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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자유지은 Jan 17. 2020

아픈 애를 누가 입양하겠어요

[무지개다리를 건널 때까지] 여섯 번째 만남 : 강혜영 님(下)

▼전편을 먼저 읽어주세요.




까미랑 가족이 되고 보니까 안락사될 뻔했다는 사실이 너무 슬프더라고요.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처럼, 까미를 입양해 유대 관계가 생기고 애정이 깊어질수록 그는 유기동물에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되었다.

까미처럼 블랙독이거나 안락사될 위기에 놓인 유기동물에게 도움이 될만한 프로젝트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러던 중에 알게 된 몰티즈 한 마리를 임시보호하게 되었다.



작은 체구에 맑은 눈을 가진 이 몰티즈는 처음 데려왔을 때부터 사람의 손길을 불편해하고 소심했다. 추정 나이는 9~10살인데 그동안 어떤 사연이 있었던 건지 골반 뼈는 골절된 채로 방치된 상태였고 곰팡이성 피부염도 앓고 있었다.


어쩌면 누군가에 의해 학대당하면서 살다가 버려진 것일지도 모른다고 추측될 따름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불편한 뒷다리를 절뚝거리면서도 혼자 걸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는 임시보호를 맡게 되면서 이 몰티즈에게 '백설'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 백설이는 까미가 그랬던 것처럼 집에 오자마자 화장실을 잘 가렸고 산책도 곧잘 했다.


곰팡이성 피부염은 치료를 받으며 점차 호전되었지만 골절된 채 그대로 굳어버린 골반은 치료가 어려웠다. 제대로 치료하려면 큰 병원에서의 대수술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그는 백설이를 임시보호하면서 치료해주고 '좋은 입양처가 생기면' 입양을 보낼 계획이었지만, 수의사인 그의 동생은 임시보호 중인 상황에서의 수술을 권하지 않았다.


뒷다리를 좀 절긴 하지만 이미 골절된 지 너무 오래 지나서 백설이가 절뚝거리면서 걷는 것에 적응을 한 상태인데, 굳이 임시보호를 하는 동안 위험부담이 큰 수술을 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었다.


그는 이 같은 동생의 소견을 받아들여 백설이의 골반 재건수술을 보류하기로 했다.



결국 남은 과제는 입양이었다. 소형견인 몰티즈는 일반 가정의 반려견으로 꾸준히 사랑받는 견종이다. 그만큼 많이 키워지고 많이 버려진다는 게 문제지만, 대형견에 비해서는 입양될 가능성이 높은 축에 속했다.


하지만 유기동물은 많고 입양하려는 사람은 적은 게 현실!


누군가의 눈에 띄어 평생가족이 되려면 유기동물 사이에서도 경쟁력이 있어야 한다. 심지어 나이가 어리고 건강한 품종견들도 입양 가기가 쉽지 않은데 적잖은 나이와 병력까지 있다는 건 입양 가능성을 낮추는 걸림돌이었다.

그 역시 이런 현실을 모르는 바 아니었다.


아픈 애인데 누가 입양하려고 하겠어요


"처음에 임보 하려고 데려올 때부터 그런 생각은 좀 있었어요. 입양 가능성이 얼마나 될까 싶더라고요. 아무래도 아픈 애인데 누가 입양하려고 하겠어요. 만약에 좋은 입양자가 안 나타나면 얘를 끝까지 데리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으로 데려온 거긴 해요."



내심 입양까지 생각하며 데려왔지만 쉽사리 결정하지 못했던 이유는 까미와 다른 가족들이 어떻게 받아줄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강아지 키우는 거 자체를 남편이 반대했었으니까 까미도 어렵게 입양한 건데 한 마리를 더 키우겠다고 하는 게 좀 그렇잖아요. 다른 가족들 의견도 중요하니까요. 그리고 먼저 입양한 까미가 질투할 수도 있고 둘이 잘 못 지내면 어쩌나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었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 면에서 좀 지켜보면서 얘기해보려고 했거든요. 근데 까미 하고도 너무 잘 지내고 남편이랑 아이도 백설이를 예뻐하는 거 같아서 다행이에요."


그의 얘길 들어보니 백설이가 객식구에서 가족으로 자리를 잡아가는 분위기인 것 같았는데, 그와 인터뷰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백설이를 정식으로 입양하고 골반 수술까지 성공적으로 마쳤다는.



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백설이에게는 백내장이 찾아왔지만 가족들의 한결같은 사랑을 받으며 발랄하게 생활하고 있다.


까미에 이어서 백설이까지.

이렇게 두 반려견과 함께 생활하면서 가족들 간의 사랑도 더 커졌다.


"산책할 때도 다 같이 나가고 자연스럽게 함께 보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까 가족들 간에 대화도 더 많아지고 사랑도 더 돈독해지는 거 같아요."


그가 눈을 빛내며 밝게 미소 지었다. 진심 어린 행복이 그의 얼굴 가득 번져있었다.


좌 까미 우 백설


반려견들로 인해 더해진 행복만큼 그 또한 까미와 백설이에게 더 많은 사랑을 주려고 노력한다. 하지만 맞벌이 가정이라 아침에 가족들이 모두 외출하면 하루 종일 빈 집에 개들만 남게 되는 건 불가피한 일이었다.

