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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Sep 12. 2020

혼자 가는 전주 서점

혼자라서 좋은, 혼자라서 싫은.

충동적으로 전주에 다녀왔다. 이전부터 가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꼭 오늘일 필요는 없었는데. 날씨가 너무 좋았다. 사회적 거리두기도 할 겸 아무도 부르지 않고 혼자 다녀왔다. 혼자 여기저기 다니는 게 좋다. 혼자면 모든 걸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으니 여유롭고 편하다.


전부터 전주에 가려고 생각했던 건 가장 가까운 알라딘 중고서점이 전주에 있기 때문이었다. 나는 알라딘 중고서점 플래티넘 회원이다. 올해 럭키백도 구매하여 할인 혜택을 받고 있다. 그래서 가능한 책을 살 때는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산다. (럭키백 할인 : 만원 대 에코백을 사면 이후 1년 동안 알라딘 오프라인 중고매장에서 책을 살 때 20%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 할인액은 총 50,000원까지 가능하다. 20% 할인이니까, 결국 5만 원 할인을 모두 받으려면 25만 원어치 책을 사야 한다.)


암튼 이른 아침에 충동적으로 전주에 가야겠다 결심을 하고 기차 시간을 알아봤다. 저렴한 무궁화 호는 3시간 후에나 출발한다. 그냥 시외버스를 타고 가기로 결정했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니 책 좀 읽다 보면 도착할 것이다.


전주 가는 길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하늘이 넓디넓다. 나오길 잘했다. 갑갑했던 마음이 조금이나마 트이는 것 같다. 갈 때 읽으려고 책을 가져왔는데 창 밖 구경하다 졸다 하니 책 읽을 새도 없이 도착해버렸다.



 

전주 시외버스 공용터미널


잘 모르는 동네는 걸어 다니며 구경하는 걸 좋아한다. 오늘의 최종 목적지는 전주 객사길에 있는 알라딘 중고서점. 지도 앱에 검색하니 터미널에서 걸어서 30분 거리밖에 안 된단다. 그냥 걸어가다가 밥도 먹고 해야겠다.


마침 가는 길에 콩나물 국밥집이 있어서 허기를 채웠다. 맛있는데 친절하기까지. 전주에 대한 호감도가 쑥쑥 올라간다. 그저께 과음했던 기억까지 말끔하게 씻어주는 개운함이다.


배를 채우고 걷고 또 걸어서 드디어 도착한 알라딘 중고서점. 이것 때문에 오늘 시외버스를 탔다. 왜 우리 동네엔 알라딘이 없는 건지, 툴툴. 책세권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알라딘 중고서점 전주점


책을 좋아하지만 원하는 만큼 읽기엔 책값이 부담된다. 중고서점은 그런 나 같은 사람에게 딱이다. 물론 작가와 출판사, 출판 시장을 위해서라면 새 책을 사는 게 좋겠지만, 당장 그렇게 했다가는 내 가계가 폭삭 내려앉고 말 것이다. 나중에 부자 되면 새 책만 읽고도 싶다.


오늘의 목적지인 알라딘 중고서점 전주점 내부는 넓고 깔끔하다. 사실 알라딘이야 워낙 유명한 체인점이니까 당연히 말끔하리라 기대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더 규모가 있다. 이제부터 재밌는 시간이다. 아동 코너를 제외한 모든 책장을 샅샅이 훑는다. 나의 마음을 휘어잡는 책을 만날 때까지 모든 책등의 제목을 빠르게 살핀다.


내가 책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보다도 책의 '매력'이다. 물론 당장 필요한 지식이 있다면 이를 제공하는 책을 찾게 되어있지만, 꼭 필요한 책이 아니더라도 책이 충분히 매력적이라면 그 매혹을 뿌리칠 수가 없다. 결국 9권이나 골라 버렸다. 원래 목적이었던 경제경영 및 재테크 분야는 4권뿐, 나머지 5권은 책의 매력에 홀려서 산 책들이다.  


알라딘 중고서점 전주점 내부



혼자 9권이나 되는 책을 두 봉투에 나눠 들고 낑낑대며 돌아오는 길. 이번에는 버스가 아니라 무궁화호를 탔다. 덜커덩 덜커덩 달리는 기차 안에서 책을 펼친다. 오랜만에 탄 무궁화호는 기억보다 빨랐다. 기차 안에서는 이렇게나 속도가 빠르게 느껴지는데 이제는 KTX나 ITX에 비해 한없이 느리다고 여겨지는 기차라니. 조금 쓸쓸함을 느낀다.



무궁화 호 기차


혼자, 혼자. 혼자. 혼자 여행. 버스도 혼자 타고 밥도 혼자 먹고 책도 혼자 고르고 기차도 혼자 탄다. 이따 역에서 집까지 갈 때도 혼자겠지. 혼자라는 말은 약간의 우수를 품고 있다.


요즘 뭐든 혼자에서 만족감을 찾는 게 유행이다. 그만큼 타인과의 관계에서 피로를 많이 느낀다는 뜻일 것이다. 나 역시 자발적으로 혼자 있기를 택할 때가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끼는 이 미세한 공허함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달리는 기차 안에서 창 밖 풍경을 구경하며 기분 좋게 조는 순간을 누군가와 공유할 수 없다는 아쉬움일까. 오롯이 나 혼자 즐기는 시간이라는 만족감도 분명히 존재하지만. 그 아래에 서늘하게, 미묘하게, 얇디얇은 우울이 자리하고 있다. 이상하지. 이렇게나 재밌게 놀고 왔는데. 책도 잔뜩 샀는데. 걷기도 많이 걷고 시원한 공기도 마음껏 쑀는데.



 


답을 잘 모르겠는 건 모르겠는 채로 남겨둘래. 어쨌든 오늘은 잘 놀았으니 괜찮잖아. 게다가 집에 새 책이 9권이나 들어왔다. 그만큼 내 시간이 책으로 쌓여가겠지. 독서는 혼자이기에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대화. 그러니 외로울 것도 우울할 것도 없다.



흔한 나무의 말, 2020, 디지털 드로잉

돌아오는 길에 그림을 그렸다. 너는 혼자인 나무다. 혼자인 채로 자유롭고 만족스럽고 완전한 나무다. 우아하고 아름답게 자리를 지키는. 자연스럽고 강한. 너 스스로인 나무.


너는 전주 가는 길 넓은 하늘 아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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