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물의 도시에서 펼쳐지는 각국의 예술 세레모니
-2013년도에 써진 글입니다.
일렁이는 물결에 가을 햇빛이 총총히 바스러지며 빛난다. 그 고요하고도 평화로운 모습은 베니스를 몇 번이던 방문하고 싶게 만드는 마법의 주문이다. 1년여 만에 다시 찾은 베니스는 언제나 그렇듯 굽이굽이 흐르는 운하와 평화롭게 떠다니는 곤돌라, 그리고 2년에 한 번씩 열리는 세계 미술인들의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가 있었다.
국제 미술 전시를 지칭하는 '비엔날레'의 형식은 오늘날 리버풀, 상파울루, 베를린, 시드니 그리고 한국에서는 광주와 부산에 열리고 있는데 그중 베니스 비엔날레는 1895년 세계 최초로 시작된 이래, 가장 영향력 있는 비엔날레로 손꼽힌다.
온 섬 전역을 떠들썩하게 만드는 세계 미술인의 축제, 그리고 베니스의 축제이다. 이 시기엔 미술 관계자들과 기자들, 그리고 유명 작가들과 컬렉터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 뜨거운 열기를 뽐내는데 각별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베니스 시민들과 유럽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 미래의 작가를 꿈꾸며 반짝이는 눈으로 작품을 샅샅이 훑는 미술 학도들까지 온 예술인들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번에 나는 학교에서 제공하는 좋은 기회로 함께 공부하는 친구들과 매우 저렴한 가격으로 베니스를 찾았는데 이것 또한 유럽에서 미술 공부를 계속하게 만드는 원동력인 것 같다.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은 크게 세 가지로 구성되는데 국가별로 대표되는 건물이 있는 지아르데니아와 이탈리아 관인 파비용 이탈리안, 그리고 젊고 파격적인 현대미술품을 전시하는 아르세날레 전이 있다.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엔 총 88 국가가 참여하였는데 독립된 건물을 가지고 있는 26개국을 제외하고 나머지는 베니스 시내의 전시 장소를 빌려 참여한다. 대한민국은 베니스 비엔날레가 100주년을 기념하던 1995년 26번째 국가관으로 건물이 세워졌는데 한국을 마지막으로 더 이상의 국가관은 세워지지 않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이유는 국가관들이 모여있는 카스텔루 공원의 부지 문제인데 실제로 남아있는 자리가 거의 없으므로 마지막으로 자리를 차지한 한국은 운이 아주 좋았었다. 카스텔루 공원 내의 아시아 국가는 단 두 곳, 한국과 일본뿐이고 중국, 이탈리아, 남아프리카, 아랍 등의 24개국은 아르세날레 전에 위치하고 있다.
베니스에 도착한 첫째 날, 그 전날 프랑스에서부터 18시간 버스를 타고 도착한 피로를 말끔히 벗어던지게 해 줄 만큼 멋진 날씨와 풍경이었다. 베니스 섬 곳곳에 붙어있는 비엔날레 홍보 포스터와 표식들은 가슴을 뛰게 하였다. 먼저 나는 상마르코 광장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 아르세날레전을 방문하기로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이번 비엔날레의 전시 디렉터는 역사상 가장 젊은 전시 책임자란 수식어의 마시밀리아노 지아노(Massimiliano Gioni)인데 그는 2010년 광주 비엔날레의 기획자를 맡기도 하는 등 뛰어난 안목과 능력을 인정받았던지라 그와 현대 미술의 파격성의 만남이 궁금하였다. 실제로 광주 비엔날레에 초대되었던 많은 작가들이 베니스 비엔날레에도 비슷한 구성과 작가 진으로 참여하였기 때문에 만일 광주 비엔날레를 이미 다녀간 경험이 있다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그것을 연상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전쟁처럼 몰려드는 광대한 양의 작품의 홍수 속에서 정신을 차리기란 쉽지 않았는데 현대 작품의 난해함과 생경함 속에 고립되지 않도록 열심히 헤엄쳐 다녔다. 그중, 가장 눈에 띄었던 작가는 2010년 광주 비엔날레에도 초대되었던 폴란드 작가 파월 알타 메르(Pawel Althamer)의 '베네치아인'인데 넓은 운동장을 연상시키는 홀에 띄엄띄엄 각기 다른 포즈로 그 앙상한, 혹 넝마와 같은 뼈와 근육으로 이루어진 집단을 마주한다면 그 괴기스러움에 압도되고 만다. 실제 사람 크기의 조각들은 모두 '제대로 갖추어 있지 않은 몸'을 가지고 있는데 그것과는 상반되는 평화로운 표정이 오히려 괴이하게 느껴졌다.
