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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Jul 19. 2020

홍대 앞 자취방을 떠나며

정든 자취방아 안녕.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거야.

반수를 결심한 것이 10월 중순이니 아직 학기 중이었다. 당시 전공수업 하나가 조별과제가 있어 조별과제 발표까지만 마무리한 후 수업을 나가지 않았다. 이전 학기까지만 해도 풀 개근에 학점 4점대를 유지하던 모범생이었는데. 실기실에 있어야 할 시간에 자취방에서 공부하는 느낌이 묘했다.


혹시나 싶어 종강 날까지는 학교 앞에 머물기로 했다. 급한 일이 있어 부를지도 모르고. 같은 조 동기한테 이 이상 민폐 끼치고 싶지 않았으니까. 다행히 학교에서 부르는 일은 없었고, 그렇게 12월이 되었다.


당시 진도는 중학 수학을 모두 끝내고 수 1,2의 수학의 정석을 인강과 함께 듣던 때였다. 고등학교 1학년 과정으로 심화과정을 이해하기 위한 방정식과 도형의 기본. 수의 분류, 이차 함수 까지를 배운다. (지금은 교육과정이 바뀌었을 수도 있다.) 아직 과학공부는 시작하지 않았다. 먼저 수학 진도를 죽죽 빼는 게 우선이었다.



그러던 와중 찾아온 종강. 이제 떠날 때가 되었다. 원룸 주인아주머니께 다음 주에 나가겠다고 연락을 드렸다. 이번 달까지만 있을 거라 미리 얘기한 상황이었다. 아주머니는 내가 방을 예쁘게 꾸며서 졸업할 때까지 있을 줄 알았다고 아쉬워하셨다. 첫 자취였기에 설레는 맘으로 가구 하나하나 채워온 나만의 방. 저도 이렇게 일찍 떠나게 될 줄 몰랐어요. 인생 참 모르는 일이네요.


나는 혼자 있는 시간을 목숨처럼 사수하는 극단적 집순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집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나중에 더 길게 이야기하고 싶다. 어찌 됐건, 비록 반년밖에 머물지 않았지만 정꽤나 들었던 자취방을 떠나는 건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너는 중대사 같았다.


그날 밤, 학교 사이트에 들어가 휴학 신청 버튼을 눌렀다. 휴학 신청. 나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일인데. 클릭 몇 번으로 간단하게 끝났다. 사유를 장황하게 생각해 두었는데 쓰라고 하지도 않았다. '사유:기타'에 체크하고 휴학 신청 버튼을 누르면 끝이었다. 이제야 실감이 났다. 나는 고대하며 들어온 이 대학을 떠날 참이구나. 수년을 걸어온 길을 내버리는구나. 잘 된다는 보장도 없이. 쌓아온 것을 전부 내려두고서.


부디 이 선택을 후회하게 되지 않기를 바랐다. 첫 자취방에서의 마지막 밤이 그렇게 흘렀다.



자취방, 핸드폰 드로잉,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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