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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Aug 01. 2020

책, 책을 읽읍시다. 산소 호흡기 같았던 독서

그 어떤 순간에도 삶은 살만 해야 하니까.

하루 12시간씩 공부만 하다 보면 인간성이 닳는다. 공부기계의 일상이 버거운 순간이 온다. 눈도 마음도 바짝바짝 마르고 만다. 단비가 필요했다. 학원 1층이 서점이었다.


나는 과외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자습시간 중간에 외출이 가능했다. 과외수업이 끝나고 바로 들어가지 않고 서점을 들렸다. 얼마 만에 맡는 책 냄새인지. 물론 문제집 냄새야 매일 맡고 있지만.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다. 최신 도서 코너와 베스트셀러 목록을 둘러본다. 행복하다. 원래 혼자 서점에 가서 천천히 둘러보는 게 취미다.  


앗. 그런데 너무 오래 밖에 있으면 혼난다. 얼른 하나 골라서 돌아가야지. 책을 고르는 기준은 제목과 목차. 혹은 그냥 마음이 끌리는 것. 표지가 취향인 책도 소장욕구를 자극한다.


아무래도 공부 중이니까 자기 계발서처럼 보이는 책을 골랐다. 그런데… 욕 할 거니까 책 이름은 적지 않으련다. 자기 계발서가 아니라 심리학 책이었는데, 도통 공감이 가질 않았다. 사례 두 개 정도 소개하고 일반화를 시키는데 논리의 비약이 너무 심해서 화가 나는 거다. 이런 책이 베스트셀러라니! 이해할 수가 없었다. (이 책은 나아아중에 알라딘 중고서점에 팔았다.)


첫 번째 시도는 실패다. 그래도 오래간만에 문제집 아닌 책을 봐서 나쁘지만은 않았다. 이번엔 집에 있는 책 중에 찾아볼까. 오빠 방 깊숙한 곳 책장을 살핀다. 《닥터 노먼 베쑨》. 의사에 관한 책인가? 나 의사 될 건데. 이걸로 하자.


아침 자습을 시작하기 전, 남은 점심시간, 계획한 하루 공부 분량을 끝내고 남은 시간에 틈틈이 책을 읽었다. 공부가 집중이 안 될 때 잠깐 읽기도 했다. 독서도 정신적 에너지를 꽤 소모하는 활동이다. 글 읽는 게 힘들어지면 공부로 바꾸고, 공부가 힘들어지면 책을 봤다.  


하루가 훨씬 재밌어졌다. 공부가 아예 재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사람이 어떻게 한가지 일만 하고 살겠는가. 잠깐잠깐 책에 몰입해 닥터 노먼 베쑨이 되는 순간들이 생겼다. 노먼 베쑨은 캐나다 출신 흉부외과 의사다. 폐결핵 치료를 위한 혁신적인 접근법을 개발했으며 중일전쟁 때 중국으로 의료봉사를 가 참된 인도주의자의 삶을 산 역사적인 인물이다. 왜 이 책이 우리 집에 있었던 걸까. 그리고 왜 지금 알았을까! 순식간에 한 권을 다 읽었다.


구체적인 책 리뷰는 나중으로 미루고. 공부만 하기도 바쁜 와중에 취미를 즐겨도 괜찮았을까. 때론 책이 너무 재밌어서 공부에 방해되는 순간들도 없지는 않았지만, 대체로 효과는 긍정적이었다. 일상에 생기가 생겼고 책을 읽고 나면 집중도 더 잘 됐다. 무엇보다 좀 더 하루가 살 만 해졌다. 아주 중요한 변화다. 내가 의대 가려고 아무리 공부만 한들 당장이 끔찍하고 불행하기만 해서는 안 되는 거다. 반수 중인 삶도 삶이니까. 내 삶의 소중한 하루하루니까. 내가 살만 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독서는 숨 막히는 일상의 산소 호흡기가 되어 주었다. 이후에도 1년 동안 많은 책을 읽었다. 자기 계발서, 소설, 인문, 등등. 입시 중이라고 해서 꼭 먹고 자는 시간 외에 100퍼센트 공부만 할 필요는 없다. 숨 쉴 시간도 필요하다. 이건 장거리 레이스니까. 그 어떤 순간에도 삶은 살만 해야 하니까.


Book, 2020, 디지털 드로잉


아래는 그 해 스터디 플래너에서 건져 올린 책에 대한 메모들. 생각보다 많지는 않네.
1월 8일
:'쉴 때 읽은 책을 마련하는 것도 좋을 것 같다.'
4월 6일
: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를 조금 읽어봤는데, 글을 출판할 수 있으려면 여러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공감될 수 있거나 도움이 되는 내용이어야 하는 것 같다. 그저 내 감상을 적은 것 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다수에게 적용 가능한 시대에의 통찰과 조언이 필요하다. '
9월 23일
: '"관습적으로 생각하고 사는 것은 내 인생에 주어진 즐거움과 기화, 마법 같은 순간을 놓치는 일이다.” “산다는 건 그런 것이다. 가슴 아프고, 영혼을 치유하고, 놀랍고, 지독하고, 평범한 것이다. 그리고 숨이 멎을 듯이 아름답다.” - 《5초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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