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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iisung 기이성 Aug 12. 2023

프랑스 국립 미술 학교 탐방

프랑스 미술 학교의 수업 내용과 작업실 구경

2013~2014 : 월간 전시 가이드에 기재된 칼럼글입니다.


프랑스의 예술 학교 보자르는 일 년에 한 번 그들의 문을 개방해  미래의 예술가 지망생들과 유서 깊고 아름다운 프랑스 건축 사이사이를 산책하고자 하는 일반인들을 맞이한다. 학교생활을 한 지 3년이 되어가는 나도 역시 설레 이는 마음으로, 다시 한번 유학생활의 의미를 다지는 마음으로 학교 구석구석을 돌아본다.       

                                                             

학교 홀에 붙어있는 종이들에 내가 면담하고 싶은 교수님의 이름과 만날 시간, 장소를 쓰면 된다.
1학년 작업실

길 건너에 있는 디자인 건물을 지나 정문에 도착하면 제일 먼저 커다란 원형 모양의 탑이 보인다. 온통 유리로 이루어져 안이 훤히 보이는 이곳은 1학년 전용 아뜰리에이고 맨 꼭대기 층은 아이러니하게도 누드 수업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작은 홀에 삼삼오오 모여 커피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친구들을 지나 까마득한 계단을 오르면 비로소 풋풋한 1학년들의 공간이 펼쳐진다.                          


무엇이던 시도하고 싶고 겁이 없어 과감하고 패기 넘치는 작업들이 큰 교실 한가득 빼곡했다. 내가 1학년 때는 정육점에서 사 온 온갖 고기를 다부지게 쌓아 올린 탑이 며칠이고 버티고 있었는데.. 1학년의 다듬어지지 않은 작업들을 마주하고 있으니 3년 전 그 날인 것처럼 마음이 설레 인다. 1학년 때는 각자의 자리가 주어지기 때문에 걱정이 없지만 2, 3학년은 따로 정해준 개인 공간이 없기 때문에 새 학기가 시작되면 모두 약속이나 한 듯 좋은 자리를 차지하려고 일찍부터 학교에 나와 자기 이름이 적힌 종이를 원하는 자리에 붙여놓는다. 행여나 누가 종이를 뗄까 꼼꼼히 테이프로 붙이거나 아예 책상에 본인의 이름을 크게 매직으로 적어 놓는다. 학생 수만큼 작업할 수 있는 공간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늦게 나오게 되면 자리도 못 얻고 자신의 게으름을 탓할 수밖에... 막 2학년에 올라갔을 때 개강 첫날, 한국에서처럼 당연하게 생각했다가 뒤통수 맞고 한자리도 차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다른 점은 또 있다. 바로 ‘야작’이다. 저녁 7시가 되면 학교 문을 모두 폐쇄하기 때문에 한국에서처럼 친구들과 야작을 하며 밤새워 그림을 그리고 작업실에 쪼그려 누워 새우잠을 자던 추억은 프랑스에서는 절대 불가능이다.                                                               

 이렇게 학교 내 전시실에서 전시도 한다.

아뜰리에를 지나 계단을 거쳐 복도로 나왔다. 몇몇의 교수들이 지나가며 학생들과 장난도 치고 이야기도 나누고 있었다. 내가 게시판을 사진 찍는 걸 보더니 담당 교수가 빙그레 웃으며 장난스러운 포즈를 취했다. 아쉽게 사진엔 찍히지 않았지만. 이렇게 교수와 제자 간에 스스럼이 없다는 것도 프랑스 학교만의 특징일까? 


수많은 종이가 붙어있는 학교 게시판을 마주한다. 처음 프랑스 미술 학교에 들어왔을 때 이런 시스템은 한국에서 나고 자라 한국 미술만을 접했던 나에겐 신선한 충격이었다. 각각의 종이엔 교수의 이름이 적혀있다. 작업을 하다 조언을 듣고 싶다면 학생이 원하는 시간에 원하는 교수를 선택해 해당 종이에 자신의 이름과 시간, 만날 장소 등을 적는다. 그럼 그 시간에 만나 일대일 조언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내 담당 교수가 아니어도, 강의를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어도 그 교수에게 내 작업을 보여주고 조언을 얻고 싶다면 누구에게나 기회가 있는 것이다. 이 것은 프랑스 미술 학교만의 특별한 시스템인 것 같다. 본인이 한 것만큼 조언을 받을 수 있고 질이 달라지니 학생들 모두 학점이나 시험 때문이 아닌 본인의 의지로 본인의 작업 질을 향상하기 위해 열심히 한다. 


복도를 지나 홀에 다다르면 유리창 밖으로 탁 트인 공원을 만난다. 날씨 좋은 날이면 모두 그 공원 잔디밭에 누워 점심도 먹고 공놀이도 하고 혹은 하염없이 누워 한가로움을 만끽한다. 공원 끝 굽이굽이 있는 길을 지나면 프랑스 학교에서 공부하며 가장 특별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바로 테크니시앙(technicien)이다. 처음 다루 어보는 재료들을 어떻게 요리해야 맛있는 작품이 나올까. 교수가 어떤 요리를 하는 게 좋다 하는 길잡이 역할이라면 요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사람들이 바로 테크니 시앙들이다. 용접, 납땜, 나무, 카메라와 조명, 컴퓨터, 판화 등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항상 학교에 있으며 막막한 학생들이 찾아오는 것을 반겨준다.  못 만드는 것이 없고 모르는 것이 없는 그들과 친해지면 좋은 재료를 살 수 있는 화방이나 항상 바글바글한 판화 작업실이 비는 시간 등 좋은 팁을 많이 얻을 수 있다.

                                                                                           

반나절 동안의 짧은 학교 탐방을 마치니 어둑한 앙제의 하늘에서 빗방울이 똑똑 떨어졌다. 아쉬운 발걸음을 뒤로하고 돌아가는 길에 그동안 눈에 띄지 않았던 좁은 골목 안 멋진 페인팅이 그려진 벽을 발견했다. 이곳이 미술 학교임을 알려주는 지표처럼, 자유롭게 낙서된 벽을 보며 이것이 마치 정해진 틀은 없지만 견고한 개성을 지닌 프랑스의 미술학교 같다.. 란 생각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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