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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Oct 03. 2020

쉽게 우울한 사람은 자기 탓을 해

실망과 자기비하

나는 생리 직전에 유독 우울하다. 호르몬 때문이라고 아무리 되뇌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이런 날엔 꼼짝없이 우울에 붙들려 있는 수밖에 없다.


낮에 올린 블로그 글이 형편없어 보인다. 초라한 조회수에 실망감이 가슴을 채운다. 잘난 사람과 나를 비교한다. 곁을 내어주지 않는 고양이가 야속하고, 집안은 좁고 답답하다. 그냥, 뭐든지 다 귀찮고, 싫다.


그중에서도 제일 싫은 건 실망스러운 자신이다. 왜 더 잘하지 못할까, 왜 더 탁월하지 못할까. 왜 아까는, 이게 생각이 안 났을까. 그런 바보 같은 실수를 왜 했을까. 그 사람도 나한테 실망했을 거야. 나는 왜 사람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지 못할까. 평생 이럴까? 나는 왜 이리도 무능할까. 나는, 나는, 왜?


객관성을 잃고 추락한다. 우울은 몸뚱이를 끌어내리는 무쇠 추처럼 무겁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자기 비하에 기분이 엉망진창으로 망가진다. 아, 어쩌면 좋아. 초콜릿을 먹어도 나아지지를 않네.


우울한 날에는 스스로의 못난 점만 보인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신감에 넘쳐 일을 벌이던 자아는 풀이 죽어 있다. 부정적 피드백에 파르르 떠는 눈꺼풀이 퍽 가엽다. 아니, 역겹다. 스스로를 불쌍하게 여기는 일이 어찌 가여워 보이겠나. 꼴사나울 뿐이지. 또 자신에게 비난을 퍼붓는다. 그따위로 살지 말라고. 일어나서 뭐라도 하라고. 책을 읽던, 유튜브를 보던, 글을 쓰던. 어찌 됐건 우울은 나아지지 않는다.


사실 알고 있다. 나는 열심히 살고 있고, 그리 못나지도 않았다. 누구나 자기 삶의 속도가 있고, 나는 나의 속도대로 살면 그만이다. 남이 어떻게 살건, 나를 좋아하던 좋아하지 않던, 나는 나고, 그거면 된다.


그런데 우울한 날에는 내가 분명 알고 있었을 '사실'들이 힘을 잃는다. 가끔은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원해서 우울이 찾아오는 건 아닌가. 스스로가 형편없다고 믿고 싶은 건 아닌가. 그래야 그냥,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라고 노력하지 않고 합리화할 수 있으니까.


악순환의 바퀴가 한 바퀴를 다 돌기 전에 멈춰야 한다. 더 깊은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다들 바퀴를 멈출 때 어떤 수단을 쓸까? 산책을 하려나? 맛있는 요리? 글을 쓰거나 읽을까? 친구들을 만나 수다를 떨려나? 아니면 어쩌면, 우울의 바퀴가 아예 돌지 않는 사람도 있을까?


나도 그런 사람이면 좋으련만. 우울의 바퀴가 아예 존재하지 않거나, 한참 전에 작동을 멈춘 사람 말이다. 그럼 삐그덕 대며 돌아가는 바큇살에 마음 다칠 일도 없을 텐데.


우울, 2020, 디지털드로잉


아, 이 우울이, 달달하고 아삭한 아이스크림 한 개 먹는 것 만으로 달달하게 녹아내린다면, 얼마나 세상 살기가 편해질까.


행복해질까. 이유 없이 슬프지 않을까. 누군가를 원망하지 않게 될까. 나를 사랑하게 될까. 만족하게 될까. 자유로울까. 그저 나 자신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그나마 호르몬이 건넨 우울이라 다행이다. 끝이 있다는 걸 아니까. 지금은 그저 버텨내는 수밖에.


당신의 밤은 우울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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