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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l 22. 2020

독학재수학원과 빠다코코낫 우정

삭막한 풍경 속 은근한 동지애

독학재수학원. 말 그대로 독학으로 재수를 준비하는 사람들을 위한 학원이다. 모든 스케줄이 짜여 있고 과목 별 선생님이 있는 재수종합학원과는 다른 점이 많다. 공부 계획을 스스로 조정할 수 있고 과목별 단과 강의를 선택해 들을 수 있다. 대부분의 공부시간은 인강이나 교재를 통해 채운다. 공부계획과 스케줄이 비교적 자유롭다 보니 종합학원보다 다양한 사정의 사람들이 모인다.


일반적인 재수학원과 맞지 않는 사람들이 찾기도 한다. 나는 고1 과정을 수학의 정석으로 독학하고 있던 터라 고3 과정을 수업하는 대형 재수학원에 시험조차 볼 수 없었다. 6평 전에 진도를 마무리하고 대형 재수학원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아직 1월이었다.


여러 군데를 돌아보았지만 역시 중요한 건 접근성과 시설. 또 나는 진도가 특이한 케이스다 보니 단과 수강을 강요하지 않는 학원이어야 했다. 시설은 적당히 깔끔하기만 하면 됐다.

대부분 요즘 유행하는 스터디 카페나 전통적인 독서실과 비슷하다. 여기에 식당과 사무실, 강의실 몇 개가 더해진 형태다.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의 학원을 골랐다. 통학버스는 아침 6시 50분 등교, 밤 10시 하교. 일과는 단순하다. 등교해서 핸드폰을 제출하고 식사시간 외엔 자습. 자습시간엔 문제집을 풀던 인강을 듣던 자유다. 필요하다면 허락을 맡고 과외를 받으러 다녀와도 된다. 쉬는 시간에는 옥상에 올라가 잠시 쉴 수 있다.


자취방에서의 외로운 싸움을 끝내고 학원에 등록하니 기분이 새로웠다. 반수가 하나의 게임이라면 한 챕터를 마무리하고 새로운 챕터로 도입하는 느낌이랄까. 입시는 꼭 여러 중간보스를 거쳐 수능이라는 최종 보스를 쓰러뜨리는 게임 같다.


독학재수학원 분위기는 삭막했다. 어쨌든 재수학원이니까 치열한 사람들이 모인다. 나이대도 다양했다.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10대 중반부터 뒤늦게 한의대를 준비하는 30대까지. 학원 내에선 절대 정숙이라 그다지 서로 친해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고등학교를 막 졸업하고 재수를 결심한 고등학교 후배와 친해졌다. 매일 함께 점심을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었다. 같은 미술과 출신이었다. 대학은 어디를 가고 싶은지. 왜 재수를 하게 되었는지. 나는 왜 미술을 그만두었는지. 실은 그냥 오늘 밥 별로더라 같은 잡담을 제일 많이 했다. 하루 12시간을 독서실 책상에 앉아 공부만 하다 보면 숨이 막힐 때가 있다. 이를 공유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었다. 옥상에서 과자를 나눠먹으며 수다를 떨다 보면 숨통이 트인다. 쉬는 시간 단 10분뿐이라도.


또 검정고시를 준비하는 청년들이 있었는데 몇 번 대화를 나눠보긴 했지만 나와는 성격이 잘 맞지 않았다. 그냥 서먹서먹하게 지냈다. 그러던 어느 날 옥상에서 과자를 나눠주며 말을 걸어왔다. 언니는 여기 왜 오셨어요. 공부는 할만해요? 밥 맛없죠. 먼저 선뜻 말을 걸어준 게 고마웠다. 그 후로 간식 정도는 나눠 먹는 사이가 됐다. 포스트잇이나 샤프심도 흔쾌히 빌려주고. 고단한 하루 공부를 마무리할 때 인사하는 사이. 어차피 이 학원을 나서면 영영 안 볼 관계겠지만. 미묘한 동료애가 생겼다.


그런데 이상하지. 그날 집에 와서 기분이 너무 좋았다. 나눠받은 과자 한 점이 꼭 지금 잘 하고 있다는 응원 같았다. 별 생각 없이 예의상 건넨 간식이었을텐데. 잘 지내보자는 인사 같기도 해서 기뻤다. 누군가 다가와줬다는 사실 자체에 감동을 받았다. 바삭 바삭. 과자가 달았다. 나는 그리도 외로웠던 걸까.


빠다코코낫 우정, 2020, 핸드폰 드로잉

힘든 시절을 함께 겪으면 동지애가 생긴다고 한다. 학원 건물 편의점에서 산 과자로 이어진 은근한 우정. 비록 다시 볼 일은 없겠지만, 그날 당신의 작은 배려가 참 고마웠다. 덕분에 그 지친 하루를 버틸 수 있었다. 스쳐지나가는 인연이라도 서로에게 위로가 될 수 있구나. 당신에게 배웠다.


한 편의 여정을 완결지은 지금에야 말해본다. 고마웠어요. 당신이 건넨 빠다코코낫 한 봉지에 나는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위로받았답니다. 당신도 어딘가에서 꿈을 이루어 훨훨 날고 있기를. 단단하게 살아가고 있길 바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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