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번째 호다. 여름에서 시작해서 겨울로 왔다. 3호는 2025년 늦가을의 이야기를 해보려고 한다. 11월은 유난히 바쁜 달이었다. 돌이켜보면 대부분의 11월은 정신없이 보냈던 것 같다. 개인전을 준비할 때는 공모 사업의 시행일을 최대한 미루다 당도한 마감이 있었고, 있었고... 이럴 수가. 사실 그뿐이다. 나의 11월은 그 어느 해도 달리 특별할 것은 없었구나. 11월에 관해 쓰려니 그것이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해서, 괜히 다른 11월들의 헛헛함만 탓하게 되는 마음이 보인다. 그럼에도 올해 11월은 특별했다. 뮤지엄 호두에서의 전시와 '빈 자리의 노래' 공연 퍼포먼스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빈 자리의 노래'는 긴 시간 준비했고, 내 짝꿍이 기획자였기 때문에 옆에서 도울 수 있는 일들을 최대한 도우려고 했다. 외부 일정들을 마무리하고, 몇 개월간 다녔던 직장도 퇴사하고 나니 어느덧 12월 중순이다. 사실 이 초고를 쓰기를 시작한 것은 12월에 막 접어든 때였다. 그때는 이렇게 쓰여 있다. '어제 막 12월이 됐다. 새삼 마음이 한결 가볍다. 그런데 더 가벼워지고 싶다.'
8월부터 4.5개월간 한밭 수목원을 지나쳐 출근했다. 초록으로 무성한 나무들이 갈색으로 변해가고 나뭇잎들이 한 잎 두 잎 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가득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조금 야윈다. 예전에는 허탈하기만 했던 가을의 정취가 이제는 그 나름대로 충만하게 느껴진다. 모든 것은 그것 자체로 완전하기 때문이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그림을 그릴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운동할 때도, 기도할 때도, 완전함은 지금으로부터 결여된 미지의 소망이 아닌 오직 이 순간 그 자체로써 이미 나에게 당도한 것으로 여기기로 했다. 내 삶과 정신의 이럴 수가 영토는 여전하지만, 그것에만 머물러 있기 싫다.
2016년, 안성 중앙대학교 캠퍼스에서 나는 가로세로 30센티미터 정방형의 소형 캔버스에 '먼지'라는 그림을 그렸다. 동그란 형태의 털북숭이 먼지가 바람에 날아가지 않기 위해서 땅 위의 마른 풀을 바짝 붙잡고 있는 그림이다. 나는 먼지가 되기를 소망했다. 내가 보기에 먼지들은 이 세상이 원하는 바에 어떠한 열망도 없는 존재들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는 인간으로 살아가는 내 삶과 현실이 암담했고 피곤했다. 인간으로서 느껴지는 여러 가지 욕망이 귀찮았고, 그 와중에도 자신의 삶에 성실하기 위해 노력하는 내 인간성이 지겨웠다. 말하자면 저 먼지들은 인간들의 피부 각질에서부터, 인간들이 만든 물질들의 극소한 입자로써, 자연물의 썩고 부스러진 살점으로부터 섞이고 뒤엉키고 갈리면서, 우주적 차원으로 볼 때 모든 오염된 정신성과 물질성이 말소되고 가장 순수한 형태로 다듬어진 존재가 아닌가 싶었던 거다. 영적으로 순도 0퍼센트에 가까운, 대천사 미카엘이 눈을 비빌 때 떨어진 속눈썹과 비슷한 밀도로 말이다.
있는 그대로의 삶을 긍정하고 내가 할 수 있는 일들에 최선을 다하며, 가끔은 욕을 내뱉지만, 다시 예쁜 말을 뒤적이며 참회하는, 그런 사람이 되려는 11월이었다.
가끔 흘리는 눈물은 그런 의미에서 이럴 수가. 그 눈물을 흡수하며, 이토록 복잡한 상념과 쓰잘머리 없는 고민으로 가득한 머리통을 참아주는 베개야, 고마워. 구약성서 속 야곱은 광야에서 돌을 베개 삼아 자면서 천사들의 환영을 보았다고 한다. 우리 모두 각자의 광야에서 계시를 찾아 헤매고 있는 가소로운 영혼들 아닌가. 나는 야곱이 집을 떠나기 전 벌인 파렴치한 행위들을 보며 저 꿈은 신의 계시가 아니라 자기 욕망에서 비롯된 망상이 아닐지 생각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무엇이 나쁘고 무엇이 좋은지를 칼 베듯이 선명하게 구분 짓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오직 그 답은 각자 자기 방에서 베고 자는 베개 위의 눈물 속에 담겨 있을 것으로 생각할 뿐이다. 말을 아끼고 혀는 입천장에 붙이고 턱이 빠지지 않도록 유의하며 잠에 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