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의 겨울, 유학시절을 돌아보며

다채로운 자연과 계절, 환경이 이렇게 삶의 질에 중요한 요소일 줄이야

by 봄봄

이번 주 내내 뉴스에서는 주말에 독일 전역에 폭설이 예상된다며 대대적인 기상예보를 내놓았다.

어제인 토요일 저녁까지도 눈은 커녕 약간의 비에 바람만 불길래 역시 NRW은 눈은 안오려나보다,,,하고 잠 들었는데 오늘 아침 일어나보니 새벽부터 쌓인 눈을 치우는 차들이 북적이고, 작은 돌돌돌 소리 나는 기계로도 구석구석 눈을 치우고....


그렇게 많이 정리한게 아래 사진일 정도로 우리 지역 치고는 이례적으로 눈이 많이 왔고, 지금도 계속 내리고 있다.


저렇게 길에 싸릿눈 쌓인 걸 보는게 오랜만인데다, 큰 창문을 사이로 계속 눈이 조금씩 내리는 모습을 보며 앉아 차 한잔을 홀짝이니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 있다. 창문으로 보이는 모습이 하나의 풍경화다.


코로나로 좋아하는 미술관도 못가고, 갈 곳도 예쁜 곳도 많은 유럽에서 이런저런 연간 행사와 꽃전시가 작년 내내 다 취소되는 바람에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거나, 멀리 차를 타고 여행가서 단 하루 혹은 1박 2일이라도 온전히 계절을 느낀 적이 너무 오래되었다보니, 자연스레 일상의 자질구레한 집안일이나 소소한 일들도 즐거움보다는 귀찮게 느껴지고, 그런 하루가 모여 삶이 삭막해지는 중이었다.


이렇게 눈을 보며 작은 눈 송이 하나에, 창밖의 풍경이 조금씩 변하는데에서만 행복을 느낄 수 있다는데 놀라는 중이다.


어젯밤 '여보, 이번에 독일에 눈이 30cm 넣게 쌓인데-!' 하며 기대하는 신랑을 보며,

뉴욕의 겨울이 생각났다.


내가 교환학생을 간 건 어느해 1월이었고, 뉴욕은 크리스마스가 막 지난, 축제가 끝난 직후 약간의 쓸쓸함과 어수선함이 남아있는 상태였다.

기숙사에서 방을 확인하고, 이런저런 행정적인 절차를 처리한 후 방으로 올라가 바라본 창밖 풍경은 브룩클린 브릿지까지 보이는 멋진 야경이었다.

창밖 뷰가 맘에 들어 창쪽에 침대를 배치하고, 교환학생 온 언니의 추천으로 드라마를 밤새 보며 신나하던 어느 날, 커튼을 치니 온 세상이 하얗다. 내가 드라마에 빠져있던 몇시간 사이에 소리도 없이 내린 눈이 50cm는 넘게 쌓여 온세상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다음날 바로 동네 신발가게로 가서 무릎까지 오는 어그부츠를 샀다. 분홍색 신발이 예뻐보여 처음으로 나랑은 잘 안어울리는 것 같은 그 색을 그냥 '신고싶다'는 생각만으로 골랐고, 그 해 겨울에서 봄까지 날씨가 궂은 뉴욕에서 그 부츠는 톡톡히 제 역할을 해냈다.

미국에서의 생활은 첫 독립생활이었고, 아무도 나에게 간섭하지 않았지만 아무도 나를 신경써주지도 않는, 자유를 만끽하여 달콤하면서도 아프거나 외로울 땐 한없이 침잠하는, 내 인생에서 처음 겪는 감정들의 연속이었다.

어떨 땐 굉장히 외로웠지만, 또 아플 땐 너무 서러워서 옆방 언니가 한인타운 가서 사온 편의점 전복죽 하나에도 눈물이 터져나올만치 마음이 약해지던 때도 있었지만, 전반적인 나의 교환학생 생활은 즐거웠다.

