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어를 배우며 느끼는 점

모국어를 말하고 쓰는 것이 인간의 존엄을 얼마나 공고히 지탱해주는가.

by 봄봄

외국어를 처음 접한 것은 12살때, 윤선생 영어를 통해 영어를 배우면서부터이다. 고등학교 때는 제 2외국어로 불어를 배웠고, 대학교 4학년 미국 교환학생을 갔을 때는 엉뚱하게도 타학교에서 온 교환학생이 추천해준 일드에 빠져 일본어를 독학했었다. 이후 일본드라마 외 일본 문화에도 빠져 일본여행만 3번을 다녀오기도 했다.

이후로는 외국어를 배운 적이 없다. 토플점수를 따기 위해서, 회사에 제출할 점수를 만들기 위해서, 혹은 대학원 진학을 위해서 GRE를 공부한 적은 있다.


나에게 독일어는,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 언어라기보다는 생존을 위해 필수적인 언어이다. 사실 이 언어를 처음 접했을 때는 '왜 독일인들은 항상 싸우는거지?'라고 생각했었다. 그만큼 발음과 억양이 딱딱했다. 처음에 신랑에게 왜 독일인들은 항상 싸우듯이 말하는거냐, 라고 물었을 땐 discussion을 즐기기때문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참 토론을 좋아하는가보다, 생각했지만 그래도 여전히 나에게 독일어는 토의,토론보다는 '논쟁'에 가깝게 들렸다. 얼마전 읽은 '매직 스트링'에서 독일어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독일어를 '혼내는 듯한 언어'라고 하더라.

그만큼 이 언어는 나에게 친밀하게 다가오진 않았었지만, 내가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소통을 위해 꼭 필요한 언어이고, 또 내 남편의 나라이기도 하기에 시간이 더 흐른 뒤에 그를 더 깊이있게 이해하고, 나중에 아이들과 원활히 소통하기 위해서도 독일어를 반드시 제대로 배워야한다고 생각해 시작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 독일어가 참으로 쉽지 않다. 단순히 나이 먹어서 새 언어 배우려니 힘들다,는게 아니라 같이 공부하는 20대 초반 친구들도 똑같이 어려운 과정을 겪고 있다. 오늘 배운 과거형은 모두 형태가 다르고 그 모양도 기이하다보니, 문제를 풀다 헛웃음이 나왔다. 왜 형태가 이렇게 변하는지 묻는 클래스메이트의 질문에 선생님은 당황했고, "Du musst immer lernen."란 말만 반복하더라. '외우라'는거다. 그래, 시간 투자에 장사 없다니 얼마간 시간이 지나고 계속 반복하다보면, 1년쯤 지나고 2년쯤 지났을 때는 내가 지금 영어를 편해하는 이상으로 독일어가 편해지겠지.


하지만 오늘 수업시간에 한국의 봄과 여름은 어떻냐는 질문을 받고, 독일어로 대답을 하면서 참 답답함을 느꼈다. 영어로 하면 참 간단할 말을 독일어로 하려니 답답해 죽는다.

'한국에서는 봄에 모두 벚꽃구경을 가요. 여름이면 시원한 한강에 가서 치맥시켜놓고 강바람 즐기며 저마다 좋은 사람들과 도란도란 얘기도 나누고요.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먹고 마시며 흥을 나누는 것이 한국 문화죠. 배달문화는 또 어떻고요. 한강이든 어디든 전화한통이면 배달맨이 달려옵니다...'

내가 하고싶던 말은 이거였는데, 각국에서 온 친구들이 저마다 자기 나라의 계절과 문화를 얘기하는 시간인 만큼 내가 하는 말이 어찌보면 한국의 인상인데, 'Kein Englisch'니 독일어로 이 말을 다해야 해 더듬더듬...

가뜩이나 말하기도 좋아하는 나이다 보니, 오늘은 정말 답답했다. 언제쯤 좋아질까...


그런 생각을 하며 약간은 우울한 기분으로 집에 와서 읽던 책 안에서,어쩜 이리도 똑부러지게 언어의 중요성을, 혹은 모국어의 중요성을 설명했을까 하는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프랑스에서 난민들에게 프랑스어를 가르치는 한 선생님의 인터뷰 내용 중 한 구절이다.



'한번은 그들에게 모국어로 우리가 함께 배운 글을 옮겨보게 했다. 그랬더니 프랑스어로 더듬거리며 말할 때와 달리 그들의 태도와 눈빛에서 다른 것들이 흘러나왔다. 심지어 신체의 움직임마저 달라지는 것으ㄹ 보았다. 이제 막 새로 접한 외국어로 표현할 때 우리는 뉘앙스를 충분히 실어서 말할 수가 없다. 언어가 협소해지면 사람의 정신도, 더불어 몸도 움츠러든다. 그걸보면서 사람이 자신의 모국어를 말하고 쓰는 것이 얼마나 그 사람의 존엄을 공고하게 지탱해주는지 알게 되었다. 그래서 불어만 가르치는 대신 각자의 모국어를 말하게 해서 서로 듣고 쓰고 보게 하는 프로젝트를 구상했다...'


- 파리의 생활좌파들 中



이 책 읽으면서 목수정 작가 참 글 잘 쓴다, 어쩜 이렇게 내 생각과 같은 생각을 유려하게 표현할 수 있지...하며 놀라는 중인데, 이 구절은 요즘 내가 느끼는 언어 장벽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 같다.

내가 여기 낯선 땅에 와서, 언어, 시스템, 공공예절, 사람들 취향 등 모든 것이 다르기에 어색하고 불편하고, 어쩌다 모르는 새 실수하지는 않을까 잔뜩 움츠러들기도 하는 이 적응의 과정 속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이 바로 언어인 것 같다. 예전 국어 배울 때 언어와 사고?라는 글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인간의 언어와 사고는 너무나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어 어떤 언어를 쓰느냐에 따라 사고의 과정, 결론까지도 달라지게 된다고 했다.

지금 나는 이 곳에서 독일어로 표현하고 소통해야 하는데, 내 머릿 속 사고는 모국어로 엄청나게 빠르고 복잡하게 흘러가는 반면, 아웃풋은 단순하다 못해 바보같기까지 하니 더더욱 움츠러들 수 밖에. 다시 말하면 독일에서는 독일어로 할 수 있는 언어의 폭이 결국 내 사고의 폭이 된다는 것이다. 타인에게 보여지는 것도 그렇고, 동일한 환경과 경험에의 노출에서도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가 제한되다 보니 내 생활의 폭까지도 작아지게 된다.


새로운 언어를 배울 때 당연하게 겪어야 할 일이지만 오늘 이 한 구절로 위로도, 이해도 받은 것 같아 조금은 마음이 편하다.

언어라는 것을 통해 책도 읽고, 대화도 하며 이렇게 사고의 체계를 구축하고 견고히 쌓아나갈 수 있다는 것이 감사하고, 내 모국어인 한국어가 너무나 소중하고 자랑스럽다. 언젠가 내 언어와 내 나라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지금은 주어진 독어공부에 매진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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