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호/5] 피사로

by 심성훈


최근 읽은 책들에서 유난히 눈에 띄는 이름이다. 피사로는 유명한 인상주의 화가니까 미술 관련 책이라면 어느 책에서든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이름이지만, 언급된 맥락들이 인상적이다.한 번은 고갱 평전에서, 또 한 번은 존 버거의 산문에서 언급되는데, 두 번의 언급 기저에 놓인 맥락이 피사로의 작가적 성품을 말해 주는 듯하다.

고갱 평전에서는 황량한 파리 변두리의 풍경에 애정을 갖고, 자신에게 소중하게 느껴진 것들을 그린 작가로 언급된다. 인상파 화가들의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는 설명에서도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정작 고갱에 관해 읽으면서는 돈키호테 같은 성정과 분별력 없는 행태에 멀미가 날 지경이었는데, 그 바람에 겨우 한두 문장 등장한 피사로가 더 기억에 남았다.

존 버거는 오랜 벗이자 화가였던 스벤 블룸베리의 장례식에 참석했던 일을 회상하며 피사로를 언급한다. 스벤 블룸베리는 생전에 ‘위대한 화가이면서 또한 훌륭한 마음을 지니고 있었던 피사로의 선례’를 소중히 여기며 살았다고 한다.

평생 그림을 그렸던 작가가 외부의 인정이나 평가와는 무관하게, 오래전 세상을 떠난 어떤 화가의 마음과 자기 마음을 연결해서 삶과 작업을 꾸리며 살았다는 사실이 먹먹한 감동을 전해 준다.

피사로나 스벤 블룸베리로부터 떠올리는 것은 고귀한 인내심과 성실함, 작가로서의 진솔함이다. 무수한 삶의 스펙트럼을 감지하면서 자기 속도의 발걸음을 지속하는 이들의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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