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 밥상차리기

나에겐 너무나 극한 일상인...밥하기/내 올해 밥상준비 롤모델은 윤은혜

by 봄봄

코로나가 시작된 작년 2월만 해도 올해 2월까지 코로나가 이어질 줄은...정말 몰랐다.

원래 2월 14일 발렌타인까지였던 락다운은 3월 7일까지 재연장되었는데, 아무래도 조만간 또 재연장 소식이 있지 않을까 싶다. 감염자 수는 많이 줄었는데 Mutation 때문에 현재 체코, 오스트리아 등 국경도 막는 추세고...분위기를 봐서는 락다운은 그냥 봄까지 계속될 것 같은 상황. (올해말까지 락다운한대도 솔직히 놀라지 않을 것 같음. 많은 것을 내려놓은 상태...)


이사온지가 5개월차인데, 계속 락다운이라 집근처 레스토랑 한번을 못가고 매번 배달 혹은 집밥이다.

내 글을 읽어오신 분들은 아마 다 아시겠지만, 난 독일에서 삶의 만족도가 떨어지는 가장 큰 이유가 '밥'이다. 언어나 문화나 날씨도 아니고, 1번이 밥이다. 솔직히 밥만 맛있었으면 독일에서 내가 1도 불평을 안했을거라고 생각할 정도로...


어릴때부터 편식 안하고 잘먹는다는 칭찬을 항상 들었고, 캠프를 가든, 수련회를 가든, 기숙사에 살든, 어딜 가든 항상 밥맛이 좋고 뭐든 잘 먹었기 때문에 내가 여기 와서 밥때문에 이렇게 고생을 할 줄은 정말 상상도 못했다.


일단 한식을 해먹을 신선한 재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고, 그나마 상황이 낫다는 뒤셀도르프지만 한인마트 가면 버젓이 유통기한 지난 라면이나 고추장 등을 판다. 할인해서 팔긴 하는데, 인스턴트가 유통기한이 얼마나 긴데 그걸 지난걸 판다는 것도 너무 충격이었고, 할인이고 뭐고 기한 지난걸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돈받고 판다는 것에 너무 놀랐다. 재료를 뭘 썼는지도 모르겠는 반찬들과, 한국에서 들어본 적도 없는 브랜드의 한국 식품들...미국 한아름 마트는 참 잘되어있었는데(그냥 한국인줄) 독일과 유럽은 한국인이 살기 정말 너무 힘든 곳이었다.

한식당도 솔직히 내 느낌은 예를 들어 순대국밥을 주문하면 순대 어떤 걸 썼는지도 모르겠는데다가 그냥 순대국밥 흉내를 냈다는게 적당한 표현일 정도로 냄새도 너무 심하고 해서 그냥 한식당도 잘 안간다. 여기 한식당들은 진짜 맛있게 해야 살아남는게 아니고, 요리나 식당경력이 한국에서 하나도 없던 사람들이 그냥 먹고 살려고 차리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에(근데 그래도 장사가 잘된다) 퀄리티와 관계 없이 그냥 '한식 팔아요'하면 그 희소성때문에 장사가 되는 느낌이다. 경쟁식당의 음식 퀄리티가 딱히 좋지 않으니 경쟁도 없고 그런데도 장사가 잘되서 이 음식수준에 이렇게 돈을 잘 번다면 나도 식당하겠다, 라고 생각한 적도 많았다.

맛도 맛이지만 이런 상황에서 재료를 신경쓰거나 건강을 생각한 조리법까지 기대한다는건 말이 안되기 때문에 그냥 맛 흉내만 냈어도 고향생각에, 집에서 조리할 불편함에 한번씩 가다가, 신랑과 한식당 외식 후 하루종일 아토피 도져서 미원 때문에 긁는 모습보고 코로나 전부터 한식당에 거의 발길을 끊었다. (이민오신 분들 중 독일에서 식당해서 망했다는 사람은 한명도 못봤어요- 이민 오실 분들에게는 팁이 되겠네요;;)


요리를 포함한 모든 손재주라곤 1도 없어서 뭘 해도 항상 결과물 퀄리티가 떨어지던 나였기에, 이래저래 요리를 매번 해먹어야하는 이 상황이 너무 스트레스였다.