몸속이 모두 비어있고 녹아내리지만 표정만은 평화로운 그것은 현대인의 드러내지 못하고 있는 깊숙한 무의식의 고통을 형상화하는 것 같았고 다양한 연령층을 나타내는 그 얼굴의 본은 실제 작가의 지인들이란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딘가 실제 존재하고 있는 사람들이란 생각에 작가의 의도가 더욱 명확하게 와닿았다.
그 웅장한 홀을 지나자 정신을 차릴 새도 없이 현대 미술계의 악동 폴 매카시(Paul Mccarthy)의 거대한 조각이 나를 맞이하였다. 그동안 방대한 양의 다양한 장르의 전시를 선보인 폴 매카시는 항상 논란의 중심에 있는데 자해를 하는 퍼포먼스와 동물과 성행위를 하는 대통령, 절단된 신체 등 폭력적이고 무자비하게 걸러지지 않은 그의 충격적인 작업 방식 때문이다. 그는 실험 정신을 갖고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을 해왔는데 이번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된 그의 작품은 '아이들의 해부학 교육 (children's Anatomical Educational Flgure.ca) 1990 '이라는 작품이다.
마치 어린이 만화 프로에 나올법한 큰 눈망울을 가진 빙그레 웃고 있는 인형의 형태인데 대신 그런 교육적인 인형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바로 배가 갈라져 속의 내부 장기들을 쏟아내고 있단 점이다. 시커먼 뱃속과 쏟아져 나와 있는 장기들, 빙그레 웃는 그 얼굴이 대조된다.
이것은 속과 겉이 다른 현대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어른들에 대한 풍자인데 폴 매카시의 다른 작품들보다는 덜 폭력적인 성향을 띠고 있었다. 이밖에도 신체의 변형이나 몸에 대한 작업을 한 작가로는 구체관절 인형을 기괴하게 변형시킴으로 유명한 한스 벨머(Hans Bellmer)의 드로잉과 성경의 창세기 내용을 새롭게 각색한 작품을 낸 미국의 로버트 크럼(R. Crumb), 올해 비엔날레 황금사자상 평생 공로상을 받은 마리아 라스니 그(Maria Lassnig)의 작품 등이 있었다.
수많은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빠져나온 나는 눈앞의 하늘빛 바다를 발견하였고 또한 그 눈부신 바다와 맞닿은 곳에 위치한 마크 퀸(Marc Quinn)의 11m 크기의 거대한 조각 작품을 보게 되었다. 'Breath' 란 이름의 이 작품은 당시 임신 8개월이던 앨리슨 래퍼(Alison Lapper)의 누드 조각 작품인데 이 여성은 팔이 없는 영국의 구족 화가이다. 팔이 없고 다리도 기형인 앨리슨의 조각은 처음 공개되었을 때 상당한 논란에 휩싸였는데, 그런 논란은 잠시 뒤로 하고 생명을 품고 있는 여성의 몸은 얼마나 아름다운가에 대해 초점을 맞추었으면 한다.
한 가지 재미난 사실은 다음날 우연히 그 앞을 지나게 되었을 때 조각은 감쪽같이 철거된 상태였는데 알고 보니 산 조르조 마조레 성당 앞에 설치된 이 작품에 대해 천주교 신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생겼고 대주교 또한 맘에 들어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조각이 철거된 자세한 내막에 대해선 그 사정을 속속들이 알 수는 없지만, 생존과 아름다움, 잉태와 죽음에 대해 말하고 있는 작품의 의도가 현실에 부딪쳤다는 점에서 쓸쓸함을 느끼게 되었다. 돌아오는 길, 베니스의 석양은 다음날 관람하게 될 카스텔루 공원 내의 국가관에 대한 기대감과 첫째 날 일정의 피곤함이 뒤엉킨 나의 마음을 알아주듯 아름다웠고 그렇게 무사히 하루가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