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꿍이자 미술작가인 박슬은 애도에 관해 오랜 시간 탐구해 왔고, 우리 삶의 영원하지 못한 것들, 이별과 상실 그로 말미암은 고통과 인간의 연약함, 정신의 고통, 트라우마, 악몽, 꿈과 현실에 대해서 작업해 왔다. 그의 수많은 파일철에 수록된 엄청난 양의 드로잉과 종이 회화 작업이 삶과 죽음의 아이러니와 비극을 말하고 있다.
그는 올 초 전시장 대관 지원 공모를 통해 청량리역에서 도보로 십 분 거리에 있는 스페이스 잉크에서 지금까지의 작업적 역량을 총합한 다원적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여러 뮤지션들과 미술작가들이 함께했고 음악과 미술이 어우러졌다. 나는 회화 작업과 그 앞에서 시를 낭독하는 퍼포먼스로 함께 했다.
각자의 슬픔과 그리움, 고통, 아픔, 기억을 갖고 어두컴컴한 지하 공연장에 모인 사람들은 보리차의 수증기와 노란 조명들 속에서 잠깐의 시간을 함께했다. 콩 한 쪽도 나눠 먹는다고 했던가. 기쁨은 나누면 배가 되고 슬픔은 나누면 줄어든다고. 사람을 의미하는 한자는 사람과 사람이 기대어 있는 형상이라고. 흩어지면 죽지만 뭉치면 산다고. 인간의 공동체를 설명하는 많은 이야기. 함께이기에 무엇이든 의미가 있다. 아무리 좋은 그림을 그리고 좋은 음악을 만들어도, 봐 줄 이, 들어줄 사람이 없다면 무의미하다.
그런데 나는 그 무의미에 살짝 치우쳐 있는 사람인 편이다. 홀로 애도하고 내 안의 슬픔과 애절함이 서서히 잦아들기를 기다리면서 시간을 견딘다. 사실 완전히 홀로는 아니다. 산 자들 대신 죽은 자들, 혹은 죽어있지만, 영원히 살아있는 형태로 남아있는 존재들을 곁에 두고 시간을 견디기 때문이다. 그건 바로 책. 종이는 죽어있는 사물이지만 그 안에 담긴 텍스트와 이야기들은 살아있다. 책을 통해서 죽은 자들은 계속 살아있을 수 있고, 뒤에 남겨진 우리에게 말을 건넨다. 그림도 마찬가지인데, 나에게 그림은 실물 회화라기보다는 책에 프린트된 이미지에 가깝다. 그렇다. 나는 책을 곁에 두고 내 모든 기쁨과 슬픔의 시간을 보내는 편이다. 그래서 사실 이번 공연처럼 내 이야기를 공적인 장소에서 풀어내고, 여러 사람과의 어떤 일을 도모하며 분주하게 움직이고 몸을 쓰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고 특별히 공동의 애도가 예술이라는 형식을 통해서 발화되는 순간을 지켜볼 수 있어서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각자만의 애도의 형식을 개발하는 게 중요한 시기이다. 세계는 점점 쪼개지고 있다. 분절되는 세계는 하나하나의 인간의 영혼과 정신도 깨뜨린다. 그 균열을 파고 들어가 자기 씨앗을 뿌린다. 우리는 나 자신이라는 성채를 지켜야 한다. 균열과 상처를 치료하고 새살이 돋아날 수 있도록 충분한 휴식과 영양을 공급해야 한다. 자기 삶의 형식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애도도 기쁨도 절망도, 자기 형식대로 해야 창조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고, 그것이 곧 인간다운 삶이라 여겨질 것이다. 인간다움은 곧 창조 능력에 수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