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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유연 Nov 08. 2020

사는 게 힘들 때, 노력이 지칠 때

내려놔야 할 것이 있다.

오랜만에 브런치에 글을 쓴다. 요새 너무 바빴다. 너무 많은 일을 한꺼번에 벌여 놨다. 돈이 좋았다. 돈이 없는 나 자신이 싫었다. 학생이라고, 없는 게 당연하다고 핑계 대기 싫었다. 그래서 마구마구 일을 벌였다. 기회로 보이는 일을 전부 붙잡았다. 블로그를 시작하고 스마트 스토어를 만들고 공모전에 출품할 글을 썼다. 하루가 48시간이라도 모자랐다. 게다가 시험기간이었다.


인정받는 게 좋았다. 대단하다는 말을 듣는 게 좋았다. 그러면 진짜로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아서. 그런 착각에 빠질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그래서 더 열심히 했다. 다른 사람이 나를 봐주는 게 기뻐서. 나를 알아봐 주는 게 기뻐서. 가끔은 나 자신을 위해서보다도 남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 사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결국 나를 위해 하는 일들이니까. 내가 발전하는 일이니까. 그러려니 했다. 그렇게 벌려 놓은 일이 하나둘씩 늘어났다. 더 이상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열심히 사는 게 나쁜 게 아니다. 발버둥 치는 게 나쁜 게 아니다. 아등바등 사는 게 나쁘지 않다. 그러나 벌려놓은 일을 수습하기 어려울 만큼 버거워지면 문제가 된다. 사는 게 힘들어지고, 노력에 회의감이 들고, 성과가 나지 않는 자기 자신에게 실망하고, 힘이 빠진다. 오늘만 해도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다. 해야 하는 일이 수없이 쌓여 있다는 생각에 마음이 초조하고 무겁다.


그렇게 과제와 타인의 인정을 위해 살다 보면 자기 자신이 사라진다. 목적과 여유를 하루하루를 살아가기에 급급하다. 결국엔 무엇 때문에 이 일들을 벌였는지가 희미해진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숨을 못 쉴 것 같다. 버거워. 나도 사람인 걸. 시간표를 만들고 그대로 지키기만 하면 모든 일을 해결할 수 있는 기계나 마법사가 아닌 걸. 그러니까 변해야 해. 무거운 짐 더미 속에서 무언가 하나는 내려놓아야 했다. 


그래서 타인의 인정을 내려놓기로 했다.





그야 일단 시작한 일을 내려놓을 순 없는 노릇이다. 스스로 선택한 일이니 끝까지 해내야 한다. 그건 각오하고 시작한 일이었다. 일하는 것 자체는 괜찮다. 하지만 일 자체가 아닌 일로써 타인에게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은 꼭 필요한 것도 아니면서 지나치게 무겁고 아프다. 


'나는 그렇게 강한 사람이 아닌데. 그렇게 대단한 사람도 아닌데. 사실 그렇게 부지런하지도 않아. 그런데 남들이 나를 그렇게 보면 정말 그렇게 돼야만 할 것 같아. 그러지 못하면 나한테 실망할 것 같거든. 누군가가 나한테 실망하는 게 죽도록 무서워. 공포스러워.'


얼마 전에 친구랑 시험공부를 하다가 힘들다고 투덜댄 적이 있다. 그랬더니 친구가 하는 말이, "언니도 그래? 왠지 언니는 시험기간에도 안 힘들 것 같아"라고 하는 거다. 친구야 별 뜻 없이 한 말이었겠지만 왠지 모르게 가슴 깊숙이 다가왔다. 내가 그렇게 보였나. 힘들어 죽을 것 같았는데. 너무 힘들고 우울했는데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았나 보다. 처음에 드는 생각은 묘한 기쁨이었다. 내 힘듬이 드러나지 않는다는 생각에. 겉으로 보기에는 괜찮다는 생각에. 저들이 나에게 실망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말이다.


그런데 생각을 곱씹다 보니 상대가 보는 모습에 지나치게 연연하는 스스로가 비참해졌다. 남한테 잘 보이고 싶다는 생각에 힘듦을 드러내지조차 못하는 자신이 안타까웠다. 안 그래도 힘들고 지치는데, 너무 버거운데, 힘듦을 나눌 수도 공유할 수도 없는 사람이구나. 스스로의 약점을 내보이는 게 무서워서 혼자 곯고만 있는 사람이구나. 어쩌면 나는, 스스로가 그리도 싫어하는 허세만 가득한 사람이었나.




일을 벌여도 좋다. 도전하는 것도 좋다. 그러나 그 도전은 남이 아닌 자기 자신을 위한 일이어야만 한다. 그래야 진정으로 즐겁게 최선을 다할 수 있다. 인정받고 싶고 잘 보이고 싶은 마음은 안 그래도 피곤한 삶의 고난을 배로 증식시키는 원흉이다. 삶이 지치고 힘들 때, 노력에 회의감이 들 때 가장 먼저 내려놓아야 할 짐이다. 


머리로 안다고 마음으로도 아는 건 아니지만. 인정받고 싶은 욕구를 내려놓겠다고 결심한다고 모든 게 바로 해결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스스로를 바꿔보려 한다. 타인의 인정보다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나오는 동기부여를 따라 움직이고 싶다. 타인의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싶다. 그저 굳건하게 나 자신으로써 단단하게 노력하고 싶다.


그럼 삶이 지치고 피곤해도 견딜만할 것 같다. 나는 나를 믿으니까. 오로지 나를 위해 시작한 일이니까. 나를 위해 완수해야 할 일이니까.


힘들고 지치는 날에도 이 모든 게 스스로의 성장을 위한 일이라 믿는다. 오로지 스스로의 기준에 따르련다. 흔들리지 않으련다. 단단하련다. 


노력의 이유, 2020, 디지털 드로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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