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이민, 그 6년 후 - 이민의 뒷 이야기

파라다이스는 없다

by 봄봄

한국의 어떤 면이 싫어서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갔다- 라는 이야기는 요즘 심심찮게 들을 수 있는 시대다. 그러나 떠난 이후 그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는 알기가 힘들다.

마치 호기롭게 회사를 때려치우고 퇴사하는 선배가 멋져보이지만 그 이후의 삶이 어떤지에 대해서는 알길이 묘연한 것과 비슷하다. 모든 동화의 끝 문장처럼 정말 그들은 오래오래 행복하게 잘 살았을까?


내 블로그 보신 분들은 내가 한국을 떠나 독일행을 선택한 이유를 아실 것이다. 베스트셀러였던 82년생 김지영, 누가 김부장을 죽였나, 90년대생이 온다 등의 책들에서 말하는 한국사회의 면면이 그 배경이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과도한 업무와 회식, 그로인한 일과 삶의 경계가 모호, 시간이 없는 쫓기는 삶, 비교로 인해 항상 불안한 마음으로 살아야하는 한국이 10년간의 회사생활과 함께 나를 지치게 한 요인이었다.

그래서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즉 일은 내 삶의 일부이고 사생활이 존재하며, 가족과의 시간, 내 개인적인 시간, 노동자로의 인권이 존재하는 유럽행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정이었다. 하루의 90%가 회사생활이었기에 회사생활이 공정하다고 생각되고, 그로부터 자유를 누릴 수 있는 노동자 중심의 문화가 독일행의 가장 큰 이유가 되었던 것은 당연했다. 일과 속도에서 오는 스트레스가 내 삶에서 가장 컸으니까-



그리고 지금, 독일행을 택해 이곳에 터를 잡고 산지 이제 약 6년이 되어간다.

아마 독자여러분들은 그래서 내가 정말 행복한지, 만족하는지 궁금하시지 않을까?

나 스스로도 지난 6년 가량의 시간을 돌아보고 내 선택이 옳았는지 한번 정리해보고 싶었기에 이 글을 쓴다.





2021년 연말인 오늘, 오랜만에 가족외식을 하러 나간 시내에서 너무 많은 관광객과 적은 레스토랑 숫자로 어딜 가도 1시간 이상 웨이팅을 해야했다. 1시간 웨이팅을 하면, 입장 후 주문까지 평균 20분 이상 걸리는, 음식이 나오기까지는 30분 이상이 걸리는 독일에서 식사를 다 하기까지 최소 2시간 이상이 소요된다는 걸 의미한다.

한정 없이 기다리다 내가 앉은 테이블의 창문으로 음식 준비하는 부엌이 들여다보였는데, 햇반을 잔뜩 뜯고 있는 직원이 보였다. 식당에서 설마 햇반을 주리라곤 생각도 못했기에, 무려 6년간 독일에 살았음에도 충격을 받아 밥맛이 떨어졌다....

계산하러 나오는 식당 내 복도 의자에 햇반이 잔뜩 쌓여있는걸 보며 나왔다. 부엌에서 정말 햇반 뜯어 주더라도, 손님이 뻔히 걸어다니는 가게 내부에 숨기지도 않고 햇반 서너개가 쌓여있는 모습 또한 적잖이 충격이었다.


총 외출시간 약 3시간 중 밥 한그릇 다 먹기까지 이렇게 오랜시간이 걸리고 나니 진이 다 빠졌다. 게다가 아기까지 같이 있으니 계속 아기 상태가 신경쓰여, 늦게 나온 음식은 입으로 들어가는지 코로 들어가는지 모를지경으로 마시고 팁까지 내고 식당 문을 나서는데, 화가 나다 못해 살짝 눈물이 나려고 했다.

게다가 오늘은 내 생일이었다.


우리나라 요식업 수준은 거의 세계 정상급이라고 생각한다. 음식 맛은 물론 가게 인테리어, 플레이팅 데코레이션에 주인장의 서비스 및 센스있는 메뉴판과 재미있는 요소를 가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고, 이건 비단 서울뿐이 아니라 전국 방방곡곡 식당의 특징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본다. 새로 생긴 깔끔한 가게 뿐 아니라, 노포에서는 그 맛과 주인할머니의 투박한 사투리가 오히려 그만의 오래된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맛'이 있다.