독일에서 한국식으로 해먹으려면 돈도 많이 들고 상황도 여의치 않으니 독일식으로 식습관을 바꾸라는 주변 조언을 여러번 들어 이제 오트밀이랑 빵으로 끼니를 때우는 적도 여러번이지만, 여전히 먹어도 먹은것 같지 않고 해서 결국 독일와서 얼마 되지 않아 10키로가 쪘다.


뚝딱뚝딱 해낼 수 있는 것도 아닌 한식이다보니 한번 부엌 난장판으로 만들면서 한식을 하면, 무조건 많이 먹어야한다는 강박이 생겼고, 맛도 없고(내가 했으니..) 재료도 신선한것도 아닌데 그래도 그걸 꾸역꾸역 먹고 앉아있게 되더라. 공허함을 배로 채우려는 듯 참 많이 먹었다. 외식비도 한국의 2~3배인데 서비스 같지도 않은걸 팁까지 주니 식당가면 음식 남기기 싫어서 외식할때도 꾸역꾸역 다 먹곤 했고, 결과는 몸 망가짐과 살로 돌아왔다.


정말 여기 사는 약 5년 가량의 시간동안 음식에 대한 기대치를 내려보려고, 마음을 내려놓으려고 몇번을 시도했는지 모르겠는데, 여전히 잘 안된다. 그래서 많이 힘들다.


신랑은 나만큼 한식을 찾지 않으니 한식 뭐 하나 요리해두면 그냥 나혼자 삼시세끼 다 그걸로 먹기도 하고...

정말 딜레마인데 어떻게 해결해야할지 모르겠고, 퇴근하고 맛집 찾아다니면서 혀로, 식감으로 즐거움을 느끼며 인생의 피로를 풀고 행복을 느끼던 나로서는 한번 사는 인생 이렇게 먹는거 스트레스 받아야하나 싶어서 역이민 생각이 날로 커지곤 했다.


그래서 출산을 한국에서 하고 싶은 맘도 컸는데, 지금 코로나때문에 자가격리에, 한국 부모님댁에는 못있으니 호텔을 구해야하고, 이제 거의 막바지라 장기비행이 위험하기도 하고, 가뜩이나 느린 amt 시스템때문에 한국출산시 독일에서 출생신고하는데 1년이 걸렸다는 후기들을 접하고 나니 애 낳고 가뜩이나 몸도 힘든데 또 독일 행정시스템때문에 속이 터지겠구나...싶어서 그냥 독일에서 출산하기로 맘을 접고 휴직에 들어간 지금-


역시나 쉽지는 않은 여정이다.


출산, 육아 관련 책들을 찾아보니 한국에서는 아이를 위해 임신기간 내내 식단까지 관리하면서 신경을 많이 쓰는지 관련된 책들도 후기도 많은데, 여기선 뭐 입에 밥만 들어가도 다행인 독일이다보니(점심도 매일 도시락 싸야하고...) 솔직히 식단관리고 뭐고 배고플 때 입에 뭐 들어가게만 해줘도 고마운 지경이었다. 그래서 내 식습관에 대해 신랑이나 엄마가 잔소리를 하면 엄청 예민하게 반응하게 된다.


그래도 지금은 출산전까지 집에서 쉴 수 있으니 다시 마음을 다잡아보며 잘해먹으려고 하다보니 요즘 거의 부엌에서 사는 것 같다. 정말 어제는 하루종일 부엌에 서있어서 그랬는지 밤에 자다가 쥐내려서 죽는줄 알았다. 고3때 이후로 자다가 종아리에 쥐내려서 소리지르고 울고불고 한건 어제가 처음인듯..

그만큼 막달이라 무리도 하지말고 조심하고 스트레스도 안받아야하는데, 난 누가 나한테 그런말 하면 그럼 뭐먹고 살아요? 라며 가시돋친 반응이 먼저 나간다. 아니 여기 살면서 내가 삼시세끼 다해먹어야 하는데 어떻게 스트레스를 안받아..게다가 난 요리 똥손인데...ㅠ


지금 임신중이라 예민해서 그런것도 있겠지만,,,

매일 마인드 컨트롤하려 노력하지만 참 독일생활이 쉽지가 않다...


그래도 양배추, 계란이 임산부에게 좋대서 잔뜩 넣고 떡볶이도 해보고...
삼겹살 간장에 볶아서 비빔밥도 해먹고...
삼겹 4키로 주문해서 소분해서 얼려둠. 한번 살때 왕창 사야지 정육점 갈때마다 얇게 잘라달라면 실눈 뜨는 바람에 자주가기 싫다. 삼겹살 사면서 눈치보는 이상황...


