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헨공대 시험기간 풍경을 보며 이런저런 소회
독일어 공부한지 3개월차. 들어보니 b1,b2되면 갑자기 엄청 어려워진다는데 아직까진 할만 하다.
우리반 친구들도 다들 어느정도 잘 따라오는 것 같고. 특별히 따라가기 힘들어하는 학생은 없다. 하지만 문법 하나 나올때마다 한숨 쉬는 애들은 늘어나는 중.
우리반에 문법은 한번씩 틀려도 말 참 잘하는 친구들 보면서 저정도면 나중에 독일대학가서 별 문제 없이 따라가겠다 싶었는데, 생각해보면 의대,공대 공부하면 한국말로 해도 어려운데 독일어로 하면 얼마나 어려울까싶다. 지금 외국인들 사이에서 기초과정 좀 잘한다고 나중에 독일애들이랑 경쟁해서 꼭 잘한다는 법은 없다는...생각이 들었다. 한국에서도 사실 공부 잘하고 못하는게 언어문제는 아니지 않은가. 언어가 기본이긴 하지만.
독일 의대 5~6년 공부하다가 포기하고 한국간 사람도 있다는 지인 얘길 들으니 '우와 이거 진짜 장난 아니구나.'싶었다. 그럼 한국가면 고졸인거잖아...란 생각이 들고. 일단 시작하면 죽으나 사나 무조건 끝장봐야 큰 손해를 막을 수 있을 것 같다.
독일 대학 들어가긴 상대적으로 쉬운데 졸업이 어렵다더니 정말 학부만 10년 다니는 사람도 있더라. 근데 그래도 그렇게 오래걸려서 졸업을 하면 다들 자리는 잡는 걸 보니, 한국서 딱 4년만에 졸업하고 직장 못구해 대학원 가고 가방끈 길어지며 학비만 더 드는거보단, 차라리 생활비 자기가 벌어 쓰며 부모님 부담 안주고 10년 걸려도 학부마치고 취업해 자리잡고 사는게 낫지 않나 싶다.
최근 시험 기간이라 신랑이 자주 도서관 가길래 따라가서 독어숙제 하는데, 도서관이 천장이 높고 칸막이 하나 없이 오픈되어 좀 부담스러웠으나, 저마다 제공부에 바빠 남 신경쓸 틈 없이 집중하는 그들을 보니 '정말 열심히 해야하구나'싶었다.
아랫층 컴퓨터공학 전공하는 친구는 시험보고 돌아온다며 온몸은 비에 젖어 어깨 축 늘어뜨리고 '나 시험 망했어..'하는데 진짜 짠해서 밥이라도 지어주고싶은 심정이...
아헨공대생들 공부때문에 탈모까지 온다더니 이번 시험기간동안 그 적나라한 수험생 모습을 제대로 본 거 같다.
그거 보니 신랑한테 닥달을 못하겠더라. 이미 본인 스스로 시험때문에 충분히 압박을 느끼고 있으니...게다가 독일대학이 공대만 그런지 모르겠는데 oral exam 이 많아서 교수앞에서 긴장하면 아는 것도 대답못하고 하는 경우가 있단다. 아...난 여기서 독어 마치면 취업or 대학원 생각하는데 독어로 말하기 시험 보면 잘할 수 있으려나...좀 걱정이..
여하간 이 곳 독일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면서 긴장감도 줄고, 익숙해지는 중이다. 버스에서 누가 말걸거나 간단한 대화할때는 불편을 못느끼고, 한국음식은 이제 짬뽕도 해먹는 수준이 되니 그다지 한국음식 생각도 많이 안난다. 외국살때 초반 3개월 동안 외로움, 답답함, 불편함 좀 견디면 적응은 언어와 병행시 가능한 것 같다는 개인적 결론이다. 이미 30대 접어든 나도 이런데, 20대 초중반은 아예 불편이란걸 못느끼고 순식간에 적응할지도.
며칠전 수업시간 독일의 교육제도에 대해 배웠는데, 언어와 함께 독일 문화나 시스템도 배울 수 있으니 좋다. 레알슐레 나와 아우스빌둥 해도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고, 박사까지 학비 없이 공부할 수 있는 나라. 한국은 고등학생이 몇시간 공부하냐는 말에 자율학습 포함 13~14시간을 학교에 있는다 했더니 그 자리에 있던 모든 클래스메이트가 날 쳐다본다. 내가 잘못 말한줄 알고. 그럼 집가서 쉴 시간이 얼마냐며.
뭐랄까, 이 곳에서 내가 처음에 견딜 수 없었던 많은 것 중 하나가 '너무 느긋한 태도'였다. 아니, 졸업도 취업도 보장된게 없는데, 석사생 박사생들이 어찌저리 느긋하지? 저런 초딩이 할것같은 단순 보드게임을 어떻게 수학박사과정 학생들이 모여앉아 2시간이고 3시간이고 할 수 있는거지? 한국이었음 이럴 여유가 있었을까?
그런 생각들로 머리가 꽉찼었던 듯 하다.
'이보세요 여러분 ~ 지금 이럴때가 아니고 성적잘받고 취업준비 하셔야해요~'라고 외쳐야할 것 같은 기분?
시간이 있어도 마음이 불안하니 쉬이 친구만나거나 뭔가를 배우거나, 취미생활 한 적이 없는 나의 학창시절과 비교했을 때, 그들의 '여유'가 부럽고 신기했던 거다.
이들이 이렇게 돈걱정, 취업 걱정, 시간 걱정 없이 공부할 수 있는 건 정부가 제공하는 교육시스템이 가장 큰 동력이자 밑바탕일테고, 그 시스템이 주는 안정이 개인의 인생방향과 태도를 얼마나 크게 바꾸는가를 눈으로 봤던 것이 내가 이곳에서 한 경험인 것 같다.
독일의 주거정책 및 청년정책에 대한 다큐 '창'을 얼마전 봤는데, 2년만에 전세값 5천~1억 오르는 경험을 한 나로서는 생각하게 되는 바가 많았던 프로다.
지금 한국에서 대학가려고 애쓰는 수많은 청춘들에게 나중에 내가 여기서 보고 들은 바를 바탕으로 해줄 수 있는 조언이 있을 것 같다. 더 지내보면서 차근차근 전하고싶은 바를 적어나가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