즉 먹는 것이 삶의 큰 즐거움인 나라다.

하다 못해 집에서도 매번 엄마가 해주신 최소 5첩 이상 반상에 먹고 나면 과일도 나눠먹고, 틈나는 대로 떡도 먹고 식혜도 마시고 하는 끝없는 맛의 향연이 유년시절 기억에 늘 자리하고 있다.

이런 나라에서 온 내가 유럽의 음식 수준과 서비스에 만족 못하는 것은 당연하겠지만, 요즘은 정말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고, 코로나로 배달만 하다보니 식당들이 점포 관리에 더 소홀해지는 느낌이다.

한국에서는 자영업자들이 코로나로 정상영업이 불가해 수익을 못내 데모를 한다는데, 여기는 Lieferando라는 우리나라 배민, 요기요 같은 배달앱을 통해 식당 매출이 더 높아지는 상황이다. 주인 입장에서는 오히려 웨이터를 고용하지 않아도 되니 영업이익이 더 높아지는 상황. 그러니 매장내 인테리어 등 하드웨어에는 당연히 더 지출을 줄이는 듯 하다.


그래서 나같이 집에서 살림하는 것에 크게 재미를 못느끼고 밖으로 좀 나가서 환기도 하고 바람도 쐬고 쇼핑도 하고 해야 기분이 좋아지는 사람은 독일에서 정말 심심하고 재미없다. 이 온통 그레이한 도시의 어느 부분에서 블링한 포인트를 찾아야 할지 갈수록 모르겠다. 그나마 NRW의 주도라는 뒤셀도르프에서 이러니 더 시골도시 가면 상황이 빤하다.


독일에 오기 전에는 회사에 하루종일 갖혀있다시피 하다보니, 건물만 나서면 놀거리, 먹을거리, 볼거리가 즐비한 서울이 감사한지 몰랐었다. 오히려 그런 것들을 누릴 시간이 부족하다보니 상대적 박탈감을 느꼈달까.

하지만 이곳은 서울과 달리 업무시간이 정확하고, 추가업무시간은 돈이나 휴가로 받을 수 있는 나라다 보니, 시간이 많은데 갈 곳이 없기에 이런 무채색의 도시가 더더욱 무매력으로 다가온다. 시간이 많은데 놀게 없고, 답답해서 나가서 맛난 것 먹고 힐링하고 싶은데 맛난 곳이 없다는 것이 이제 점점 내 기본권을 침해하는 느낌이다.


이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오늘 같이 별 맛도 없는 음식을 오래 기다려서 먹고, 돈만 많이 쓰고 하나도 가치를 못느끼니까 신랑에게 계속 불평만 하게 되고, 나도 이런 내 모습이 싫어지기 시작한다.

입만 열면 독일욕에 불평이니까.


그래서 한국으로의 역이민을 심각하게 고려중인데 한국 집값이 지금 말도 안되게 오른 상황에서 우리 직업도 다 새로 구하고 relocation하는 것이 쉽지 않아서 힘들다.

한국에 돌아간다 해도 평생 한국에서 살고싶은지는 모르겠고, 언젠가 아이 교육문제로 다시 독일로 돌아올 수도 있겠지만, 독일에서 한국으로 가든, 한국에서 독일로 가든, relocation은 아이가 있는 상황에서는 간단하지 않은 문제다. 이미 자리잡은 상황에서는 더더욱.


내가 지금 하는 이 고민이 독일에서 여가에 대한 인프라가 거의 없고 주로 이들의 여가가 운동이나 여행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인데, 난 이제 여행은 할만큼 해서 더이상 여행에 매력을 크게 느끼지도 않고, 내 짝꿍은 여행을 넘 싫어하고...그러다보니 여행을 강요하는 내 자신의 모습도 싫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막 여행은 2년전의 바르셀로나 여행이다. 이후로는 임신 출산도 있었지만 더이상 남편이 원하지 않는데 여행가자고 조르고 싶지가 않더라.

