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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Aug 29. 2020

꽃집 단골

"오랜만에 오셨네요."

꽃다발, 2020, 디지털 드로잉

오래간만에 외할머니를 뵈러 갔다. 위험한 시국이지만 지금이 아니면 도저히 기회가 오지 않을 것 같았다. 가까운 서울에 계신데도 자주 찾아뵙지 못해 죄송하다.


출발 전 동네 꽃집에 들려 꽃다발을 샀다. 그런데 가게 앞에서 인사를 드리니 나를 알아보신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 그렇게 자주 온 것도 아닌데. 깜짝 놀라서 웃음으로 답했다. 감사했다.


먼저 온 손님이 계셔서 잠시 기다려야 했다. 생화 냉장고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색의 꽃들을 구경했다. 안개꽃과 장미 외에는 전부 이름 모를 꽃들. 분홍, 노랑, 보라, 하양의 조화가 화사하다. 할머니는 화사한 걸 좋아하시니까, 가능한 알록달록하게 만들어달라고 부탁드려야지. 좋아하셨으면 좋겠다. 완성될 꽃다발의 모습을 마음으로 그려본다.


전에 몇 번 같은 꽃집에서 꽃을 산 적이 있다. 애인 줄 꽃다발, 친구 줄 꽃다발, 이사하는 친구를 위한 작은 다육식물. 오늘은 할머니께 선물할 화사한 꽃다발. 꽃은 참 기쁜 선물이다.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기분이 좋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한결 밝아진다. 


게다가 꽃집 주인분께서 나를 알아봐 주시니 얼마나 기뻤는지. 이렇게 사소한 것에도 마음이 벅차오르곤 한다. 할머니께 선물드린다고 하니 작은 주황색 꽃을 더 얹어주신다. 샛노란 해바라기를 중심으로 한 작고 밝은 꽃다발. 축복 같은 꽃다발을 통해 감사와 사랑을 전한다. 나는 주인께 꽃이 아닌 축복을 받았다.  


오랜만에 오셨네요, 겨우 그 한마디에, 나는 꽃집 단골이 되었다. 시인 김춘수의 시가 생각난다.

꽃   - 김춘수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는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우리들은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잊혀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되고 싶다.  

우리는 모두 무엇이 되고 싶다. 당신에게 의미 있는 존재가 되고 싶다. 꽃집 주인께서 나를 불러 주셨을 때 나는 '꽃집 단골'이 되었고, 그 순간 그 꽃집은 나에게  의미 있는 '단골 꽃집'이 되었다.


이 작은 알아챔, 작은 인사가 의미 있는 관계를 만들었다. 멋진 일이다. 너무나 사소해서 잊고 살기 쉽지만, 인사는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와 같다. 이름을 불러주는 일은 몸짓을 꽃으로 만드는 행위다. 가끔은 기억하고, 신경 쓰고, 이름을 불러주자. 그대는 누군가의 꽃이 되리라. 누군가는 당신의 꽃이 되리라. 오늘 나는 꽃집 단골이 되었고 꽃은 할머니께 사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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