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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isung 기이성 Sep 05. 2023

09. 프랑스인 친구를 처음 사귀다-2

동화 속 같은 그녀의 집

처음으로 정식 초대받은 프랑스인. 그녀의 집은 리옹 시내에 있는 전형적인 프랑스인 집이었다. 안에 들어가 보니 잡지에서나 보던 환상적인 공간이다. 너무 예쁜 고가구들과 빈티지 찻잔, 인형들과 케이크들. 눈이 휘둥그레질만큼 예쁜 프랑스 동화 속 장면 같은 집이었다.


그때의 나의 불어 실력은 많이 늘긴 했지만 이렇게 사적인 관계는 처음이다 보니 햄버거를 주문할 때와 마찬가지인 실수를 하였다.


"내가 화장실에 갈 수 있게 당신이 허락해 줄 수 있나요?"


정중한 불어. 하지만 너무 웃긴 말투. 그녀는 빙그레 웃으며 화장실을 안내해 주었고 친절하게 교정해 주었다.

집 근처 공원을 거닐다 발견한 무리들. 취미로 코스츔을 하는 걸까요? 아니면 배우들일까요. 재미있는건 첫만남에 에밀리가 입은 원피스가 이런 느낌이었답니다. 


워낙에도 말수가 없던지라 무슨 말을 횡설수설했는지 기억도 나질 않는다. 다만 그녀의 고장 난 여러 인형들을 보았고 내가 고쳐줄 수 있는 것들을 분리했다. 그녀는 나에게 열심히 설명해 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일 뿐.


답례로 그녀가 나에게 어떤 예술가의 화보집을 주었는데.. 너무 멋지고 값진 선물이라 당시에도 놀랐던 기억이 난다. 에밀리와는 그 뒤에도 종종 만났다. 그녀는 내가 프랑스 미술 대학을 가려고 하는 것을 알고 입시 준비를 도와주겠다 하였는데, 프랑스어로 적힌 내 작품 소개글을 교정해 주었고 발표 연습을 도와주었다. 


나에게는 아주 훌륭한 서포트였는데 원어민이 그렇게 정성스레 하나하나 말을 교정해 주고 발표 연습을 봐주는 것은 흔한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원어민이라고 쉬운 일도 아니어서 그녀의 수고로움이 감사했다. 


당시 나는 몇 개의 그림 작업과 오브제 작업, 사진, 그리고 비디오 작업등이 있었는데 작품 설명 등을 모두 돈을 주고 번역을 맡긴 터였다. 하지만 한 가지 큰 오류가 있었는데 내 그림 작업을 보지 않고 글만 보고 번역을 받았기 때문에 여기저기 내가 원하는 뉘앙스가 아닌 달라진 문장들이 더러 있었다. 더구나 실제 말에는 쓰이지 않는 문어체의 말투여서 교정을 통해 자연스럽게 발표하는 법을 연습하였다. 


나는 그녀의 앞에서 몇 번이고 발표 연습을 하였다. 

하지만 나는 당시 자신감이 많이 없고 너무나 소심했다.. 그녀의 친절한 연락과 도움이 어느새 불어를 써야 한다는 부담감으로 나를 덮쳐왔고 점차 연락을 피하게 되었다.  내가 실제 시험을 보러 다니던 날, 내가 제일가고 싶었던 학교를 시험칠 때 그녀는 문자로 응원을 해주었지만 당시 너무 떨리고 과부하 상태였던지라 답을 하지 못하였다. 시험을 보러 한두 달 동안은 프랑스 전국 방방곡곡을 이동하였고 매일매일 발표 연습에 지쳐 있었다. 


그녀는 나를 친구로 생각했을 텐데.


답장을 하지 못한 채 시험과 발표의 혼돈 속에서 정신을 차려보니 몇 달이 지나있었고 합격 후 한국으로 놀러 가고 이후 지역을 이동하게 되면서 자연스레 그녀가 잊혀갔다. 처음 사귄 프랑스인 친구는 그렇게 나의 소심함과 무례함으로 멀어지고 말았다. 


*여러분들은 이런 무례를 하지 않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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