내가 뭘 먹는, 뭘 입든, 무슨 일을 하든 신경쓰고 뭐라 하는 사람이 없었고, 앞서 어그부츠를 살때처럼 신발 하나를 사도 이 색이, 이 디자인이 나에게 어울리나, 남들이 이거보고 촌스럽다 뭐라하지 않을까, 란 오만 걱정들을 할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내 한국말을 이해하지 못하니 같은 한국인들끼리 마음껏 오만가지 얘기를 한국어로 떠드는 것도 재미있었고, 내가 해보고싶던 스타일을 시도하거나 좀 바보같은 짓을 해도 아무도 뭐라하지 않았다. 한마디로 나에게 딱히 관심이 없었다. 그걸 타인에 대한 존중이라고 할 수도 있고, 무관심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 뭘 해도 항상 남의 눈을 신경써야하는 한국에서의 삶에 익숙했던 나는 그런 무관심이 너무 편했다. 그 무관심만으로도 자유를 얻은 것 같았다.

게다가 거대한 인종 용광로인 뉴욕에서, 거기에 오만 패션과 문화가 공존하는 그 곳에서 내가 어그부츠를 핑크를 신던 베이지를 신던, 오만가지 외모와 스타일, 삶의 형태를 지닌 뉴요커들 눈에는 딱히 띄지도 않을 정도의 차이였기에, 뭘 하든 남의 눈치 보지않고 이것저것 해볼 수 있었던게 참 자유로웠다.

그 자유가 날 숨쉬게 하더라.


물론 그 자유 뒤에는 아빠 카드라는 경제적 지원이 있었고, 그런 뒷받침과 부모님의 희생이 없었다면 내가 그런 경험을 할 기회는 영영 없었을거다. 그런 점들이 감사하고 죄송해서 대학을 빨리 졸업해 가정경제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도 했고, 실제로 나는 단 한번의 휴학도 없이 대학시절 내내 1학기를 제외하고 전학기 장학금을 받으며 대학을 졸업했고, 바로 취업에 성공해서 부모님을 안심시켜 드리기도 했다.


아이도 많은 우리집에서 당시 내가 유학을 가서 편히 지낼 만큼 우리 부모님의 경제사정이 넉넉하진 않았다는 걸 안다.(아이 2명 이상 동시에 대학보내고 있는 외벌이집에서, 아이 유학까지 보내줄만큼 여유있는 집이 어디 그리 흔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모님은 내가 가고싶다는 강한 의지를 표명하자 결국 보내주셨고, 그때 부담이 되셨을텐데도 나에게 20대 초반 외국에서 공부해볼 기회를 주신데 대해 지금은 너무나 감사드린다.

샌님같고 범생이같이만 살아온 내가 미국에서 얻은 건 공부보다 삶과, 거기 사는 사람들의 모습과, 나를 돌아보는 시간이었다. 인생에 한 길만 있지않고 여러가지 삶의 모습이 있고, 그 길 중 내 길을 선택하는건 다른이가 아닌 나 자신이란 걸 깨달았고, 주인의식이란걸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한국에서 대학을 쭉 졸업했다면 절대 만나지 못했을 사고방식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과 대화 속에서, 늘 신선한 충격을 받고 나를 비추어보곤 했다.


그 경험이 확실히 내 동생들 눈에는 언니가 좀더 해방되고 자유로워지는 계기로 보였나보다.

한국에 돌아온 후 내 모습을 보며 동생들도, 주변 사람들도 놀라곤 했다. 스타일도 바뀌었지만, 생각도 많이 넓어졌기 때문에. 정신을 해방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 다양성을 받아들인다는 것도 정말 어렵다.