그는 개들의 입장에서 이 기다림의 시간을 헤아려봤다.


"개들의 시간은 사람보다 몇 배 더 빠르게 흐른다고 하잖아요. 우리 입장에서는 하루 8시간 집을 비우는 거지만 개들의 시간으로는 3, 4일 정도 되는 느낌이 아닐까 싶더라고요."


논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떠나, 그가 까미와 백설이의 지난한 시간에 대해서 얼마나 골똘히 생각했을지 짐작케 하는 말이었다.



그는 빈집에 남겨지는 반려견들에게 미안해하는 대신 그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았다.


“점심시간마다 집에 가서 개들 데리고 같이 산책해요. 거리가 멀면 못하겠지만 집이 여기서 가까운 편이거든요.”


아무리 가깝다고 해도 점심때마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산책을 하는 것이 번거롭고 힘들 법도 한데, 그의 얼굴을 보니 단순히 의무감이나 미안함 때문이 아니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쩌면 개들을 위해서 하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다 보니까 오히려 제가 더 행복해지는 거 같더라고요. 개를 처음 키워봤는데 아이 키우는 것과 비슷한  같아요. 제가 힘들고 지쳐 있었을  저한테 사랑을 주니까 마음이 치유되는 부분도 있고 강아지들을 키우는  정신적으로도 너무 좋은  같아요.”


몇 년 동안에 걸쳐 시간을 두고 입양을 준비했던 그가 비로소 반려견을 입양한 뒤에 경험하게 된 일상의 행복은 그가 기존에 갖고 있던 동물 구호에 대한 생각마저 달라지게 만들었다.


“사실 저도 예전에는 사람도 불쌍하고 먹고살기 힘든데 그랬거든요. 근데 사람에게 상처 받고 버려진 동물들은 우리가 조금만 더 신경 쓰고 손을 내밀어 주면 생명을 살려줄 수 있고, 삶을 변화시켜줄 수 있잖아요. 그런 면에서도 의미가 있는 거니까 동물을 키울 마음이 있다면 펫숍에 가기 전에 우선적으로 유기견 입양을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그가 유기견 입양을 권하는 데는 이러한 의미뿐 아니라 현실적인 부분에서도 나름의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일단 가정에서 키우다 버려진 개들이 많잖아요. 그런 개들 대부분 배변 훈련이 어느 정도 되어 있어서 따로 교육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잘 가리는 거 같더라고요. 물론 훈련이 안 되어 있는 개들도 있겠지만 저의 경우엔 까미랑 백설이 둘 다 그랬거든요. 그리고 펫숍에서 어린 강아지를 처음 데려오면 성장기가 굉장히 요란하게 지나가니까 크고 작은 사건사고도 많은데 유기견 같은 경우는 대부분 성견들이라 그런 면에서도 장점이 있는 거 같아요.”



마지막으로

강혜영 님이 꼭 해주고 싶은 말


“저 같은 경우 개를 키우는 게 처음이라서 더 신중하게 접근한 면도 있는데요. 같이 사는 가족들이 반대하거나 저처럼 처음 키우는 거라면 서두르지 말고, 기본적인 공부를 한 후에 가족 모두가 찬성했을 때 입양하셨으면 좋겠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2017년 5월, 문재인 대통령은 블랙독 증후군으로 2년 가까이 입양되지 못했던 '토리'를 퍼스트 도그(first dog)로 입양하면서 이런 말을 남겼다.


편견과 차별에서 자유로울 권리는
인간과 동물 모두에게 있다.


대통령이 솔선수범해 블랙독을 입양했지만 그것은 하나의 상징적인 메시지로 남았을 뿐,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편견과 차별이 만연하고 블랙독 증후군 현상은 지금도 계속 이어지고 있다.

씁쓸한 현실이다.


실제로 유기견 입양을 조금만 알아봐도 작고 어린 품종견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는데 굳이 블랙독을 입양해달라고 말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

그래서 나는 누구나 다 강혜영 씨처럼 블랙독을 입양하고, 중년의 아픈 개를 입양해주길 바라지는 않는다. 입양이 안 돼서 안락사당하는 유기동물의 수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만, 근거 없는 편견과 선입견 때문에 유기동물 입양 자체가 기피되지 않기를 바란다. 예컨대 유기견을 대상으로 한 ‘문제가 있어서 버려진 애들’이라는 선입견은 지나치게 편협한 사고다. 강혜영 씨가 입양한 까미와 백설이 처럼 ‘교육이 잘 되어 있는 유기견’도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주었으면 좋겠다.

 

우리가 각자 지나온 삶의 궤적이 다른 것처럼 유기동물도 저마다 다른 사연을 가지고 보호소에 들어간다. 그리고 누군가에 의해 입양되기도 하고, 끝내 안락사되기도 한다.

하지만 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버려지는 것도, 입양되는 것도, 안락사되는 것도... 전부 다 사람 손에 달린 생사의 문제라는 것이다.



글 / 자유지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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