국내 이쁜 여행지 있고 하면 부담없이 다녀올텐데, 독일 국내에서 이쁜데는 차로 5시간씩 가니까 너무 힘들고...

한국이 작아서 싫었는데 이제는 또 독일이 커서 싫고...나도 어찌해야할지 모르겠다. 난 정말 청개구리인가보다.


그리고 독일의 여가인프라 중 하나인 운동도 나에게는 즐거움이 아니라 건강을 위해 해야할 의무로 생각되기에 이 나라의 이런 무 인프라가 앞으로 계속 내 삶의 질을 저하시킬 예정이다. 운동하고자 하면 할게 무궁무진한 곳이지만, 지금 육아로 바쁜 와중에 신랑이 너를 위해 운동할 시간에는 내가 아기를 봐주겠다고 하는것도 듣기가 싫은게, 내가 운동으로 힐링되고 신나고 이런게 아닌데 내 여가시간조차도 건강을 위해서만 투자해야한다니 빵도 건강한 빵만 먹는 이 지독히도 고지식한 나라가 더 싫어진다.

아니 도덕책이냐고, 일하고 집치우고 운동하고 자고 건강한 빵만 먹고 살게-

난 명품백이나 좋은 차에 아무런 관심이 없고, 동네 이쁜 까페에서 차한잔 하면서 글쓰기, 잘 꾸며진 큰 서점에서 책 고르고 내부의 까페에서 책 읽기, 동네 공원에서 산책하기, 말통하는 친구와 수다한바탕하며 맛있는 음식 먹기 이런게 인생의 행복인데 여기선 그런걸 할 수 없고 일상의 작은 환기가 없으니까 성격만 더 어두워지고 부정적이 되어간다.


이제 나이도 어느새 40을 바라보는 이 시점에 내 하루하루를 이렇게 보내다보니, 내가 왜 독일에 왔지 라는 고민을 요즘 심각하게 하는 중이다.

직장문화나 휴가제도 등 독일의 직장생활은 한국보다 장점이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여기서는 내가 독일인이 아니기에 언어적인 문제로 위로 올라가기가 힘들고 외국인이어서 힘든건 한국에서는 겪지 않았던 일이다.

즉 하나를 가지면 하나는 잃는다는 단순한 원리를 이곳에 와서도 느끼고 있는 중인데, 결국은 선택의 문제다.

일은 빡세도 여가문화 재밌고 먹을거 많고 사는데 잔재미있는 한국이냐, 일은 여유롭고 시간이 많지만 너무 재미없고 심심한 독일이냐.


요즘 한국으로 계속 기울고 있는 중이라 역이민 못가더라도 조만간 한국 한번 다시 들어가서 일단 숨 좀 쉬고 올것 같다. 오미크론으로 또 격리가 시작되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2022년 동안 인생의 방향 재정립이 시급하다.


왜 내가 원하는게 어느정도 다 갖춰진 밸런스 맞는 곳이 없을까...한국, 독일은 각각 장단이 너무 극단적으로 다르네.


제 3의 국가로 떠난 친구를 롤모델 삼아야할지 여러가지로 생각해보고 우리가족의 방향성을 재정비하는 것이 2022년의 목표다.


결국 Happily ever after는 동화속에서나 있는 말이고, 어딜 가나 문제는 있고 life goes on이다. 이 문제가 본인이 견딜수 있는 종류의 것이냐, 아니냐의 문제인 것 같다. 인생이란게 내가 원하는 것, 내가 누구인지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한국의 장점을 잃기 전까지 난 나에게 그 먹거리 천국, 까페 천국, 늘 친구와 만나서 할일을 고민하지 않아도 되는 흥미로운 일들이 많은 환경이 그렇게 소중한지 몰랐었다. 오히려 살 수 있는 곳의 선택지가 늘어날수록 선택이 더 어려워지는 기분이다.

각 나라의 장점만을 취해 살고 싶다만 그런 일은 불가능한 것이고, 나와 잘 맞는 대안을 모색하는게 현명한 어른의 태도겠지.


올해 다양한 고민과 짝꿍과의 꾸준한 대화를 통화 우리의 해답을 찾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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