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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Sep 09. 2020

보이차 한 잔과 수요일 밤의 꿈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꿈은 막연하기만 해

글을 꾸준히 쓰기는 참 어렵다. 매일매일 쓸 거리가 생각나는 것도 아니고, 쓰고 싶은 내용은 있지만 몸이 영 따라주지 않을 때도 있다.


최근 몸도 마음도 많이 힘들었다. 아픈 건 아니었지만 자연의 부름, '그 날'이 유독 강렬하게 오는 바람에 삼일을 꼬박 누워 지냈다. 지독하게 무거운 우울감은 덤이었다. 아직 이불을 덮기엔 더운 날씨인데도 담요 밑으로만 파고들었다. 일어나기가 힘들었다.


그렇게 며칠을 누워 지내니 글을 쓸 의욕이 떨어져 버렸다. 핑계일까. 진정 글 쓰는 이라면 힘든 일도 아픈 일도 글로 승화시키고 말 텐데. 나는 아직 그 정도 깜냥은 아닌 모양이다.




오늘은 그나마 컨디션이 좀 낫다. 일어나서 책도 읽고 집도 치웠다. 나름대로 생산적인 하루를 보냈다. 새로운 목표도 한 가지 정했고, 고양이랑 사냥 놀이도 열심히 했다. 저녁은 가볍게 요거트로 때우고 다락방에 올라가 새로 주문한 책을 펼쳤다.


아이보리 소파에 기대어 꿈에 관한 책을 읽었다. 책이 말한다. 이리저리 기웃거리는 어설픈 도전은 꿈을 얕보는 일이니 꿈을 진지하게 대해야 한다. 꿈의 진정한 의미란 되고 싶은 자신이다. 마침 이리저리 이것저것 가볍게 기웃거리던 참이었는데. 조금 혼난 기분이다. 그렇다면 무엇을 꿈꾸며 살아야 할까? 어떤 게 진지한 걸까? 내가 꿈꾸는 나 자신은 어떤 사람일까. 내가 진짜로 원하는 건 뭐지. 새삼스레 되묻게 되었다. 정말 새삼스럽게.


내 꿈. 평범하다. 아름다운 집과 서재를 갖는 것. 천장까지 닿는 높고 중후한 원목 책장에 빼곡히 책이 꽂혀있고 바닥에는 직접 골라온 페르시안 카페트. 창문으로 비스듬히 비쳐오는 햇빛에 떠다니는 먼지가 무늬를 이룬다. 의 서재를 상상하는 건 언제나 즐겁다.


그러나 이는 물질에 관한 것이지 어떤 내가 되고 싶은 지에 대한 대답은 아니다. 단순히 아름다운 서재를 위해서라면 필요한 것은 돈뿐이니까. 나는 그저 돈을 많이 벌고 싶은 걸까? 그것뿐일 리는 없는데.


잘 모르겠다. 생각을 했더니 허기가 진다. 뭔가를 먹기엔 늦은 시간이라 보이차를 한 잔 끓였다. 구수하고 살짝은 씁쓸한 맛. 카페인이 있어 많이 마시면 잠을 못 자겠지만 오늘은 왠지 그냥 보이차가 생각났다.




사실 보이차 한 잔 만으로도 행복해질 수 있는데. 나는 무엇이 그리도 고파서 끊임없이 책을 읽고 시도를 하고 공부를 하는 걸까. 적당히 편하게 살아도 좋을 텐데. 평생 높은 목표를 세우고 쉼 없이 달리는 일을 반복해왔다. 성취에서 삶의 의미를 찾았다. 치열하게 사는 것만이 정답이라 여겼다. 하지만 가끔 버거움을 느낀다. 때때로 멈춰 서서 따듯한 차를 마시며 꿈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길을 잃고 말 것 같다. 이 모든 노력과 성취의 의미를 잃어버릴 것만 같다. 그런 건 생각만 해도 무섭다.


답을 찾으려고 책을 읽었는데 질문을 찾아버렸다. 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보면 언젠가 답을 알게 될까? 갈팡질팡 질문 속에 파묻혀 고민하는 사이 시간이 전부 사라져 버리면 어쩌지?


모든 질문에 대한 해답이 이 보이차처럼 깔끔하고 구수하면 좋으련만. 세상은 온통 복잡한 것 투성이다. 어쩔 수 없다. 잘 모르겠는 건 잘 모르겠는 채로 남겨두는 수밖에. 내가 준비가 될 때 답이 나를 찾아오리라. 모든 만남에는 때가 있으니까. 오늘은 그냥 이 안락하고 조용한 밤을 보이차 한 잔으로 넘기련다. 그냥, 지금은 그 정도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 같아서. 그렇게 두련다.


보이차, 2020, 디지털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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