집에서 한국 관련 다큐를 많이 봤는데 ebs 시선이란 프로에 결혼 늦어지는 사회, 대기업 퇴사생이 늘어나는 현상, 결혼정보회사, 아파트값 상승으로 전세/월세 난민이 되는 현실, 커피공화국, 육아전쟁 이런 테마들을 보니, 내가 예전에 겪었던 답답함이 새록새록 떠오르면서 그래,,,한국보다 독일이 나은점도 많지- 싶어 다시 마인드 컨트롤 하면서 밥을 잘 해보고 싶지만 참...진짜 난 타고나질 않았는지 이게 즐겁지도 않고 맛도 없고 너무 슬프다...

그냥 일해서 돈 많이 벌어와, 하면 자기계발하고 열심히 하겠는데, 살림이란건 참 눈에 띄지도 않고 그냥 매일 똑같고,,,외주 주고싶다 정말 ㅠㅠ

근데 외주를 줄 수 없는 현실-(부탁할 사람이 아무도 없음.)


회사에서 막날에 받은 꽃을 바라보며 그나마 웬일로 며칠간 햇빛 가득한 독일 날씨에 감사하며 지내려고 마인드 컨트롤을 해보지만...

여전히 쉽지않은 밥과의 전쟁-

내 마음과는 상관없이 속절없이 에쁜 꽃 너...너를 보며 그래, 한번더 힘을 내볼게



와중에 본 편스토랑에서 윤은혜 요리하는 것 보니 그래, 나도 저렇게 살아야돼-하면서 올해는 살림에 있어 그녀를 롤모델로 삼아보기로 한다. (어머 나랑 나이도 비슷해)

다른 편스토랑 출연자들은(예를 들면 이정현 같은) 주방도 대박 좋고 뭔가 내가 범접할 수 없는 살림의 여왕들같고 재료도 어려운거 쓰고 플레이팅도 예술이고 요리법도 어려워보이고, 저렇게 이쁘게 입고 깔끔하게 부엌 유지에 데코까지 하면서 어떻게 맛난 요리까지 하지? 생전 처음 들어보는 저 재료는 또 뭐야? 저사람 저정도면 프로아냐? 할 정도로 주눅이 들어 그림의 떡이지 시도할 생각조차 못해봤었다면, 윤은혜는 무슨 레시피북도 없이 그냥 약간 가위로 소세지랑 김치잘라서 찌개 만드는 여자처럼 투박한듯 뚝딱뚝딱 해내는데 요리 비쥬얼과 아이디어가 완전 대박이라, 아니 저 분 그동안 쉬면서 무슨 조리학교 다녔어? 싶어 한번 따라해보자 마음먹었다. (찾아보니 요리책도 지난주에 나와서, 사볼 예정-)


이렇게 나의 독일 생활은 임신 호르몬의 영향과 더불어 하루에도 몇번씩 기분도, 의욕도 미친년 널뛰듯 널뛰기를 반복하고 있다.

참 모든걸 충족하는 유토피아는 없다는 것을 느끼고, 어떤사람에게는 별것도 아닌게 나에게는 또 사활을 걸만큼 중대한 사안일 수도 있다는 걸 깨달으면서...

결국은 모든 것이 우선순위와 선택의 문제라는 결론이다.


내가 독일에 와서 만족하는 부분도 분명있지만, 이 밥문제에 있어서만큼은 5년의 양보 끝에도 결코 타협되지 않는 뭔가가 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에 대해 2021년에는 진중한 고민을 계속해보고 여러가지를 시도해보며 내가 가장 원하는 방식의 삶을 살수 있도록 삶을 재편하는 계기로 삼아야지.

그런데 아이가 태어나면 정신없다는데 가능할까...? 아니야 창밖으로 지나가는 저 아이안은 평온해보이는 부부처럼 나에게도 평화가 찾아올거야...


다시 마인드 컨트롤의 시작이다.

밥을 테마로 한 책에 큰 관심을 쏟는 요즘 눈에 딱 들어온 목수정의 신작, 밥상의 말 을 읽어보며 또 새로운 지향점을 찾아보는게 오늘 저녁의 플랜.


포기하지 말고 찾아보자- 내가 행복해질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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