잡아나가게 되었고,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글쓰기는 빼놓을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직은 글쓰기의 방향성을 잡는 게 어렵다. 브런치 선정이 된 건 나의 일로 된 건데 나의 일상을 쓰고 싶어진다. 내가 좋아하고 나를 살아가게 만드는 것들, 요가와 여행에 대한 이야기도 쓰고 싶고 나의 기분과 감정들을 써내려가고 싶다.
일로 선정이 되면 일만 써야 할까?
아니면 일과 일상을 같이 써도 되는 걸까?
그게 맞는지 아닌지 모르겠어서 글을 저장만 해두고, 발행 버튼은 아직 못 누르고 있다.
먼저 선행되어야 할 것은 올 한해 2000시간 동안 내가 투입한 시간과 비용에 대한 아웃풋이다. 가지고 있던 것들을 내려놓는 게 쉽지 않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불필요한 욕심이 줄어들기 시작했고, 내가 가진 것에 만족하며 어느 방향으로 살아가야 할 지 조금씩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도 여전히 갈팡질팡한 마음 속에서 2024년을 준비하고 있지만 올해 도전했던 나의 기억들을 차곡차곡 정리해서 브런치에 쓸 예정이다.
내가 만들고 살아온 2000시간, 잃은 것과 얻은 것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