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예서 책상이 인기였다. 딱 한 명 앉을 수 있는 좁은 폭에 양옆이 가려져 집중하기 좋은 형태. 아예 작은 방 형식으로 나오기도 한다. 책 놓을 자리도 넉넉하고 따로 조명까지 달려있다. 그야말로 집 안의 1인 독서실이다.
개인용 독서실을 가져본 적은 없지만 독서실 책상에 하루 종일 앉아있은 경험은 있다. 꽤 길다. 반년은 독서실 책상에서, 나머지 반년은 교실 책상에서 보냈다. 예서가 쓴 것처럼 고급 책상은 아니었지만.
독학재수학원(이하 독재 학원)의 책상은 싸구려 합판으로 만든 것 같았다. 그냥저냥 튼튼하고, 별로 디자인이랄 게 없는 보급형 독서실 책상. 오래되어 여기저기 부서진 부분도 있었다. 상상력이 메말라버릴 것 같은 책상이었다.
그러나 무엇이든 의미를 부여하면 가치를 얻는 법. 센스라곤 찾아볼 수 없는 책상에도 낭만은 있었다. 열정이 하루 종일 엉덩이를 붙이고 있다 보면 없던 정서도 새겨진다. 매일같이 출석하는 내 자리의 내 책상. 풀어야 하는 문제집과 교재와 프린트로 빼곡히 쌓인 선반. 모두 꿈을 쌓아 올린 모습이다.
오히려 낡아서 더 정이 가기도 한다. 볼품없음이 애틋함을 자극한다. 낡고 가련한 책상에서 원대한 꿈이 실현된다니 시적이지 않은가. 사실 그렇게라도 믿어야 버틸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도움이 된다면 무엇이든 이용해야 할 때니까. 독재 학원 책상에 의미 부여하는 절박한 감성마저 버리지 못한다.
아무렴 어때. 긍정적인 게 좋은 거지. 지나치게 감성적인 거 아니냐는 물음은 넣어두자. 그렇게 여유로운 상황이 아닌걸. 이 책상에 애정을 붙여서 한 시간이라도 더 앉아있을 수 있다면 꿈에 그만큼 가까워지는 거다.
감성인지 절박함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책상에 앉는다. 스톱워치를 켜고. 문제에 정신을 집중한다. 이러나저러나 못생긴 독서실 책상은 내 팔을 든든히 받친 채로.
풍경, 2020, 핸드폰 드로잉
*피드백 환영! 달게 받겠습니다. 편하게 댓글 남겨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