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서의 첫 일주일

관찰자의 시선으로

by 봄봄

독일에 도착한지 약 1주일이 되어가는 주말.

이곳의 온도는 벌써 30도를 웃돌만큼 완연한 초여름이다. 2주 전 쯤 눈이 왔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의 더운 날씨다.

왠지 모르겠지만 그 동안 나의 유럽방문 시기는 항상 10~1월 사이여서, 유럽의 봄, 여름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는데 올해는 온전히 봄/여름/가을/겨울을 경험할 수 있게되어 기쁘다.

내가 있는 이 곳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Nordrhein-Westfalen) 주의 Aachen이라는 작은 대학도시다. 예전에 몇번 방문했을 때는 겨울이라 추위로 인해 시내를 오래 걸어다니는게 부담스러워 이 도시의 매력을 미처 몰랐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시차 적응이나 시간에 쫓기는 부담감 없이 맑은 날씨에 편안히 산책을 즐기다보니, 가끔 '아...'하고 숨이 막힐만큼 낭만적인 풍경들을 곳곳에서 만나곤 한다. 이래서 유럽,유럽하나 싶을 정도로 ...


한국에서의 일상과 다른 점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우선 이 글을 쓰고있는 시각인 저녁 8시 38분에도 여전히 환할 정도로 해가 길다는 것. 그래서 하루하루 내게 주어지는 시간이 좀더 길어진 것 같은 기분 좋음을 느낀다는 것. 그러한 시간의 흐름을 창으로 들어오는 햇빛의 기울기로, 길을 걸으며 보이는 풍경의 색 변화로 느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길을 걷거나 친구를 만날 때도 뭔가 불안한 사람처럼 들여다보던 핸드폰을 하루에 2~3번 체크하는 게 다라는 점이 많이 달라진 것 같다. 한국을 떠나오니, 업무상 통화나 문자도 없어지고, 택배아저씨의 전화나 친구들과의 저녁약속 연락도 할 필요가 없어졌으니까.

어찌보면 이 단조로움이 불안할 수도 있겠지만, 일단은, 좋다. 이 단순한 일상과 현재의 변화들이.


정작 이곳에 사는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나에게는 유난하게 다가오는 것들이 있다.

매시마다 시간을 알리는 아헨성당의 종소리. 집에서도 길거리를 걷다가도 어디선가 이 종소리가 들려온다. 종소리로 시간을 알게된다는 것이 왠지 낭만적이다.

아침에 일찍 일어날 부담감 없이 미적거리다 침대에 누워 커다란 직사각형의 창문을 바라보면, 보이는게 건너편 아파트의 빨래너는 모습이나 TV보는 소파에 누워있는 아저씨가 아니라 맑은 하늘이라는 것.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착륙할 때도, 뒤셀도르프 공항에 착륙할 때도 보이던 풍경은 높지 않은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는 모습이었는데, 그 높이 조절의 건축으로 내가 누리게 된 긍정적 외부효과는 바로 '하늘'이었다.

내가 떠나온 생명보험 회사의 뷰는 환상적이어서, 첫 출근시 보이던 청와대-광화문-평창동까지의 뷰가 기가 막혔다. '이런 뷰를 옆에 두고 일하다니 세상에...너무 멋진 사무실 아냐', 하고 입사 첫날 얼마나 기분 좋고 자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 곳에서 근무하던 모든 동료들이 더 멋져보이기까지 했다.

하지만 회사에 근무하는 1년 동안, 내가 그 창문 밖 뷰를 바라볼 여유는 거의 없었다.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어느새 밤이었고, 사람들이 "눈 와"라고 말하면 '와...눈오네', 하고 다시 일하다 질척이는 땅바닥이 거추장스럽다고 생각하며 느지막히 퇴근하곤 했다. 그래서 내방 침대에 누워 바라볼 수 있는 한뼘짜리 하늘이, 스펙타클한 뷰를 자랑하던 거대한 빌딩 숲의 고층에서 바라보던 하늘보다 소중하다. 독일의 건축법이 왜 고층건물을 제한하는지, 어떻게 법이 구성되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덕분에 일반 시민인 나는 마음껏 바라볼 창문 밖 하늘과 햇빛을 얻었다. 나는 이런게 복지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 곳에 와서 불편한 점들도 많다. 일단 당연히 말이 안통한다. 메뉴판을 봐도 무슨 말인지 몰라 매번 신랑에게 물어봐야한다. 파티에 가도 내 짦은 영어로 소통하기에는 한계가 있다. 나같이 말하기 좋아하고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사람이 이렇게 벙어리로 있어야 한다는 것은 고역이다. 택배 받는 것도, 장보러 가는 것도 아직은 일상의 편안함이나 지루함이 아닌, 약간의 긴장감과 두려움을 동반한다. 거기에 외국인에 아시안이라 무시당할 수도 있다는 어쩔 수 없는 자격지심까지, 한국에서는 없었던 '이질감, 불편함'이 이 자유에 수반된다.


그래. 떠나오기 전부터 내가 한국에서 누리던 것들은 이곳에서 포기해야하고-당분간은-,

내가 누리지 못한 것들은 누리게 될 것이란 건 알았다.

하지만 이론과 현실은 언제나 그렇듯 다르다. 그래서 지금 겪는 모든 것들에 어느 정도의 시행착오는 있겠지만, 오랫동안 꿈꿔왔던 '사람다운 삶'을 시도해볼 기회가 주어졌음에 감사하고, 그를 위해 내가 감수하고 노력해야할 부분은 최선을 다해야겠다.


얼마 전 남편을 따라간 아헨 공대 한인모임에서 많은 한인 유학생, 교포들을 만났다. 각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사는 가지각색 그들의 모습을 보고 들으면서, 지구 어디에 뿌리 내리고 살든 적용되는 원칙은 동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실과 노력, 의지가 있다면 어디에서는 내게 주어지는 열매들은 있다는 것. 그 깨달음에 더해 한국에서 너무나 머나먼 이곳 독일의 아헨에서, 이런 한인 모임을 통해 한국음식을 먹고 '우리'끼리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문화가 있다는 것이 가슴 찡하게 다가왔다.


일주일 간의 생활을 통해 느낀 이 곳은 역시 여기도 '사람 사는 곳'이라는 것이다. 아직 언어적 문제로 동일 시간 동안 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고, 그래서 받아들이는 모든 자극에 대해 조금은 감상적이 되는 건지도 모르겠다. 불편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새로운 환경에 오감을 깨우고 아기처럼 하나하나 배워나가며 적응할 수 있음에, 나의 생존적응력을 시험해 볼 수 있음에 지금 이 기회가 반갑다.

내가 두드리는 만큼, 열릴 것이다. 매일 조금씩, 기분 좋은 설레임과 활짝 열린 마음으로 문을 두드리겠다. 그 곳에서 만나게 되는 또다른 세상에 성장해가는 내 모습을 확인하며 웃는 하루하루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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