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3일, 대구미술관에서 열리는 허윤희 선생님의 이인성미술상 수상자전 개막 행사에 다녀왔다. 작년에 시상식에 다녀온 이후 1년 만이다. 상을 받은 작가는 1년간 전시를 준비해서 수상자전을 진행하는데, 작년으로부터 지금까지의 시간이 가늠되지 않아 마치 어제에서 오늘로 이행했는데 전시가 하루 만에 생겨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전시장에 들어서고 작품들을 마주한 순간 엄청난 시간의 파도가 밀려들었고, 그것은 기분 좋은 압력으로 나를 휘감았다.
허윤희 선생님과 인연이 닿은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흐른 것 같다. 선생님의 목탄 그림들 앞에서, 부서져 있던 나의 마음들이 서로를 부르며 다시 꿰맞춰 졌던 날들이 기억난다. 선생님도 서울에서 제주로 이주하시는 과정에서 작가로서 여러 번민과 고민을 하고 계셨는데, 이번 전시와 작품들에서 힘들었던 시간이 무색하리만치 빛나는 순간의 아름다움과 충만함, 영혼의 건강함을 느꼈다.
많은 미술이나 예술 작품들이 영혼의 치유, 위로를 말하긴 하지만 실제로 그런 일과 능력이 온전히 발휘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창작자, 곧 발신자가 온전히 그 안에 담겨 있어야 할뿐더러 수신자들도 열린 몸과 마음으로 작품과 대면해야 하는데, 그런 오묘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드물기 때문이다.
이번 수상자전에 앞서 지난여름 성북구립미술관에 있었던 선생님의 전시에서 그런 놀라운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해돋이 그림으로 가득 찬 방이었는데 이전에도 같은 작품들을 봐왔지만, 이때는 뭔가 달랐다. 수평선 너머로 각자의 빛으로 떠오르고 있는 둥근 해의 이미지들이 사방을 둘러싸고 나를 향해 있는데, 순간 과거의 나를 짓누르던 돌덩이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몇 년 전 힘든 시간을 보낼 때가 있었다. 아침마다 눈을 뜨면 가슴팍 위에 거대한 돌덩이가 올라와 있는 것 같았다. 자기 전에는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뜨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었다. 지금 돌이켜보면 우울증 증상인데 그때는 그런 줄도 몰랐다. 일 년에 가까운 시간을 그렇게 보냈다. 다행히 어두운 터널을 잘 지나왔고, 이제는 훨씬 건강해졌지만, 아직도 그 시기를 생각하면 암담하다. 그런데 선생님의 전시에서 아침 해를 통해 그때의 돌을 봤던 거다. 저 태양은 새로운 희망을, 꿈과 도전을 말하고 있는데, 어떻게 나의 시꺼먼 돌덩이가 저 위에 겹쳐 보일 수 있었을까. 내 포기와 절망, 낙담의 돌덩이가 점점 밝아지더니 환한 빛이 되고 있었다.
"아, 빛과 어둠, 희망과 절망, 그것은 서로 겹쳐 있는 것이구나. 해가 비추고 있는 달처럼 보이지 않는 앞뒷면을 갖고 존재하는 것이로구나. 저 해는 달이 될 수도 있고, 돌이 될 수도 있다."
비가 많이 오던 그날, 성북구의 물기 가득한 언덕에서 나는, 조금 울었고 편안했다.
해돋이는 날마다 다른 풍경이다. 어제와 같은 날은 없다. 앞으로 다가올 날들도 마찬가지다. 내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죽음을 충동질하는 돌덩이인지, 새날을 기약하는 태양인지, 무던히 바라본다. 이제 나에겐 전환할 힘이 있다. 돌을 태양으로. 태양을 삶으로. 설령 그 삶이 다시 돌로 돌아간다고 할지라도, 괜찮다. 그것도 내가 긍정할 수 있는 삶의 한 형태일 테니까.
아마도 그 과정에서 불타오른 마지막 한 줌의 재가 선생님의 목탄 그림들의 또 다른 모습 아닐까.
이번 전시에서는 선생님께서 독일 유학 시절에 그리셨던 미공개 작품들도 발표되었다. 작은 조각배를 타고 웅크린 사람, 고향을 그리워하고, 자기 실존 앞에서 방황하는 존재들이 아직도 분명하게 남아있는 목탄 자국으로 그려져 있다. 그때의 작은 조각배는 이제 거대한 방주가 되어 삼라만상을 등에 지고 항해한다. 나무와 뿌리, 새와 동물들, 사람들, 집과 고향이 거대한 배에 타고 고독한 항해를 떠난다. 그러나 예전만큼 고되고 외롭지는 않은 것 같다. 선생님께서 휘두르는 목탄의 범위는 더 넓어졌고, 이제 그림 속에서 그림을 그리신다.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이 그림 앞에 머무르면서 그림에 들어갔다가 떠난다. 그림은 여전히 그 자리에 있고.
머묾과 떠남, 와해와 응집의 서사가 미술관 안에 가득하다. 드문 소망을 간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