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6월은 한국의 그것과는 좀 다르다. 후덥지근하지도, 그렇다고 마냥 좋지도 않은, 하루에도 몇 번씩 봄비가 내리는 이곳. 청량 빛의 맑은 하늘과 우중충한 회색빛이 동시에 있는 프랑스의 봄은 그야말로 야누스다. 이러한 프랑스 날씨처럼 프랑스 미술 학교의 6월도 그리 순탄하지는 않다. 바로 3년, 5년간의 미술 학도로서의 공부를 마치고 인정받는 졸업 심사가 있기 때문이다. 학사 과정의 3학년(DNAP)과 석사 과정의 5학년(DNSEP) 졸업 시험이 이루어지는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서 박수와 눈물이 뒤섞인 그곳을 찾았다.
프랑스의 마지막 학년은 오직 졸업 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달려가는 시간이라도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힘든 기간이다. 일주일에 2번씩 이루어지는 컨퍼런스와 단체전 그리고 주기적으로 이루어지는 담당 교수와의 면담 등 몸이 두 개여도 부족할 정도로 빠르고 바쁘게 시간은 지나고 그것과는 별개로 개인 작업의 성과를 올려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프랑스 학생들에게도 커다란 고민거리이다. 자신만의 개성이 드러난 작품을 하는 일이 쉬운 일은 아닐 터, 그 때문에 그들은 1학년 때부터 순수 미술, 디자인, 건축 등 유형에 얽매이지 않는 작업과 실패를 하며 자신에게 맞는 방향성을 스스로 만들어 가고 또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는다. 이러한 과정을 3년, 5년 겪으면서 그동안의 실패 또한 성장의 밑거름이 되어 학생의 재산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학생 곁에서 스스로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인도해주고 이끌어주는 역할이 바로 교수이다. 프랑스 미술 대학 만의 특별함이라면 바로 교수와의 면담 시간을 꼽을 수 있는데 정해진 규칙 없이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교수와의 면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학교 입구에 빽빽이 붙어있는 알림판에 면담을 원하는 교수의 이름과 시간을 적으면 담당 교수가 아니라도 누구든지 면담을 할 수 있다.
면담은 학교 어디서든 이루어지는 데 함께 학교 정원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고 작업에 대한 것뿐만이 아닌 친밀한 대화도 오고 간다. 그 때문에 졸업 심사에서 합격 여부를 결정하는 것은 담당 교수가 아닌 초청된 외부 학교 관계자들이다. 졸업 심사에서 중요한 것은 물론 작품의 타당성과 완성도, 창의성이지만 더불어 학생 개인의 가능성과 성실성 그리고 다른 이와의 소통 또한 중요하게 생각한다. 교수와의 면담이 원활하지 않은 경우, 학교에 마련된 작업실이 아닌 개인 공간에서 한 작업을 중간과정 없이 바로 완성된 형태로 가져오는 경우 아무리 뛰어난 작업이라 할지라도 좋은 점수를 얻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하나의 작품을 할 때 그것이 탄생하게 된 계기, 영향을 받은 현대 작가, 처음 아이디어를 작성한 작업 노트와 중간마다 교수와의 면담을 통해 발전 부분을 보여주는 아이디어 스케치 등이 작품을 더욱 풍부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발전 단계를 보며 학생으로서의 성실함을 보기도 한다. 담당 교수는 실제 합격 당락을 결정하지는 않지만, 심사 과정에서 영향력 있는 발언을 할 수 있으므로 그간의 작업 과정을 보여주는 면담이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졸업 심사가 시작되고 학생들은 각자 준비된 방에서 45분간의 프레젠테이션 시간을 가진다. 교수들은 담당교수 1명, 초청 교수 2명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학교 곳곳에 설치된 학생들의 작업실을 찾는다. 정답은 없으므로 학생들은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지난 3년간의 열매를 뽐내는데 각기 다른 재능을 보는 그 재미가 쏠쏠하다.
또한, 이때만큼은 프로의 마음으로 전시를 책임져야 하므로 아침부터 나와 모두 더러운 아틀리에의 페인트칠을 다시 하고 못질을 하며 전시 공간을 만들고 꼼꼼하게 자신의 발표 내용을 상기한다. 심사가 이루어지는 그 현장에 있노라면 그 숨 막히는 긴장감 속에 나조차도 얼게 되는데 특히 외국인들에겐 언어의 장벽이 있어 더욱 힘들다. 외국인이라고 특별한 혜택을 주지는 않기 때문에 다른 프랑스인 학생들과 동등한 입장에서 심사를 받는다. 그 때문에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높은 불어 실력이다.
학생들은 45분간의 짧지 않은 시간을 스스로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작품을 하게 된 타당성 있는 이유와 설득력, 예술에 대한 자신만의 깊이 있는 성찰을 조리 있게 발표해야 한다. 심사 결과는 당일 바로 나오는데, 학생의 능력에 따라 단계로 나누어진다. 트레비앙(tres bien 만점을 의미), 펠리씨따씨옹(felicitation 심사로 줄 수 있는 최고 점수), 비앙(bien), 아쎄비앙(assez bien), 그리고 빠싸블(passable)이 있다. 하루 일정의 심사가 끝나면 학생들은 삼삼오오 모여 결과를 듣기 위해 기다리는 데 한 명씩 결과를 받을 때마다 함께 기뻐하며 박수를 쳐주며 축하해주기도 하고 좋지 않은 결과를 받아 눈물을 흘리는 동료가 있을 땐 위로를 해주기도 한다.
펠리씨따씨옹을 받는다면 그것은 최고 점수를 의미하기 때문에 전체 학생 중 10% 정도만이 그 기쁨을 누릴 수 있다. 매년, 학년 시험을 통해 1/3의 학생들이 걸러지고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도 엄격한 졸업 시험을 거쳐야 비로소 졸업장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학생들은 자신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온 힘을 기울인다. 미술 학도로서 한 명의 미술 작가가 되기까지, 프랑스 미술 학교에서는 이런 과정을 거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