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보드카와 치즈

002. 취향

by 김유연

낯선 경험이 취향을 만든다. 겪어 봐야 내 것인지 아닌지 안다. 새로운 경험은 '나'를 알아가는 일이다.

보드카, 2020, 디지털 드로잉

얼마 전에 난생처음 보드카를 먹어 봤다. 친구가 챙겨 온 앱솔루트 라임. 맑아만 보이는 무색투명의 액체가 도수 40도짜리 술이라니. 뭐든 겉보기로는 모르는 법이다. 왜, 처음 접하는 술을 보면 병 생긴 것만 봐도 신기하고 궁금하지 않은가. 와인 같은 경우는 라벨도 가지각색으로 다양하니까 디자인 보는 재미도 있다. 앱솔루트 보드카는 깔끔하게 생겼다. 얼핏 보면 비싼 물 같기도 하고. 무색 유리병에 큼지막하게 ‘ABSOLUT LIME’이라 쓰여 있다. 라임 겉껍질 같은 초록색 글씨가 상큼하다.


두근두근. 이미 한참 와인을 마신 후였다. 살짝 취기가 오른 상태로 보드카 뚜껑을 연다. 호기심에 와인잔에 아주 살짝 따라봤다. 이거, 그냥 마시면 목 완전 따갑겠지? 냄새만 맡아보자. 독한 알코올 향기가 실험실에 온 것 같다. 러시아에서는 그냥도 마신다던데. 엄두도 못 내겠다. 그냥 탄산수 섞어 마시자.


어른이 되면 비싼 양주를 잔뜩 마셔볼 수 있을까? 고급 바에서 우아하게 위스키를 마시는 모습을 그려본다. 아직 학생 신분인 지금은 그다지 스스로가 어른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성인이 된 지는 한참 지났지만. 언제쯤에나 어른이 될까. 될 수는 있을까.


쓸데없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술 마시면서 별 생각을 다 한다. 그 사이 친구가 보드카 마시는 법을 검색했다. 보드카와 토닉 워터를 1:3 비율로 타고 레몬즙을 살짝 더한다. 제조된 칵테일을 받아 냄새를 맡아본다. 독한 향이 아까보다 덜하다.


안주는 과일이 잔뜩 들어간 고급 치즈. 치즈는 술이랑 참 궁합이 좋다. 무거움이라 해야 하나, 치즈 특유의 풍미가 술맛을 돋운다. 이상하게 안주로 먹으면 느끼하지가 않다. 서로가 서로를 보충한다. 와인이든 맥주든, 보드카든. 짭짤한 맛이 절묘하게 어울린다.


보드카 칵테일을 한 모금 홀짝였다. 코 안 가득 퍼지는 시트러스 향 아래 알코올 특유의 알싸함이 감돈다. 맛있다! 묘하게 달달한 맛도 섞여 있다. 칵테일 한 모금 마시고 치즈를 베어 무니 부드러운 달달함이 입안에 퍼진다. 향이 참 좋다. 솔직히 평론가처럼 맛을 묘사하진 못하지만 맛있다 맛없다 정도는 안다. 치즈랑 보드카, 환상의 조합이다. 서로의 달달함이 유쾌한 조화를 이룬다.


양주를 많이 마셔보지도 않았고 술맛도 아직 잘 모르지만. 맛있는 보드카와 치즈를 즐길 수는 있다.


뭐든 그렇지 않을까? 알면 더 많이 보이지만, 몰라도 즐길 수는 있다. 즐기고자 하는 열린 태도만 있다면. 낯선 만남을 두려워하기보단 설레하고, 새로움을 걱정하기보단 환영하고 싶다. 열린 마음은 수많은 경험을 받아들일 테고 수많은 경험 속에서 내 것과 내 것 아닌 것을 찾아갈 테다. 그렇게 취향을 찾아간다. 나를 만들어간다.


보드카와 치즈랑 함께한 밤이 깊어간다. 알쓰(알코올 쓰레기)라 많이 마시지는 못해도 색다른 설렘이 기분 좋다. 매일이 오늘만 같았으면. 좋아하는 사람들과 새로운 취향을 찾아가는 시간. 소중하고 소중한 젊음의 한 편. 이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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