이런 과정을 수행하려면 성인이 된 후 한번이라도 혼자 아무도 없는 외국에 가서 혼자 쌓아올려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어쨋든 나는 뉴욕에 다녀오기 전과 후가 열린 사고의 기로 중 하나였을만큼 많이 달라졌고, 그런 사고방식의 변화가 이후의 내 삶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동생들이 외국여행이든 유학이든 뭔가 해보고싶다는 생각을 할 때 나는 항상 적극 추천하였고, 한번 해봤으니 관련 정보를 찾거나 준비하는데 조언도 해줄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지금 동생 둘다 해외에서 자리잡고 살고 있으니, 내 첫 뉴욕 교환학생 경험이 이후 우리가족 전체에 미친 영향 또한 꽤나 크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돌아보니 뉴욕에서의 생활은 참 다양한 경험의 연속이었는데, 그 경험들의 배경에는 언제나 아름다운 풍경과 계절이 있었다. 눈 쌓인 뉴욕의 겨울은 때론 질척이고 지겨웠지만, 자고 일어나면 하얗게 소복이 쌓인 눈은 윈터 원더랜드 그 자체였다. 온갖 휘황찬란한 불빛이 가득한 맨해튼으로 기숙사 밖 5분이면 도달할 수 있고, 그 눈물나게 아름다운 야경은 매번 브릿지를 건널때마다 봐도 예뻐서 지하철을 탈 때면 항상 창가자리를 사수하곤 했다. 센트럴파크의 세렌디피티 배경이었던 아이스스케이트장도 가고, 공원을 산책하다 추우면 크림치즈를 산처럼 쌓은 베이글에 커피한잔 하고, 뉴요커들의 불친절함마저도 어떤 땐 낭만이었다.

리틀 이태리의 유명 식당에서 먹던 크림파스타와, 소호를 누비며 쇼핑에 일가견이 있는 언니의 설명을 듣던 날, 미술공부를 하던 유학생 언니의 집에서 이젤에 세워진 그림과 다양한 미술작품을 보며 차를 마시던 어떤 날, 기숙사에서 흑인 친구들이 hey, what's going on 하고 인사하면 와...이게 그루브구나-얘들은 그냥 그루브를 타고 났구나, 그냥 인사하는데 랩하는 줄 알았네-하던 영화를 보는 것 같은 작은 순간의 조각들...


봄이 다가오자 도심 곳곳에 숨은 작은 공원들을 산책하는 재미가 단단히 들렸었다. 배터리 파크를 산책하고, 그 옆에 financial center였나...거대 온실 까페같은 건물에 들어가 차 한잔을 하고, 천장까지 통유리로 된 그 곳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햇살을 만끽하고, 시립도서관에 가 유럽 어디 오래된 도서관에 온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유니언스퀘어에서 열리는 장 구경을 하며 신선한 과일을 사기도 하고,,,


뉴욕은 할 것이 넘쳐나고 가는 곳마다 뭔가가 펼쳐지고, 그 모든 이벤트들의 배경에 예쁜 도시와 예쁜 까페들, 맛집들, 그리고 뚜렷한 사계절과 햇빛, 강이 있었다.


그런 지리적인 위치와 주변환경 또한 인간의 삶과 매일에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는 걸 지금에 와서 더 크게 깨닫는다.


지역을 옮겨 산다는 것은, 그게 한 나라 안이든, 해외든 많은 변화를 동반한다. 그리고 독일에 오기 전까지 나에게 날씨나 계절의 뚜렷함, 환경은 이주에 있어 그렇게 큰 고려사항은 아니었다. 사람에게는 고유한 성격이나 기질이 있어서, 그런 환경적인 요인들은 마이너한 영향만 미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독일에 와 5년 가까이를 지내면서, 그런 나의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다. 장기간 노출되면, 환경이 기질을 바꾸기도 한다. 내가 이 곳에 와서 실제 성격이 많이 바뀌기도 했고, 생각하는 방식이나 틀도 점점 내가 속한 사회와 환경의 경계 속에 갇히는 느낌이다.

그리고 이 나라의 환경적인 요인(자연이든, 사회적 시스템이든)에 의해 형성된 사람들의 성격과 기질은 결국 그 사람들과 어울려 사는 나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 뉴욕에서 다들 자유롭고 자기 원래 문화를 고수하면서도 다양성을 받아들이는 melting 한 문화가 나에게 미친 영향이 어마어마했듯이, 독일에서도 나는 또다른 변화를 온몸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중이다.


오랜만에 내리는 눈 때문에 대학생 시절 기억까지 소환이 되었네...

매 순간의 내 삶이 이상은 아니겠지만, 이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경험해보면서 결국 내가 가장 원하는게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그려보는 것은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뉴욕의 경험이 나를 많이 바꾸었다는 것이 이제 돌아보니 명확해지는 것처럼, 몇 년 후 나의 지금을 돌아봤을 때는 또 지금 보이지 않는 많은 것들이 보이겠지.

그렇게 한 걸음씩 걸어가며 지금 주어진 것들에 충실한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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