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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Aug 26. 2020

산책의 쓸모

아무 생각 없이 걷는다는 축복

산책자, 2020, 디지털 드로잉



아무 생각 없이 걷기를 좋아한다. 집 밖을 나서도 될 정도로만 옷을 대충 입고는 근처 강변을 걷는다. 사실 아무 생각 없이 걷는 건 아니다. 걸으면 온갖 잡다한 생각이 떠오른다.


오늘은 뉴스에서 이런 일이 있던데. 솔직히 말이 안 되는 것 같아. 그런데 어쩌겠어.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뭐. 그나저나 친구 OO은 뭐하고 살까. 연락할 때가 됐는데. 근데 오늘 하늘 정말 예쁘다. 덥긴 해도 나온 보람이 있네. 남은 방학 동안 뭘 해야 가장 효율적으로 시간을 보낼 수 있을까. 책을 읽을까. 알바로 조금이라도 벌까. 아님 이 시국에 그냥 집 안에만 있을까. 어쩌고저쩌고.


생각에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산책 나오기 전 하던 고민을 끌고 와서 하기도 하고. 나를 괴롭히는 생각들이 한꺼번에 휘몰아치기도 한다. 그럴 땐 노래를 듣는다. 귀에 이어폰을 끼고 하염없이 걷다 보면 마음속으로 노래를 따라 흥얼거리고 있다. 그제야 생각이 멈춘다. 어느새 강을 지나 저수지에 도착했다.


아주 잠시라도 생각이 멈춘다는 건 축복 같은 일이다. 하루에 얼마나 많은 생각을 하고 사는가. 때론 너무 많은 생각에 압도당하지는 않는가. 고민은 괴롭다. 그러나 생각은 멈춘다고 멈춰지지 않는다. 그러니 아주 잠시라도 머리를 깨끗이 비우고 오롯이 현재에 머무를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축복이겠는가. 산책은 그런 축복을 부른다. 걷고 걷다 보면 다다르는 무아지경의 경지. 아무 생각 없이 발을 내딛는 순간. 내 머리는 비로소 텅 비고 나는 오로지 현재에 산다. 카르페 디엠.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는 "나는 걸을 때 명상을 할 수 있다. 걸음이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정신은 오직 나의 다리와 함께 움직인다" 라 하였다.


맞는 말이다. 무수한 생각에 빠져 걷고 또 걷다 보면 그 많던 생각이 어느새 자취를 감춘다. 오로지 걷기에 집중하는 시간을 지나고 나면 머리가 맑아진다. 루소의 말대로 걷기는 명상과 비슷하다. 명상도 자기 생각을 다스리기 위해 머릿속을 텅 비우지 않던가. 걷기에 집중하며 잡생각을 몰아내는 일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잡생각이 없으니 미래를 걱정하지 않고 과거를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이 순간에만 몰입한다. 산책의 쓸모는 곧 '카르페 디엠(carpe diem), 지금 이 순간에 충실하라'라는 말로 정의된다.


19세기 독일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는 "진정 위대한 모든 생각은 걷기에서 나온다"라고 하였다.


요즈음 이런저런 일들로 한숨 나는 날들이다. 마스크 쓰느라 답답하고, 사람 만나기도 걱정된다. 그나마 탁 트인 곳에서의 산책이 안전한 활동에 속한다. 그러니 날씨가 좋은 날에는 잠시 나가 고개도 좀 돌려보고, 스트레칭도 해 보고, 무작정 걸어보면 어떨까. 하늘을 보며 사색에 잠기기도 하고, 무아지경으로 걸으며 생각을 없애봐도 좋다. 적어도 기분전환이라도 될 것이다. 물론 마스크는 꼭 써야겠지만.


비바람이 지나고 나면 언젠가 햇빛 쨍쨍한 날이 오기 마련이다. 나는 그런 날이 오면 산책을 하련다. 걷고 걸으며 현재를 살련다. 모든 생각을 없애고, 정신을 쉬게 해 주련다. 걷기는 축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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